147: 우리 하나님께 찬양함이 선합니다.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찬양함이 선함이여 찬송함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시편 1471).

 

 

      수요일 저녁 6시, 입관 예배를 인도하였습니다.  약 1년 6개월 전 똑 같은 장소에서, 똑 같은 강대상 앞에서 사랑하는 셋째 삼촌 목사님의 입관 예배를 인도하였었습니다.  예배 후 조문객들이 유가족 식구들에게 인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에 잠들었었습니다.  슬피 울며 유가족들과 조문객들이 포옹하는 모습을 보면서 전 전도서7장 2절 말씀을 묵상하였습니다: “…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언젠가는 다 우리가 죽음을 맛봐야 할 터인데 산 자로서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조문객들을 다 인사한 유가족들과 마지막으로 고인의 관 앞에서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자녀들의 울음소리가 계속 들렸습니다.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참으로 이 땅에 소망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입관 예배 후 마친 후 수요기도회가 있어 유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지 못하고 교회로 왔습니다.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면서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 사랑을 고백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나의 참 소망과 기쁨과 생명이 되시는 주님께 사랑 고백을 찬양으로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 시편147편 말씀을 선포하길 시작했을 때 저는 1절 말씀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찬양함이 선함이여 찬송함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라는 말씀에서 멈추고 말았습니다.  설교를 20절 마지막 절까지 묵상하여 다 준비를 해서 나아갔지만 저는 1절 말씀만 묵상하는데서 멈추고 만 것입니다.  그저 1절 말씀이 너무 은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절 말씀만으로도 제 영혼이 풍성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1절 말씀만 한 3가지로 묵상하였습니다.

 

      첫째로, 우리 하나님을 찬양함이 선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아는 성도는(시34:8)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로마서 8장 28절 말씀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선한 역사를 경험한 성도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좋으신 하나님”(God is so good)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비록 사랑하는 이의 죽음으로 슬픔 가운데 있는 모습을 볼끼라도 소망되신 주님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의 주권적인 섭리 가운데 이 모든 일들을 통하여서도 그의 선하심을 나타내실 줄 믿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슬픔을 돌이키시사 기쁨이 되게 하실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합니다. 

 

       둘째로, 우리 하나님을 찬양함이 아름답습니다.

 

언젠가 아내가 어느 분의 장례식을 참석하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저에게 이러한 말을 하였습니다: ‘나는 사람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작년 저의 셋째 삼촌인 고 김창혁 목사님의 장례식 때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고 말하면서 또 다른 장례 예배에서는 사람의 영광을 보았다는 아내의 말을 들을 때 참 일리가 있는 말이라 생각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다가 죽으면 그 죽음은 주님 안에서 참 아름답습니다.  그러한 아름다운 죽음 가운데 장례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때 우리는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찬송가40장).  아름다운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을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아름다우십니다.  그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을 영의 눈으로 보는 성도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성경 시편27편4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면서 하나님의 집에서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하길 원합니다. 

 

       셋째로, 우리 하나님을 찬양함이 마땅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그의 선하심과 아름다우심을 경험하는 성도는 마땅히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무리 우리가 고통스럽고 힘든 상황에 처해 있을지라도 선하시고 아름다우신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 이유는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을지라도 성도는 하나님을 찬양함이 마땅한 줄 알기 때문입니다.  성경 사도행전16장에 나오는 바울과 실라가 그랬습니다.  감옥에 갇힌 상황에서고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25절).  찬양은 상황에 이끌림을 받지 않습니다.  찬양은 상황을 초월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직 믿음으로만이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찬양함이 마땅한 줄 알기에 믿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아직도 기억납니다.  암으로 고통가운데 계신 할아버님을 찾아뵈러 갔었을 때 침대에 누워계셨다가 침대에 앉으신 할아버님께서 저에게 찬송가 82장을 불러 달라고 하셔서 부른 기억이 납니다: (1절)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밤낮 불러서 찬송을 드려도 늘 아쉰 마음뿐일세, (4절) 나의 진정 사모하는 예수여 음성조차도 반갑고 나의 생명과 나의 참 소망은 오직 주 예수뿐일세. 나의 기쁨, 나의 생명, 나의 참 소망이 되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숨질 때 되도록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하길 원합니다.  숨질 때 되도록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하길 원합니다.  그 이유는 그 분을 찬양함이 선하며 아름다우며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찬양하라, 내 영혼아”,

 

 

제임스 김 목사 나눔

(금요일, 어제 발인 예배 후 하나님께서 유가족 식구들 가운데 구원의 역사를 이루고 계심을 알게 된 후 기쁜 마음으로 교회로 돌아왔던 그 순간을 되새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