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 이러한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시편 144]

 

 

과연 무엇이 “복”입니까?  우리가 ‘복’, ‘복’, ‘복’ 말하는데 과연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복은 무엇입니까?  성경에서는 자녀의 복이나 물질의 복 등을 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중의 복은 복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시편 73편 28절의 근거한 말씀입니다.  즉, 시편 기자 아삽이 악인의 형통을 보고 질시하여 거의 미끄러질 뻔하였다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야 악인의 결말(17-20절)과 의인의 결말(24절), 그리고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했던 자기 자신이 “우매무지”하고 주님 앞에서 짐승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후(22절) 그의 고백 중 하나는 바로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였습니다(28절).  달리 말한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복이지만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이 진정한 복입니다.  그 복을 과연 저와 여러분은 알고 누리며서 살아가고 있는지요?

 

오늘 성경 시편 144편 15절을 보면 성경은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은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박윤선).  왜 시편 기자 다윗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를 한 마디로 정리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신뢰하는 자들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체엄하였었기에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체엄한 다윗은 오늘 본문에서 그 구원의 하나님을 한 3 가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다윗의 묘사는 우리로 하여금 어떠한 하나님을 우리가 신뢰하며 살아가야 할지를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이 교훈을 겸손히 그리고 믿음으로 받으므로 말미암아 복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첫째로, 다윗은 그가 신뢰하고 그러므로 구원의 은총을 체험한 하나님을 승리의 하나님으로 묘사하였습니다.

 

성경 시편 144편 1절을 보십시오: “나의 반석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저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치게 하시도다.”  여기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시의 손과 손가락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므로 자기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기에 “나의 반석이신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흥미롭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자기로 하여금 전쟁에서 승리케 하시고자 훈련시키시는 하나님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 말입니다. 70인역(LXX)이나 월겟역(Vulgate), 그리고 에디오피아역이나 아라비다역은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사건에 관하여 지은 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박윤선).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지금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손과 손가락을 훈련시키시사 “손의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삼상17:40) “만군의 여호와 이름”으로 골리앗에게 나가되(45절) 마주 가까이 오는 골리앗에게 빨리 달리며(48절)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취하여 물매로 던져” 골리앗의 이마를 치므로 돌이 그 이마에 박혀(49절) 골리앗을 이긴 것(50절)을 생각하며 오늘 본문 시편144편1절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다윗은 그 때 골리앗을 이기게 하신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시요 그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과 손가락을 훈련시키시사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취하여 물매로 던지므로 골리앗을 이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의도는 무엇일까요?  성경 사무엘상 17장47절이 적합한 대답이라 생각합니다: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손과 손가락을 가르치시사 돌과 물매로 베틀채 같은 골리앗의 창자루와 육백 세겔인 창날을 가지고 나온(7절) 신장 여섯 규빗 한 뼘인 가드 사람 골리앗(4절)을 이기게 하신 하나님, 참 놀랍지 않습니까?  왜 그러셨을까 생각해 볼 때 물론 전쟁의 승리는 하나님께 있다는 진리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이기도 하겠지만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고 자긍할까봐(삿7:2) 그 많은 이스라엘 군인들 중 목동이 다윗의 손과 손가락을 통하여 골리앗과 블레셋 군인들을 물리치게 하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전쟁을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신뢰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바라기는 우리가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 안에 영적 싸움을 생각할 때 다윗의 손과 손가락을 가르치시사 골리앗을 이기게 하신 승리의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둘째로, 다윗은 그가 신뢰하고 그러므로 구원의 은총을 체험한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성경 시편 144편 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는 나의 인자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의 산성이시요 나를 건지는 자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내 백성을 내게 복종케 하시는 자시로다.”  전쟁에서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골리앗과 블레셋 사람들 외에도 다윗은 수많은 전쟁에서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신 체험들이 많습니다.  그 구원의 은총들을 생각할 때 다윗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고백하였습니다(2절).  그 고백의 첫 부분에 바로 “여호와는 나의 인자(사랑)시요”라고 다윗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전쟁에서 요새가 되어주셨고 산성이 되어주셨으며, 방패와 피난처가 되어주신 하나님께서 자기를 건져주신 구원의 은총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므로 ‘하나님은 나의 인자이십니다’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있을 때 이렇게 반응 하였습니다: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 관대 주께서 저를 알아주시며 인생이 무엇이 관대 저를 생각 하시나이까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3-4절).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면 느낄수록 우리는 다윗처럼 “사람이 무엇이 관대” 주님께서 알아주시며 생각하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특히 우리 자신이 마치 지나가는 그림자 같이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존재임을 깨달아 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무지함 가운데서 저는 오늘 본문 2-4절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이 석절 말씀을 시편 8편 4절과 18편 1-2절과 연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세 시편이 유사한 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오늘 본문 2절 말씀은 시편 18편 1-2절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 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그리고 오늘 본문 시편144편3-4절 말씀은 시편8편4절 말씀과 거의 비슷합니다: “사람이 무엇이 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 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 하시나이까.”  이 유사한 점들을 생각할 때 ‘내가 무엇이 관대 주님께서는 나를 이리도 사랑하시는가?’라는 질문이 듭니다.  왜 주님은 우리 같은 지나가는 그림자와 같은 존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힘이 되어주시는지, 우리의 반석, 요새, 피할 바위, 방패, 산성, 구원의 하나님이 되어주시는지 그 은혜와 사랑을 충분히 깨닫지 못하겠다는 고백 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다윗이 시편18편1절에서 고백하였던 것처럼 우리도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다윗은 그가 신뢰하고 그러므로 구원의 은총을 체험한 하나님을 나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성경 시편 144편 5-11절을 보면 우리는 다윗이 구원의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기도 내용은 한 마디로 원수에게서 구원해 주시기를 원하는 기도입니다(박윤선).  우리가 이미 묵상한 시편 142편이나 143편만을 보아도 다윗의 원수들은 사울 왕과 압살롬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 외에도 피를 많이 흘린 다윗에게 얼마나 많은 원수들이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오늘 본문 시편144편에서는 골리앗도 다윗의 원수였지 않았습니까? 다윗은 특히 오늘 본문에서 그의 원수에 대해서 8절과 11절에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저희 입은 궤사를 말하며 그 오른손은 거짓의 오른손이니이다  …  이방인의 손에서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 저희 입은 궤사를 말하며 그 오른손은 거짓의 오른손이니이다.”  그는 그의 원수에 대해서 말하면서 물론 입은 궤사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흥미로운 것은 그 원수의 손에 대해서 “이방인의 손”이요 또한 “그 오른손은 거짓의 오른손”이라고 두 번이나 반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 원수의 거짓의 오른손은 다윗이 오늘 본문 1절에서 가르침을 받는 자기의 손(“나의 손”)과 대조가 됩니다.  그리고 그 원수의 거짓의 오른손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가르치시는 다윗의 손에게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오늘 본문 5-7절에서 어떠한 하나님에게 구원해 주시길 기도하고 있는가 하면 “the heavenly warrior who comes to fight on earth on behalf of David against God’s enemies”(하늘의 용사로서 이 땅에 오셔서 다윗을 위하여 하나님의 원수들과 싸우시는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MacArthur).  그래서 그는 5-7절에서 아주 비유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하늘의 용사이신 하나님을 묘사하고 있습니다(MacArthur).  그 하나님에게 간구하기를 “대적을 흩으시며 주의 (화)살을 발하사 저희를 파하소서”(6절)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오늘 본문 10절을 보면 다윗은 ‘구원의 하나님’이시요 “다윗을 그 해하는 칼에서 구하시는”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는 모습을 우리는 봅니다.  이 기도를 다윗은 하늘의 용사(Heavenly Warrior)이신 하나님께 드리면서 그는 오늘 본문 9절에서 이렇게 결심합니다: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열 줄 비파로 주를 찬양 하리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찬양하는 새 노래로 주님을 찬양하겠다고 결심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렇게 결심할 수 있는 것은 다윗에게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가 구원해 주실 줄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즉, 다윗에게는 구원의 확신이 있었기에 하나님을 새 노래로 찬양하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아마 그래서 기도와 찬미는 같이 가는가 봅니다.  마치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찬미하였을 때 구원의 은총을 경험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께 구원의 은총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간구하면서 주시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십시다.  그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은 구원이시다’(욘2:9)라는 진리를 실제 우리 삶 속에서 체험할 것입니다.  그 구원의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포기하지 마십시다.  그 분의 때에 그리고 그 분의 뜻 안에서 구원의 역사가 이뤄질 것입니다.

 

이러한 구원의 은총을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받는 자들은 과연 어떠한 복이 있습니까? 오늘 본문 시편 144편의 저자인 다윗은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자들의 복에 대하여 12-14절에서 한 3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이 받아 누리는 복은 자녀들이 복을 받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우리 아들들은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 같으며 우리 딸들은 궁전의 식양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이 돌과 같으며.” 

 

(2)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이 받아 누리는 복은 물질의 복입니다

 

13-14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우리의 곳간에는 백곡이 가득하며 우리의 양은 들에서 천천과 만만으로 번성하며 우리 수소는 무겁게 실었으며 ….” 

 

(3)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이 받아 누리는 복은 평화입니다

 

14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또 우리를 침로하는 일이나 우리가 나아가 막는 일이 없으며 우리 거리에는 슬피 부르짖음이 없을찐대.” 

 

이러한 귀한 복을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The Giver of Gifts이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만족하길 원하는,

 

 

제임스 목사 나눔

(승리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내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함에 평안함을 누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