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아침에 나로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침에 나로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 이다 나의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받듦이니 이다”(시편 1438).

 

 

     시편 기자 다윗은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시133:1).  주님 안에서 형제, 자매들이 하나가 되어 한 마음, 한 뜻으로 함께 주님을 섬기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우리 교회가 성령의 하나 됨(엡4:3)을 지키기 위해선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에게 들을 수 있는 귀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와 성내기는 더디 해야 합니다(약1:19).  교회의 연합을 도모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교회의 평안과 화목을 위하여 듣는 귀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들어야 합니까?  오늘 본문 시편 143편 8절에서 시편 기자처럼 우리는 주님의 인자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가 아침에 주님의 인자한 말씀을 듣기 원하였던 이유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걷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나의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8절).  즉, 시편 기자는 주님의 뜻을 배우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케 하소서 …”(10절).  우리도 시편 기자처럼 아침에 주님의 전에 올라가 하나님께 ‘이 아침에 주님을 의지합니다.  주님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성령님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인자한 음성을 겸손히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시편 기자처럼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의 뜻 행하기를 즐거워해야 합니다.

오늘 이 아침에 주님께서 저에게 들려주셨던 인자한 말씀은 시편 141편 5절 말씀입니다: “의인이 나를 칠지라도 은혜로 여기며 책망할지라도 머리의 기름 같이 여겨서 내 머리가 이를 거절치 아니할지라 ….”  과연 어떻게 사람들의 책망을 은혜로 여길 수 있습니까?  보통 우리는 사람들의 책망을 들으면 기분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욱하는 감정 속에서 함부로 말을 하곤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경외하는 마음이 없이 입을 조심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사람의 책망을 들으면 우리는 우리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지 않고 말하기를 속히 하곤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시편 기자처럼 아침에 주님의 인자한 말씀을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인자한 말씀을 들었다 할지라도 우리가 그 들은 말씀을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불순종하는 이유는 우리가 주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기보다 우리 뜻대로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인자한 말씀을 듣고 주님의 뜻을 행하기를 원하는 신앙인은 사람의 책망의 소리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신실한 은혜와 끝없는 사랑을 느낍니다.  사람의 책망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비춰보면서 나의 죄를 더욱더 철저히 들춰내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불성실함을 들춰내시사 하나님의 신실하신 은혜를 경험케 하십니다.  그 신실한 은혜를 경험할 때 사람의 책망 속에 미움을 느끼기보다(미움이 아니라 사랑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끊임이 없는 신실한 사랑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의 책망조차도 은혜로 귀하게 여깁니다. 

우리 교회가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지켜 나아가기 위해선 주님의 인자한 말씀에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생각들을 말로 표현할 때에도 우리의 영의 귀는 주님께서 들려주신 인자한 말씀에 기울어야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의 마음 자세는 겸손히 주님의 뜻을 행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비록 주님의 인자한 말씀이 사람들의 말 가운데서라도 나의 죄를 더욱더 분명하게 들춰낸다하여도 우리는 그 와중에서도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생각하여 그 뜻을 이루어 드려야 합니다.  이러한 마음 자세로 우리가 살아간다면 사랑하는 형제, 자매의 책망 외에도 원수의 저주까지도 은혜로 여길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치 다윗이 죄를 범하여 왕궁에서 도망하여 광야를 향하는 가운데 베냐민 지파 시므온이란 사람의 저주조차도 겸허히 들었던 것처럼 우리 또한 광야에서 주님의 인자한 말씀을 먹고 영적으로 건강하다면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의 거짓된 말이나 수군수군이나 비방이나 정죄까지도 겸허히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듣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러나 말 가운데서도 주님의 음성을 더욱더 뚜렷하게 듣고 심비에 적어 말씀 인격화된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음성 외에는 더 기쁨 없도다”(찬송가500장)라고 고백하며 하나님께 진심으로 찬양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과 사람들의 다양한 말 가운데서도 주님의 인자한 말씀을 듣기를 원하는,

 

 

제임스 목사 나눔

(주 음성 외에는 더 기쁨 없음을 고백하고 싶은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