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우리 삶 속에 재현되는 상황들

 

 

 

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묵상하며 주의 손의 행사를 생각하고”(시편 1435).

  

 

  우리 삶 속에 왜 비슷한 상황들이 재현되는 것일까요?  전에 분명히 비슷한 상황을 접한 것 같은데 왜 또 그러한 비슷한 상황을 지금 또 우리는 대하고 있는 것일까요?  물론 그 상황이 어렵고 고통스러운 상황이라면 우리는 정신이 없어 그 순간에는 이러한 비슷한 상황을 우리가 전에 접했다고 생각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좀 정신을 차리고 그 상황을 좀 객관적으로 잠잠히 생각하다 보면 과거에도 우리 자신이 그러한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었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이러한 비슷한 상황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까?  그저 우연이라고 말해야 하는 것입니까?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우연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우연이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 가운데서 우리 삶 속에 비슷한 상황을 재현하시는 목적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요?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 속에 비슷한 상황을 재현하시는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과거의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묵상하므로 사모하게 하십니다.

 

성경 시편 143편 5절을 보면 다윗은 압살롬의 핍박으로 생명의 위험을 느끼는 참담한 상황 속에서 그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님의 “모든” 행하신 것을 묵상했습니다.  그리했을 때 다윗은 분명히 시편142편 말씀의 배경인 왕이 되기 전 사울 왕의 핍박 가운데서 건져주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두 사건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에게 핍박을 받았을 때인 시편 142편이나 오늘 본문인 시편 143편에서 다윗이 왕이 되어 범죄 한 후 압살롬에게 핍박을 받을 때나 다윗의 심령은 속에서 상해 있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142:3, 143:4).  왜 이렇게 비슷한 상황들이 다윗의 삶 속에 재현되었던 것입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다윗으로 하여금 사울 왕에게 핍박당할 때 하나님께서 그를 건져주신 구원의 역사를 기억(묵상)케 하시므로 말미암아 그로 하여금 오늘 본문 시편 143편의 배경인 압살롬의 핍박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사모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주를 향하여 손을 펴서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였습니다(6절).  그는 긴급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속히 응답해 주시길 간구하였습니다(7절). 

 

둘째로, 하나님께서 우리 삶 속에 비슷한 상황을 재현하시는 목적은 우리의 죄를 들춰내시므로 말미암아 회개케 하시고 다시금 주님의 뜻을 행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143편과 시편 142편과 다윗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었지만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그 다름 점이란 사울 왕에게 핍박을 받고 있었을 때(시142편)에는 다윗이 죄를 범해서 받는 핍박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일인 골리앗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무찌르므로 말미암아 여인들의 환호로 인한 사울 왕이 시기하므로 받은 핍박 이였습니다.  그와 반면에 오늘 본문 시편143편은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그 범죄를 덮으려는 시도 가운데 밧세바의 남편인 충성된 군인 우리아를 의도적으로 죽인 죄로 인하여 받는 그의 아들 압살롬의 핍박 이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143편8, 10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아 주님의 뜻을 행하길 원했습니다.  자기의 뜻대로 범한 죄에서 돌이켜 이제는 주님의 뜻을 행하기를 원하는 다윗을 볼 때 저는 요한복음 21장 9절 이하에 나오는 베드로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그 이야기를 보면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후 디베랴 바다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세 번씩이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사랑하느냐’(15, 16, 17절) 물어보셨습니다.  그 때 그 상황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했을 때하고 너무 흡사합니다.  어떻게 흡사한 것을 알 수 있는가 하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했을 때나 베드로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씩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질문하셨을 때나 두 상황 다 “(숯)불”이 있었습니다. 기억나십니까?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했을 때 누가복음 22장 55절에 저자 누가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뜰 가운데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았는지라 베드로가 그 가운데 앉았더니"  분명히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숯불을 피시고 그 위에 생선을 놓으시고 떡도 준비해 놓으시고 육지에 내린 제자들 중 베드로에게 세 번씩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질문하셨을 때 과거의 불 가운데 앉아 있다가 예수님을 부인했었던 자신의 죄가 기억이 났었을 것입니다(요21:9).  결국 예수님은 과거의 상황을 재현하시므로 베드로의 죄책감에서 건져주시길 원하셨고 또한 그에게 주님의 뜻을 이루도록 사명을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이요 섭리입니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삶 속에 비슷한 상황이 재현될 때에 잠시 잠잠히 하나님 앞에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십시다.  그리고 만일 과거에 비슷한 상황이 있었던 적을 성령님께서 기억하게 해주실 때 우리 과거의 비슷한 상황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기억하며 묵상하십시다.  그러한 가운데 현재의 상황을 놓고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하나님께 간구하십시다.  과거의 구원의 은총을 기억하며 묵상할 때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도 담대히 구원의 하나님께 나아가 간구하십시다.  그리고 기억하며 묵상하는 가운데 혹여나 성령님께서 들춰내시는 회개치 않은 죄가 기억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하며 우리 죄를 거룩하신 하나님께 자백하며 긍휼과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께 회개하십시다.  우리의 뜻을 십자가 앞에 다 내려놓고 주님의 뜻을 행하는데 헌신하십시다.  그리할 때 주님께서 우리 삶 속에 재현하시는 상황들을 통해서 그의 뜻을 이루시사 홀로 영광 받으실 것입니다.

 

 

 

과거의 주님께서 행하신 구원의 역사를 기억하면서 현재의 비슷한 상황에서 그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기념하길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하게 하는 상황에 이끌림을 받기보다 그 상황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길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