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내 영혼을 고요하고 평온케 하는 방법

 

 

[시편 131]

 

 

초등학교 때 배운 노래가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퐁당 퐁당 돌을 던지자 누나 몰래 돌을 던지자 …." 저는 왜 돌을 던져야 하는지 모르면서 열심히 배운 노래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 동요가 생각났던 이유는 오늘 읽은 시편131편1-3절 말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 영혼이 잔잔할 때 그 고요함과 평온함을 깨는 '돌'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러 "돌"이 있을 것입니다. 어려운 환경, 사람들의 비판, 힘든 인관 관계, 경제적 문제, 스트레스 등등 수 없는 종류의 "돌"들이 우리 영혼의 고요함과 평온함을 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일 파괴적인 "돌"은 우리 자신이라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안에 하나님이 주시는 영혼의 고요함과 평안함을 파괴하는 "돌"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 "돌"은 다름 아닌 "교만”입니다(1절). 또 다른 말로 다윗은 '내 눈이 높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눈이 높은 사람은 "큰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는 사람입니다(1절). 자기 주제를 망각하고 주제 넘는 일을 생각하며 그 일에 힘을 쓰는 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님으로부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눈을 높이 들어 자꾸만 두 달란트나 혹은 다섯 달란트 받는 사람을 부러워하며 시기하는 가운데 그들의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 영혼의 고요함과 평온함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목사로서 언젠가 교회에 온 크리스천 신문을 읽으면서 영혼의 고요함과 평온함을 잠시 순간적으로나마 잃어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신문 여기저기에 여러 훌륭한 목사님들과 그들의 사역을 글이나 사진으로 보면서 제 자신의 영혼이 고용함과 평온함이 깨지는 것을 느낀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았을 때 오늘 본문 시편 131편 말씀처럼 눈을 높이 들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즉, 마음에 교만이 침투해 들어왔다는 말씀입니다. 그랬기에 비교하면서 제 자신의 진정한 모습보다 더 크게 생각한 것입니다. 자신의 주제를 망각케 하며 더 크게 보이게 하는 이 "교만", 특히 경쟁의식 가운데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망각하게 만드는 사탄의 무서운 무기입니다. 그래서 조치한 방법은 신문을 더 이상 읽지 않았고 또한 그 목사님들을 축복하자고 제 영혼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영혼을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 위해선 제일 먼저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교만"과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눈높이 교실"에 들어가면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에 힘쓰지 말아야 합니다(1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를 확실히 알고 겸손하고 신실하게 우리 할일만 잘 감당하면 됩니다. 우리가 미치지 못할 자리나 성공이나 일에 관하여 욕심을 부리면 안 됩니다. 이 모습 이대도 받아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 자신을 용납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며 살아갈 것입니다(롬12:3).

 

우리는 "교만"과 싸우는 동시에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시131:3). 그리할 때 우리 영혼을 고요하고 평온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이 '젖 뗀 아이'와 같은 중심이 돼야 한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구약 시대 히브리인 엄마들이 젖을 뗀 시기가 아기가 태어난 후 한 2-3년이라고 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의 둘째 딸인 예은(1살)이나 첫째 딸인 예리(3살) 사이에 아이를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예은이를 생각하면서 젖 뗀 아이의 중심은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잠이 들었을 때의 얼굴 모습이 참 고요하고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2절). 그 때에 예은이는 아빠도 필요 없고 맘마(음식)도 필요 없고 장난감도 필요 없다고 손으로 표현을 합니다. 오직 그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엄마입니다. 그 엄마의 품에 안겨서 고요히 잠이 든 예은이의 모습을 생각할 때에 오늘 본문 2절 말씀이 좀 더 저에게 가까이 다가옵니다. 다윗은 교만함을 멀리하고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되 '젖 뗀 아이의 중심'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는 하나님 아버지의 품에 안기길 원하는 마음으로 이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를 쓴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주일 예배 당에 올라가면서 다윗처럼 하나님 아버지의 품을 그리워하면서 올라가야 합니다. 그 사랑의 품에 안겨 참된 평안을 얻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중심이 젖 뗀 아이처럼 겸손한지 자아성찰을 해야 합니다. 교만함이 있다면 우리는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까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 보좌 앞에서 구원의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리면서 우리의 영혼이 그의 품에 안겨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의 영혼이 고요함과 평온함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내 영혼에 참된 안식을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품을 항상 그리워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금요 새벽기도회 때 시편 131편 말씀으로 나의 교만함을 깨닫게 하시며 '젖 뗀 아이의 중심'을 사모케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