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 기다림

 

 

[시편 130]

 

 

저는 제 자신을 바라볼 때 깨닫게 해주시는 부족함 중에 하나는 바로 “조급함”입니다. 어쩔 때 제 자신을 보면 마음이 조급하다보니 언행으로 다른 이들을 힘들게 하고 상처도 입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의 조급함으로 일을 그르치게 될 때도 경험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하나님께서 묵상케 하신 말씀이 바로 디모데후서 3장 4절입니다. 즉, 말세에 고통 하는 때(1절)에 사람들이 “조급하”다(rash)는 말씀입니다. 왜 조급해 집니까?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생각에 빠지는 것과 거의 동시에 우리가 인내하기를 포기할 때 우리는 조급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우리 멋대로 행동하게 됩니다. 이러한 조급함은 하나님의 뜻을 앞지르게 되고 그의 뜻을 기다리지 못함으로 잘못된 계획과 방법들을 만들어내고 결국은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조급함으로 인하여 우리는 세상 적이고 육적인 계획과 행동방침을 택하게 됩니다. 그 한 예로 우리는 아브라함과 사라를 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약속의 말씀을 받았지만 믿음으로 인내하기를 포기하고 조급함에 사로잡히므로 말미암아 결국 사래는 자기 남편인 아브람에게 그녀의 여종 애굽 사람 하갈과 동침할 것을 권면했습니다(창16:1-2). 그 권면을 받아들인 아브람은 하갈과 동침하므로 결국 이스마엘이란 아들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이스마엘은 약속의 씨가 아닙니다. 이삭이 바로 약속의 씨입니다. 조급함은 이렇게 믿음과 인내의 포기라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입니다(인터넷). 그래서 기다림이란 미덕이란 말이 있는가 봅니다. 기다림이란 우리가 신앙 생활함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우리가 이미 묵상한 시편 62편 1, 5절 말씀을 보면 성경은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 도다 …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 도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구원이시요 소망이 되시며 반석과 산성이 되시는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는 교훈을 받았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잠잠히 그리고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사30:15). 우리는 하나님을 잠잠히 바라보는 가운데 그의 구원을 기대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분명히 구원의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건져주실 것입니다.

 

오늘 성경 시편 130편 6절을 보면 시편 기자는 그의 기다림을 이렇게 비유하고 있습니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의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시편 기자는 자신의 기다림을 파수꾼들이 아침을 기다림과 비교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비교할 때 그는 파수꾼들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그의 영혼이 주님을 더 기다린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파수꾼”들은 누구입니까? 파수꾼들은 성안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지키고 보호하고자 성벽 위에서 혹여나 적군들이 침입하지 않을까 노심조차 밤새도록 보초를 서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파수꾼들은 적군의 침입 여부를 보려고 잠도 못자고 파수하므로 말미암아 성을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이 파수꾼들이 제일 기다리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아침”입니다. 그들은 밤이 밝기를 고대합니다(박윤선). 이러한 간절한 기대감으로 시편 기자는 주님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니 파수꾼들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욱더 간절한 기다림으로 시편 기자는 주님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간절한 기다림 속에서 시편 기자는 오늘 본문을 노래하며 성전으로 올라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과연 시편 기자가 그리도 주님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130편 5절을 보십시오: “나 곧 내 영혼이 여호와를 기다리며 내가 그 말씀을 바라는도다.” 시편 기자가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던 하나님의 말씀이란 하나님께서 그 계시하신 말씀대로 사죄하시고 구원해 주심이었습니다(박윤선). 여기서 우리는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범죄하므로 하나님의 징계로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여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고통스러운 상황이란 무엇이었습니까? 오늘 본문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내가 깊은데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시편 기자가 그의 범죄로 인하여 놓여 있었던 “깊은 데”란 사람이 물속에 빠진 것 같이 되고, 질식 상태가 될 정도의 극심한 환난을 의미합니다(박윤선). 마치 요나처럼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깊은 데로 들어가되 큰 고기 안에 갇혀 바다 밑 깊은 물속에 들어가 있어도 요나나 시편 기자는 간절히 사모하므로 주님을 바라보면 주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130편 1-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내가 깊은데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간구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이러한 간절한 기도 가운데 시편 기자는 만일 주님께서 자기의 과거부터 현재에 짓고 있는 모든 죄를 묵과하지 않으시고 정죄하시면(박윤선) 주님 앞에 설자가 아무도 없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감찰하실 찐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3절).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지 않으시고 우리의 모든 과거, 현재 또한 앞으로 지을 모든 죄까지고 기록하고 계시다면 감히 거룩하신 주님 앞에 설자가는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감히 거룩하신 주님 앞에 범죄 한 자로서 설 수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사유하심을 믿고(4절) 겸손히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4절) 하나님께 간절히 자기의 죄를 사해주시길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하나님의 사죄의 말씀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간절히 기다려지겠습니까? 죄를 범한 후 하나님의 징계로 인하여 깊은 침체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간절히 사죄의 기도를 드릴 때 우리는 그 기도를 드린 후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해 주시길 간절히 기다릴 것입니다:‘내가 너의 죄를 다 도말하였고 다 지웠다. 이젠 너의 죄를 기억지도 아니한다’. 우리가 그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면 이 얼마나 자유와 해방 가운데 기뻐 뛰며 춤을 추며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리지 않겠습니까?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그를 사죄해 주시길 간절히 기도한 후 하나님의 사죄의 말씀을 듣기를 사모하므로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잠잠히 기다렸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시편 기자는 자기의 범죄로 인하여 놓여 있었던 고통스러운 상황, 즉 깊은 데서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사해주셨다는 증거로 자기를 건져 주시길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서 기다렸습니다. 즉, 그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기도하며, 기대하며, 기다렸습니다. 어떻게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기도하면서 기대하며 기다릴 수 있었습니까? 저는 그 대답을 오늘 본문 7-8절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찌어다 여호와께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구속이 있음이라 저가 이스라엘을 그 모든 죄악에서 구속하시리로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풍성한 구속을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죄 사함과 더불어 구원의 은총을 위하여 기도하며, 기대하며,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과연 여러분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풍성한 구속을 믿으십니까?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모든 죄악에서 구속해 주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으십니까?

 

혹시 여러분 중 시편 기자처럼 깊은 데 놓여 있는 분이 있으십니까? 마치 물속에 빠져서 점점 깊이 가라앉는 것과 같이 극심한 환난 가운데 놓여 있지는 않으십니까? 그리고 혹시 내가 그 깊은 데 놓여 있는 이유가 우리의 죄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풍성한 구속을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죄 사함과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고 기대하며 기다리십시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욱더 주님을 기다리십시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모든 죄를 사해 주시고 여러분이 놓여 있는 극심한 환난 가운데서도 여러분을 건져 주실 것입니다.

 

 

 

죄에서 자유과 구원의 기쁨을 사모하면서,

 

 

제임스 김 목사 나눔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기다리는 자들을 더욱더 간절히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풍성한 인자하심을 의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