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

 

 

[시편 129]

 

 

지난 주 여러분도 다 뉴스를 접하신 줄 압니다. 레돈도 비치 지역에서 교회를 담임하며 섬기던 목사님 한 분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아들의 손에 하반신에 칼에 찔려 결국 숨지는 사고 소식 … 그 뉴스를 신문으로 접한 후 인터넷 신문을 좀 더 찾아보면서 안 그래도 목회로 인해 많이 힘들고 괴로운 상황 가운데 계셨던 것 같은데 이렇게 자식의 칼에 맞아 죽으셨다는 소식은 참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소식을 접할 때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하십니까? 참 괴로운 일과 곤고한 일, 근심된 일, 참으로 죽을 일이 쌓인 세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이 소식을 접하기 전 금요일 새벽기도회 때 신명기 31장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여호수아와 또한 레위 자손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들에게 죽음을 앞에 두고 말씀한 모세의 마지막 유언과 같은 말씀을 묵상하였습니다. 그 말씀을 보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에게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고 권면하면서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라고 모세는 말하였습니다. 특히 신명기 31장 6절 하반절을 보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행하실 것임이라 반드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는 말하였습니다. 그런 후 그는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백성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풍성한 가나안 땅에 들어가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고 우상숭배의 죄를 범할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20절).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노하사 그의 얼굴을 숨기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허다한 재앙과 환난”이 임할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17 , 21절). 그들이 이방인 나라에게 삼킴을 당할 것을 예언해 주셨습니다(17절). 그 때서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재앙이 우리에게 임함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 중에 계시지 않은 까닭이 아니뇨 할 것이라”(17절)고 말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일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시지 않으시고 그의 얼굴을 그들에게서 가리우시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 때문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재앙과 환난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를 범하므로 하나님께 징계를 받아 이방 나라들로 인하여 박해를 당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 시편 129편 말씀의 배경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 있을 때부터 이방인 나라 강적들에게서 박해를 받아 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역사라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건설 초기부터 이스라엘은 주위 이방인 나라들에게 박해를 받아 왔고 심지어 지금도 이스라엘은 주위 나라들에게 박해를 받고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선민 박해의 역사”라고 합니다(박윤선). 이러한 선민 박해의 역사 속에 있었던 시편 기자는 오늘 본문 시편129편 2절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저희가 나의 소시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게 하였으나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원수 이방인 나라들로부터 반복적으로 괴로움을 당하는 역사였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구약 당시에는 애굽부터 시작해서(모세 시대), 모압, 에돔, 미디안, 블레셋, 앗수르, 바벨론, 로마 등등 이러한 이방인 나라들의 침략과 핍(압)박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번번이 괴로움을 당하였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비록 지금은 이스라엘이 핵무기도 보유한 나라로서 강국이라고 하지만 주위에 팔레스타인들과 레바논과 시리아, 이집트, 이란 등등과의 갈등 속에서 이스라엘이 얼마나 괴로움을 당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시편 기자는 오늘 본문 시편 129편 1절과 2절에서 반복적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나의 소시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게 하였도다(하였으나).”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인 우리, 즉 주님의 몸 된 교회는 언제든지 원수들의 핍박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뿐만 아니라 교회 역사를 통해서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 로마 제국의 황제 네로가 기독교인들을 핍박한 사례를 들 수 있습니다(64AD)(첫 번째 박해). 사도 시대였던 64년 여름, 로마제국의 수도 로마 시에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대 화재가 발생했는데 6일 동안 강력한 불길이 14개 구역으로 나누어진 도시 중 10개 구역이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사람들 사이에는 황제 네로가 로마를 자신의 뜻대로 다시 건설하기 위해 로마 시에 불을 지른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게 되었고 그런 소문은 퍼져가며 확대되어서 후에는 로마가 불타고 있는 동안 네로 황제가 수금을 타며 노래했다는 소문으로까지 발전하였다고 합니다. 그러자 시민들의 분노는 네로를 향하게 되므로 말미암아 네로는 자신의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희생양을 찾았는데 그 대상이 기독교인들 이었던 것입니다. 네로는 기독교인들이 로마시를 불 질렀다고 알리고 그들을 박해한 것입니다. 이 당시 네로의 치하에서 기독교인들의 박해 모습을 타키티우스는 아래와 같이 비교적 상술하고 있습니다: "네로는 기독교인들 을 죽이기 전에 시민들을 위한 오락에 이용하였다. 신자들 중 일부는 털옷을 덮어 씌워 개들이 찢어 죽이게 하였다. 또 다른 자들은 십자가형에 처하였다. 또 다른 이들은 불을 질러서 밤에 등불처럼 밝히게 하였다. 네로는 자기의 청원을 열어 이러한 쇼를 연출하였고 그는 마치 전차 경주처럼 옷을 입고 그 전차를 타고 돌아다님으로써 원형 경기장에서 스페타클을 연출하였다. 이 때문에 시민들은 벌을 받아 마땅한 이 사람들에게 자비심을 느끼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이들은 일반인들의 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 인간의 잔인성을 만족시키기 위해 죽어갔기 때문이다"(인터넷). 이 네로 황제의 기독교인들 박해 외에도 교회를 역사를 보면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기독교인들 핍박(81-96 AD)(두 번째 박해)과 더불어303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284-305)의 박해를 들 수 있습니다. 특히 이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기독교인들 박해를 가리켜 최악의 박해였다고 합니다. 이때가 교회들은 무너지고, 성경이 불태워졌으며, 모든 기독교인의 권리가 정지되었었고 또한 기독교인은 이교신에 대한 희생제물이 되었다고 합니다(인터넷). 결국 하나님의 백성들은 시편 기자 시대 때에 초대 교회 시대 때나 지금이나 또한 앞으로 주님 재림하시기 전까지는 계속 환난과 핍박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정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원수들에게 핍박을 당하였습니까? 오늘 본문 시편 129편 3절에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밭가는 자가 내 등에 갈아 그 고랑을 길게 지었도다.” 이것은 비유의 말씀으로 이스라엘을 박해하는 자들이 이스라엘을 폐허로 만들고 거기에 밭 갈 듯이, 여지없이 박해한 것을 가리킵니다(박윤선). 로벌츠에 의하면, 팔레스틴에서는 박해를 받는 자가 박해자들을 가리켜 “저들이 내게 밭 갈았다”라고 함이 보통으로 쓰는 말이라고 합니다(박윤선). 이것은 한 마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원수들의 핍박을 당하므로 극도로 비참한 데까지 떨어졌다는 말씀입니다(박윤선).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극도로 비참한 데까지 떨어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4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는 의로우사 악인의 줄을 끊으셨도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원수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압박하는 가운데 사용하는 줄들을 끊으시므로 그가 사랑하는 백성들을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주셨습니다. 마치 새가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남 같이(124:7) 하나님께서는 그 올무와 같은 줄들을 끊으시사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이렇게 확신 있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나의 소시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게 하였으나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129:2). 즉, 이스라엘의 원수들은 이스라엘을 여러 번 괴롭게 하였지만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결국 실패케 하시므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승리케 하셨습니다. 이 승리의 경험과 확신을 가지고 시편 기자는 성전에 올라가는 오늘 본문 노래를 지은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전에 올라올 때 세상에서의 영적 싸움 가운데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승리한 경험과 더불어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올라와야 할 것입니다.

 

이 구원의 은총을 되새겼던 시편 기자는 이렇게 기원하였습니다: “무릇 시온을 미워하는 자는 수치를 당하여 물러갈찌어다 저희는 지붕의 풀과 같을찌어다 그것은 자라기 전에 마르는 것이라”(129:5-6). 그는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기원하기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워하는 그들의 원수들로 하여금 수치를 당케 하시길 원하였고 또한 벌 받기를 기원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붕의 풀과 같을찌어다”라는 말씀의 의미입니다(6절). 지붕의 풀은 뿌리가 깊지 못하므로 잠간 동안 자라다가 말라 버립니다(박윤선). 시편 기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수들이 그렇게 되길 하나님께 기원하였습니다. 그는 잠깐 동안 있다가 속히 말라 버리는 풀처럼 없어지길 하나님께 기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의 원수들, 즉 하나님의 원수들을 아무도 축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8절). 그 이유는 그들은 하나님의 축복권 밖에 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박윤선).

 

성경 디모데후서3장12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핍박을 많이 받습니다. 많은 괴로움과 고난과 고통이 있겠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확신과 더불어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믿음으로 나아가십시다. 성경 요한복음 16장 33절 하반절 말씀을 붙잡으십시다: “…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을 의지하여 담대하게 나아가길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승리의 확신 속에서 영적 싸움에 임하여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의 찬가를 부르길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