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시편 126]

 

 

지난 주 금요일 새벽 4시20분 경 저는 꿈에서 너무 크게 웃다가 깨었습니다. 꿈속에서 저는 고 김창혁 목사님을 만나서 기쁨으로 농담하며 즐거운 대화를 하다가 크게 웃다가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지 이렇게 약 1년이 되어서 꿈속에서라도 목사님을 뵈니 기뻤습니다. 만일 그것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면 여러분은 믿으시겠습니까? 결코 아무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더 이상 이 세상에서는 목사님을 뵐 수 없다는 사실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다시 목사님을 볼 수 있다는 소망은 저에겐 없습니다. 오직 저도 이 세상을 떠나 주님 앞에 가게 될 때 저는 천국에서 목사님을 다시 만날 것입니다. 저에게는 이 소망은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부활시키셔서 제 앞에 보내신다면, 그래서 제가 다시 목사님을 이 세상에서 만날 수 있다면 저는 분명히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로 인하여 놀라고 또 놀랄 것입니다. 마치 이것이 생시인가 꿈인가 저는 제 자신을 꼬집어 볼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이 여러분의 삶 속에서 도저히 믿기지 않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길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다시 말하면, 여러분이 꿈꾸는 간절한 소망은 무엇입니까?

 

오늘 성경 시편126편1절 말씀을 보면 시편 기자는 마치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믿기지 않는 일이 과거에 일어 났었길래 그는 마치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과거에 일어났던 믿기지 않는 기적 같은 일이란 바로 하나님께서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대 땅으로 돌아오게 하신 일을 가리킵니다(박윤선). 이 하나님의 큰 구원의 역사를 생각할 때 시편 기자나 포로에서 유대 땅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도저히 믿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특히 포로 생활 가운데 슬픔과 눈물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사모하여 간구하는 가운데(5-6절) 기도의 응답이 더딤으로 인하여 좌절하고 낙망하며 절망 가운데 있었을 때, 하나님의 극적인 구원의 역사로 말미암아 포로 생활에서 해방되어 자유의 몸들이 되었을 때, 그들에게 있어서 이 얼마나 믿기지 않는 기적 같은 일이었겠습니까? 그래서 시편 기자는 그 때 지난날의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생각하면서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 달 1월 미국 첫 흑인 대통령인 Barak Obama의 취임식을 보면서 여러 흑인 할머니들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분명히 그들과 또한 많은 흑인 시민들은 꿈꾸는 것 같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도저히 상상도 못하고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특히 옛날엔 흑인들이 백인들을 주인으로 섬기고 노예 생활을 할 때만 해도 감히 어느 누가 (흑인이던 백인이던) 흑인이 대통령이 될 줄 꿈을 꾸었겠습니까? 흑인 노예 시대까지 갈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1960년대만 해도 제 생각엔 아무도 감히 흑인이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꿈을 꾸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 달 Obama 대통령 취임식 때 많은 흑인들은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의 1963년 링컨 기념일인 8월28일에 25만 명의 군중이 워싱턴DC 링컨기념관 앞에 모였을 때 한 연설 “나에게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가 이루어 졌다고 믿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 킹 목사님은 24만명 군중 앞에서 연설을 하면서 그가 꾸고 있었던 꿈을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언젠가는 조지아의 붉은 언덕에서 이전 노예의 자녀들과 노예 주인의 자녀들이 형제애로 한 식탁에 앉을 것입니다. 언젠가는 앨라배마의 인종주의자들이 물러가고 거기서 나의 어린 아들과 딸이 백인의 아들딸들과 형제와 자매로 손에 손을 잡고 살아갈 것이라는 꿈입니다”(인터넷). 지금 이 미국을 보시길 바랍니다. 이 킹 목사님의 꿈이 이루어 진 것을 물론이요 이젠 흑인이 미국의 대통령이 된 것을 볼 때 이것은 특히 흑인들에게 믿기지 않는 꿈과 같은 일일 것입니다. 이젠 우리도 동양인으로써 꿈을 꿀 수 있는 것입니다. 제 자녀 시대에 동양인 대통령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 시편 126편에서 시편 기자는 꿈꾸는 것만 같았던 그 일, 즉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하나님의 큰 구원의 역사로 유대 땅으로 다시 돌아온 그 일을 상기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2-3절). 그는 꿈꾸는 것 같았던 그 일을 생각하면서 그 때 가득했던 웃음과 기쁨에 젖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때, 즉 하나님께서 큰 일(“대사”)을 행하셨을 때(3절),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기쁨 속에서 다 함께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던 기억을 되살렸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큰 구원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을 때 열방 중에서 이방인들도 “여호와께서 저희를(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였던 것(2절)을 시편 기자는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그는 아직까지 이방에 남아 있어서 유대 땅으로 돌아오지 않은 동료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 것을 우리를 볼 수 있습니다(박윤선):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리소서”(4절). 여기서 “남방 시내들 같이”란 말씀은 그 시내들이 강우기에 이르러서 넘쳐흐르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 포로들이 전부 귀국하게 되기를 시편 기자는 기원한 것입니다(박윤선). 이러한 기도 가운데 시편 기자는 기도 응답의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오늘 본문 5-6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편 기자는 아직도 포로 생활을 하고 있는 동족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고통스러운 포로 생활 가운데서 비록 눈물을 흘리지만 하나님께서 과거에도 포로 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예 생활 가운데서도 큰 구원의 역사를 이루셔서 유대 땅으로 돌아오게 하셨던 것처럼 아직도 남아 있는 포로 생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주셔서 기쁨으로 유대 땅으로 돌아올 줄 확신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눈물을 흘리며 기도할 때 분명히 기쁨으로 하나님께 찬양할 날이 옵니다. 정말 꿈만 같은 일이 우리 삶 속에 일어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 하나님께서는 꿈만 같을 일 일지라 할지라도 그의 뜻 가운데서 현실화 하실 수 있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의 기도의 눈물을 보시고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사 큰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슬픔을 돌이켜 춤을 추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우리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시사 우리로 하여금 기뻐하며 찬양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구원의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꿈을 꾸시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주님 안에서 꿈을 꾸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새벽 미명에 주님의 전에 올라와 사랑하는 이들을 생각하며 기도하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