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시편 120]

 

 

요즘 저와 제 아내는 저희 집 막내 딸 예은이 때문에 종종 웃곤 합니다.  얼마 전 교회에 갔다 오면서 차 안에서 저희 집 막내 딸 예은이에게 “인내”가 뭐냐고 하길래 저는 인내는 기다리는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때 제 옆 좌석에 앉아 있었던 제 아내가 예은이에게 인내는 ‘waiting nicely’(예쁘게 기다리는 것이)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 때 예은이는 장난치는 듯 ‘waiting nicely’가 뭐냐고 하길래 제가 아예 그 문장을 spelling해서 “w” “a” “i” “t” “i” ‘n” “g” “n” “i” “c” “e” “l” ‘y”라고 불러주니까 예은이는 “O” “M “G”라고 간략하게 답변하더군요. ㅎㅎㅎ  여기서 “O.M.G”란 “oh my gosh”란 뜻입니다. ㅎㅎㅎ 그 때 저는 아내랑 참 많이 웃었습니다. 지금도 그 때 그 순간을 생각하면 이렇게 웃음이 나옵니다.  그러던 중 지난 주 추수감사절 연휴 때 장인, 장모님 댁 갔다가 운전하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거의 다 와서 딜런과 예리는 자고 있을 때 예은이가 저희 부부끼리만 얘기하니까 자기도 끼어 달라고 예은이가 자꾸만 말을 걸었습니다.  그 때 예은이가 저희 부부에게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데 알아 맞혀 보라고 하면서 자기가 원하는 그것이 “R”로 시작한다고 힌트를 주었습니다.  그 때 제 아내가 예은이가 원하는 것이 먹는 것이냐고 하니까 예은이는 아니라고 하면서 마시는 것(drinking) 이라고 말하더군요.  그 때 저는 속으로 “R”로 시작하는 마실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을 때 이 아이가 더 어릴 때 “물”을 “마누”(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음)라고 한 것을 보면 지금 물을 마시고 싶은가 보다 생각하여”“R”로 시작하지 않는 줄 알면서도 “water”이라고 답하니까 예은이가 “You are right”, 즉 제가 맞다고 exciting하게 소리 질렀습니다.  그 때 저희 부부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웃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예은이가 종종 뭐라고 혼자 중얼거리는가 하면 ‘Glory to God in the highest, and on earth peace among men’(눅2:14)라고 외우면서 또한 저희 부부에게 자랑하곤 합니다.  아마 유년주일학교에서 크리스마스이브 때 할 연극에 대사를 외우는가 봅니다.  한국 성경 누가복음2장14절에 있는 구절 같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저는 예은이게 요즘 종종 이렇게 말해 줍니다: ‘Let us make a happy family’(행복한 가정을 만들도록 힘쓰자).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선 찡찡거리고, 울고, 화내고 등등 하면 아니 될 것임을 예은이에게 가르쳐 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를 생각할 때도 이렇게 권면하고 싶습니다: “행복한 교회를 만들도록 힘쓰십시다.”  그러기 위해선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성경 시편 120편 7절 말씀을 보면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화평을 원할 찌라도 내가 말할 때에 저희는 싸우려 하는도다.”  우리들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로서 당연히 시편 기자처럼 화평을 원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 교회를 행복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9).  성경은 저와 여러분을 가리켜 화평케 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의 아들, 딸로서 화평을 원하며 또한 화평케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 가운데 싸움과 다툼이 있습니까?  왜 교회 안에서 싸움과 다툼이 있습니까?  사도 야고보는 그 원인이 우리 안에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약4:1).  이 싸우는 정욕으로 말미암아 교회 안에서 싸움과 다툼이 일어날 때 그 공동체 안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3:16).  그러므로 사도 야고보는 이렇게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 하지 말라”(14절).

 

오늘 본문 시편 120편에 나오는 시편 기자는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과 함께 오래 거하면서(6절) 그들 가운데서 화평을 원했지만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은 다투기를 좋아 하며 거짓말로 남을 해아기를 즐기고 있었습니다(5절, 박윤선).  그러므로 그는 고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있는 모습을 우리는 봅니다: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궤사한 혀에서 내 생명을 건지소서”(120:1-2).  우리 또한 시편 기자처럼 이러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물론 오늘 본문에 나오는 시편 기자는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6절)의 거짓된 입술과 궤사한 혀로 인하여 괴로움과 고난을 당하고 있었으므로 그들에게서 건져달라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교회 안에서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의 거짓된 입술과 궤사한 혀로 인하여 어려움과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오늘 본문의 시편 기자처럼 “거짓된 입술과 궤사한 혀에서” 건져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2절).  그러나 만일 우리가 우리 안에 화평을 미워하는 죄악 된 정욕을 발견하게 된다면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거짓을 말하고자 하는 우리 자신의 입술(혀)을 제어하고 우리 안에 있는 화평을 미워하는 죄악 된 정욕을 회개하며 그 정욕에서 우리 자신을 건져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가운데 화평을 원하는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거짓된 입술과 궤사한 혀”입니다(2절).  사도 야고보가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를 내서는 아니 됩니다(약3:10).  만일 우리가 우리의 혀를 조심하지 아니하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처럼 거짓된 입술과 궤사한 혀를 놀려 교회의 화평을 깬다면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 궤사한 혀여 무엇으로 네게 주며 무엇으로 네게 더 할꼬 장사의 날카로운 살과 로뎀나무 숯불이리로다”(120:3-4). 성경은 주님께서는 화를 내리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장사의 날카로운 살이 갑자기 날아와서 몸에 꽂힘 같이 돌연적이고, 치명적인 환난이 그런 거짓된 혀의 소유자에게 임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박윤선).  그리고 성경은 주님께서는 로뎀나무 숯불처럼 꺼지지 않는 불이 몸에 닿는 듯한 화를 거짓된 혀의 소유자에게 내리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박윤선).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화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처럼 거짓된 입술과 궤사한 혀를 놀려 교회의 화평을 깨서는 아니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시편 기자처럼 화평을 원하는 자들이 돼야 합니다.  즉, 우리는 화평을 사랑하는 자들, 또한 화평케 하는 자들이 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 드려야 합니다.  물론 우리 교회 안에서 싸우는 지체들이 있다면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야겠지만 혹 여나 우리 안에 다투고 싸우고자 하는 정욕을 발견하게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그러한 정욕에서 건져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우리는 우리의 입술을 제어해야 합니다.  우리는 진리를 거슬려 거짓을 말해서는 아니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화평”이 되시는 예수님처럼(엡2:14) 화평을 전하며(17절) 화평(화목)케 하는 사역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고후5:18).  그러므로 교회의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잘 지켜 나아가므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이웃에게 칭찬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화평을 원하는,

 

 

제임스 목사 나눔

(평강의 왕이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는 크리스마스 계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