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나의 행보를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소서!”

 

 

[시편 119129-136]

 

 

한 길을 신실하게 끝까지 걷는다는 것, 저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우리는 한 길을 계속 끝까지 신실하게 걷기보다 이런 저런 인생의 미혹의 길에 빠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걸음에는 좀 견고함이 필요합니다. 좀 묵묵히 한 길을 걷는 견고함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주님이 걸어가신 골고다의 길, 그 좁은 길을 걸음에 있어서 우리는 우리의 행보를 더욱더 굳게 세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앞에 펼쳐지는 넓은 길에 미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성경 시편 119편 133절을 보면 시편 기자는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나의 행보를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아무 죄악이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저는 오늘 이 말씀 중심으로 “나의 행보를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소서!”란 제목 아래 한 2가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왜 우리는 우리의 행보를 주님의 말씀에 굳게 세워야 합니까?, (2) 어떻게 우리는 우리의 행보를 주님의 말씀에 굳게 세울 수 있습니까?.

 

첫째로, 왜 우리는 우리의 행보를 주님의 말씀에 굳게 세워야 합니까?

 

그 이유는 2가지입니다.

(1) 아무 죄악이 우리를 주장치 못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행보를 주님의 말씀에 굳게 세워야 합니다.

 

언제 죄악이 우리를 주장합니까? 주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두지 않았을 때 죄악이 우리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주께 죄를 범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이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경희 여기므로 그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는 현상을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서도 봅니다. 이러한 현상의 결과를 바로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죄를 범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두지 않으므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이 그 말씀에 주장을 받기보다 우리의 옛 본능인 죄악으로 하여금 주장케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래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죄악으로 우리를 주장케 해서는 아니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두므로 그 말씀으로 하여금 우리를 주장케 해야 합니다. 주님의 계명을 더욱더 사랑하므로 그 계명을 지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행보를 주님의 말씀에 굳게 세워야 합니다.

 

(2) 우리가 우리의 행보를 주님의 말씀에 굳게 세워야 하는 이유는 사람들의 압박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119편 134절을 보십시오: “사람의 압박에서 나를 구속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법도를 지키리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나아가므로 우리에게 오는 압박은 우리로 하여금 과연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굳게 서 있는지 안서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좋은 시험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 있지 않으면 우리는 압박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포기하고 세상과 타협하므로 하나님께 범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 있으면 우리에게 몰아닥치는 압박이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행보를 더욱더 주님의 말씀에 굳게 서게 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압박에서 건져주심도 물론 구원이지만 압박으로 인해 더욱더 주님의 말씀에 굳게 서게 되는 것 또한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둘째로, 어떻게 우리는 우리의 행보를 주님의 말씀에 굳게 세울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 시편 119편 129-136절에서 한 3가지로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1) 우리는 우리의 행보를 주님의 말씀에 굳게 세우기 위해서 우리는 우둔한 자가 돼야 합니다.

 

오늘 본문 130절을 보십시오: “주의 말씀을 열므로 우둔한 자에게 비취어 깨닫게 하나이다.” 여기서 “우둔한 자”(the simple)란 하나님 앞에서 두 마음을 품지 않은 자로서 일편단심 하나님만 공경하려는 신자를 가리킵니다(마11:25; 시27:4)(박윤선). 이러한 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열리면(unfolding) 깨달음(understanding)이 있습니다. 그리고 깨달음이 있을 때 우리는 우리의 행보를 주님의 말씀에 굳게 세울 수 있습니다.

 

(2) 우리는 우리의 행보를 주님의 말씀에 굳게 세우기 위해서 우리는 입을 크게 열고 헐떡여야 합니다.

 

오늘 본문 시편 119편 131절을 보십시오: “내가 주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이것은 사람이 공기를 호흡하지 않으면 죽겠기 때문에 호흡하는 것처럼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계명이 아니면 죽을 줄 알고 사모하였습니다(박윤선). 그만큼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입을 열고 좀 헐떡여야 합니다. 그 말씀을 먹지 않고는 죽는다는 사실을 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살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는 좀 생존위기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3) 우리가 우리의 행보를 주님의 말씀에 굳게 세우기 위해서 기이한 주님의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오늘 본문 시편 119편 129절을 보십시오: “주의 증거가 기이하므로 내 영혼이 이를 지키나이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증거의 기이함을 경험하고 있었기에 주님의 계명을 지켜 나아갔습니다. 그는 그의 행보를 주님의 말씀에 굳게 세워 나아갔습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기이함을 경험하고 있다면 우리는 더욱더 그 말씀에 순종하며 지키려고 힘쓰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 하나님의 말씀의 기이함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데 게을리 할 것입니다. 우리는 시편 기자처럼 주님의 말씀을 배우려고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135절).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지키는 자들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만들고 있을 것입니다(136절). 우리는 더 이상 그래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이함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 말씀을 순종하므로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는 더 많이 그리고 더 깊이 경험해야 합니다(132절).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행보를 주님의 말씀에 굳게 세워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보를 주님의 말씀에 굳게 세워 나아가야 합니다. 아무 죄악이 우리를 주장치 못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행보를 주님의 말씀에 굳게 세워 나아가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사람들의 압박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행보를 주님의 말씀에 굳게 세워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우둔한 자가 돼야 합니다. 우리는 일편단심 주님만 공경하는 마음 자세로 주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입을 크게 열고 살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그 기이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나아가므로 말미암아 우리의 행보를 주님의 말씀에 굳게 세워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천성을 향한 나의 발걸음을 주님의 말씀에 굳게 세워 나아가길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반석 위에 집을 세우길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