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나의 소유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를 지킨 것이니 이다"(시편 11956).

 

 

     새해를 맞이하여 승리장로교회 한국어 예배 시간 때에 입례 송으로 복음 성가 "나의 모습 나의 소유" 2절을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있습니다.  "나의 소유"란 말을 생각하면 물질을 생각하기가 쉽지만 오늘 본문을 통해서 "나의 소유"란 말의 다른 면을 볼 수가 있습니다.  즉 "나의 소유"란 "주의 법도를 지킨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주님의 법도를 아는 것이 자기의 소유라고 말씀하지 않고 그 법도를 지킨 것이 자기의 소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시편 기자는 주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삶, 즉 말씀 인격화 된 삶을 살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좀 더 문맥 49절에서 51절에 근거하여 시편 기자의 말씀 인격화 된 삶을 조명해 본다면 한 3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시편 기자는 주님이 자기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잊지 않고 살았습니다.

 

성경 시편 119편 49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  왜 시편 기자는 자기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길 원했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그로 소망이 있게 하였기 때문입니다(49절).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저는 로마서 4장 18절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생각났습니다.  그가 "바랄 수 없는 중에"(Against all hope) 바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말씀인 “네 후손이 이같으이라”는 말씀(18절)을 기억하고 그 말씀을 주님께서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21절).  즉, 약속에 이끌림을 받는 삶(the promised word-driven life)이야 말로 말씀 인격화 되는 삶을 사는 비결이요 그 주님의 말씀이 '나의 소유'가 되는 비결입니다.


     둘째로, 시편 기자는 주님의 말씀으로 위로를 삼았습니다.

 

성경 시편 119편 50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  어느 누구도 우리를 위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의 위로를 거절 할 수밖에 없는 곤란 중에서 주님의 위로만을 구하려고 고독의 자리에서 몸 부리 치며 눈물로 통곡하며 간구할 때에 주님께서는 약속의 말씀으로 위로를 해주십니다.  저에겐 요한복음 6장1-15절 말씀인 오병이어의 약속의 말씀이 제일 큰 위로가 됩니다.  쓰러지고 자빠져 낙심하여 어느 누구도 일으켜 세워주지 못할 때, 또한 어느 누구의 위로를 거절할 수밖에 없는 영적 상태에 놓여 있을 때 오병이어의 약속의 말씀이 저를 살리시고(시119:50) 일으켜 주시므로 말미암아 오늘 날까지 오뚝이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가 약속의 말씀으로 위로를 삼고 살았던 이유는 그 말씀이 그를 살리는 부흥(revival)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적 부흥을 경험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하나님의 말씀 순종함이 나의 소유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 셋째로, 시편 기자는 주님의 말씀을 떠나지 않는 삶을 살았습니다.

 

성경 시편 119편 51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 나는 주의 법을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교만한 자가 그를 심히 조롱하였어도 시편 기자는 주님의 법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 원리를 생각할 때에 요한복음 6장 68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주님의 가르침이 너무 어려워 많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떠나 다시는 그와 함께 다니지 않았을 때에(요 6:66)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67절)고 말씀하시니까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68절). 이 얼마나 놀라운 고백입니까?  우리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말씀이 너무나 어렵고 믿기가 힘들어 주님과 주님의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베드로처럼 주님의 "영생의 말씀"을 맛보지 못하므로 영원한 생명을 주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기보다 순간적인 사단의 가짜 '복음'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우리 목사들과 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조차 영생의 말씀보다 '이생의 말'을 선포하고 거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을지라도, 어느 누가 뭐라고 할지라도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른 말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의 약속의 말씀이 그에게 소망이 없을 때 소망을 주었고 곤란 중에 위로와 더불어 그를 소생케 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말씀 인격화 되어가는 우리의 삶이 "나의 소유"가 되어 그 삶을 주님께 받치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일 하나님의 전에 올라와 예배를 드리면서 헌금을 받치는 것이 '나의 소유'를 하나님께 다 받치는 것이 아니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으로 하여금 위로를 받으면서 떠나지 않는 삶을 살다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즉, 우리는 약속이 말씀에 이끌림을 받는 삶을 살다가 주일 주님의 전에 올라와 말씀 인격화 된 우리의 삶과 더불어 안에서부터 밖으로 표현되는 찬양과 기도와 헌금과 우리의 귀(말씀 경청)를 주님께 그 모습 그 대로 바쳐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나의 소유'가 될 것입니다.

 

 


'나의 소유'를 주님께 늘 바치며 목회에 임하기를 간절히 소원하면서

 


제임스 목사 나눔
(말씀 인격화 되는 삶을 추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