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시편 1161-12]

 

 

하나님의 은혜와 여러분들의 사랑의 배려 가운데 저는 지난 두 달 동안 안식 월을 잘 보냈습니다. 한 5주 정도는 제 개인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싸이월드 인터넷 홈페이지 사역 개념으로 한국에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고 허락해 주신 귀한 만남들을 많이 가졌습니다. 이 만남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눈가에 흐르는 눈물만 보게 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의 눈물 또한 엿보게 하셨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아픔과 상처, 괴로움과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없는 가운데 고통과 아픔 속에서 막연한 믿음으로 버티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이리저리 치이고, 낙심과 좌절 가운데서도 소망되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질병 가운데 있는 분들도 있었고, 과거에 상처와 아픔 가운데 있는 분들도 있었으며, 현재에 부부의 갈등 및 불화와 자녀 양육의 고충 및 직장에서 있는 어려움들, 그리고 젊은이들은 불확실한 미래로 말미암아 근심 가운데 있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이것뿐이겠습니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고충들이 우리 모두에게 있을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러한 사람들을 만나게 하셨을까요?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마음을 저에게 가르쳐 주시고자 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 만나는 몇 몇 사람들에게 나눴지만 왠지 하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는 분들을 만나게 하시사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는 것을 보게 하시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들으시는 것을 듣게 하시고자 하신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한국 사역을 감당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성경책을 읽다가 성경 누가복음 6장 21절 하반 절에서 우는 자들에게 희망이 있다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그 희망의 메시지는 바로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라는 것입니다. 왜 우는 자는 복이 있습니까? 그 이유는 우는 자는 웃을 것이기 때문입니다(21절).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우는 자를 위로해 주실 것이요(24절)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는 자들에게 큰 상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23절).

 

이렇게 한국에서 한 5주 있으면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누리다가 저는 미국으로 돌아와 좀 있다가 장인 어르신 댁에 한 1주일 가 있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기에 그저 저는 육신의 질병으로 고생하고 계시는 장인 어르신 옆에서 찬양을 하나님께 드리고, 성경을 읽어드리며 또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지난 번 추석 때 장인, 장모님을 모시고 가족 의사 선생님을 만나러 갔다가 장인 어르신이 폐암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저희 교회 김 집사님은 암 수술을 하신 후 병원에 입원해 계십니다. 또 다른 김 집사님의 여동생 분도 암 수술을 하신 후 병원에 입원해 계시고 저희 교회 부목사님의 어머님도 암 수술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질병과 고통 중에 계신 분들을 생각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과연 저와 여러분들은 사랑하는 이 분들을 생각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는 그 대답을 오늘 성경 시편 116편 2절에서 찾게 되었습니다: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오늘 본문 시편 116편에 나오는 시편 기자는 지금 하나님께 이렇게 결심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평생에 기도하겠습니다.’ 한 마디로, 그는 기도에 헌신했습니다. 왜 그는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라고 결심하였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셨기 때문입니다(1, 2절). 과연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으십니까? 과연 여러분은 여러분이 고통 중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으십니까? 이번에 한국에서 하나님께서 만나게 하신 부부가 있었습니다. 남편 되시는 분은 교회 장로님, 그리고 부인은 권사님으로서 교회에 참 신실하게 섬기시며 봉사하시는 부부이십니다. 그 분들의 아드님을 통해서 지금 장로님은 암이 재발하며 고생하고 계시고 또한 부인되시는 권사님은 뇌종양 수술을 받으신 후 고생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고 찾아뵈었습니다. 첫 번째 찾아뵈었을 때는 저는 권사님의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권사님을 위하여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할 때 그 권사님은 계속 “아멘, 아멘” 하시더군요. 제가 헤어질 때 미국 들어가기 전에 다시 한 번 찾아뵙겠다고 약속을 드렸기에 저는 오는 날 토요일 다시 그 장로님/권사님 댁에 찾아갔었습니다. 그 날에는 두 부부가 다 함께 계셔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눈 후 제가 “좋으신 하나님”을 함께 찬양하자고 권면드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제가 일어나서 기도를 드리려고 할 때 장로님은 제 다리를 잡으시면서 앉아서 기도하자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동그랗게 셋이서 앉아서 서로 손을 잡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그 때에도 그 권사님은 “아멘, 아멘”라고 힘차게 말씀하시더군요. 여러분, 오늘 본문에 나오는 시편 기자는 믿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3절), “큰 곤란”(10절)을 당했을 때 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가 만난 환난과 슬픔, 큰 곤란은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망의 줄”과 “음부의 고통”이라고 말한 것입니다(3절). 그는 그러한 가운데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시편 기자는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었을 때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만일 저와 여러분이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면 하나님을 찾는 우리의 기도가 어떠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 뭐라고 간절히 기도를 드리실 것 같습니까?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4절). 그는 하나님께 “내 영혼을 건지소서”라고 부르짖었습니다(4절). 그리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시사 그를 구원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6절) 그의 영혼에 평안함도 주셨습니다(7절). 바로 이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하여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영혼의 평안함을 누립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찬송가 470장을 하나님께 찬양 드릴 수 있습니다: (1절)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후렴)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는 시편 기자를 후대하셨고(7절) 또한 그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12절). 이 풍성한 은혜를 경험한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12절).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를 깨달아 알고 있습니까?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되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엡3:20)의 그 모든 은혜를 깨달아 알고 있습니까? 만일 저와 여러분들이 그 풍성한 은혜를 조금이나마 깨달아 알고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시편 기자처럼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라고 결심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기도의 맛을 본 자들은 시편 기자처럼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라고 결심하면서 기도에 헌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우리 삶 속에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만드는 환난과 고통과 슬픔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 오늘 본문 6절 말씀처럼 우리는 환난과 고통과 슬픔 가운데 우리는 좀 “어리석은 자”가 돼야 합니다. 여기서 “어리석은 자”란 “열린 자들”, 곧 마음을 열어 자기를 하나님께 맡기고 자기의 지혜를 의뢰하지 않는 자를 의미합니다(박윤선).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고통스러운 환경을 통해서라도 마음을 열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 사람의 본능은 왠지 좀처럼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 기도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잘 맡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본능은 환난과 고통과 슬픔 중에서 우리 자신의 지혜를 의뢰하므로 자꾸만 사람의 도움을 청합니다. 그러나 환난과 고통과 슬픔 중에서 마음을 열어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는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인 줄 알기에(11절) 오직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진실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그 하나님께 간구합니다(5절). 또한 우리는 환난과 고통과 슬픔으로 인하여 좀 낮아져야 합니다(6절). 우리는 환난과 고통 및 슬픔을 통하여 마음 문을 열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 져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내가 낮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6절).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 삶 속에 역경과 어려움과 고통과 슬픔 등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낮아져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러한 힘들고 고통스럽고 슬픈 환경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낮아져 겸손히 엎드려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했을 때 하나님께서 시편 기자에게 어떠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까? 8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그는 구원의 은총을 경험했습니다. 즉, 시편 기자는 환난과 고통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간구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망에서, 눈물에서, 넘어짐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이러한 구원의 은총을 여러분은 경험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지난 수요일 추석 때 장인 어르신과 장모님과 함께 가족 의사 선생님을 만난 후 장인 어르신 댁으로 돌아와 다시 병원 침대에 누워 계신 장인 어르신과 함께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습니다. 저는 장인 어르신이 좋아하시는 찬송가 470장 “내 평생에 가는 길”을 찬양하였으며 또한 찬송가 469장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 등등 “평안”에 대해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장인 어르신 마음에 평안함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지금은 기도할 때입니다. 우리 가운데(주위에)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랑하는 지체들을 보면서 우리는 합심하여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마치 시편 기자가 큰 곤란과 환난, 슬픔 가운데서 하나님께 “내 영혼을 건지소서”라고 간구했던 것처럼 우리 또한 하나님께 ‘우리의 영혼을 건져 주시옵소서’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실 것입니다(2절).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사 우리에게 구원의 은총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그 구원의 풍성한 은혜를 경험할 때 저와 여러분은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저를 사랑하는도다”라고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1절).

 

 

 

 

부족한 자의 부족한 기도에도 귀를 기울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안식 월 후 첫 주일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고 기도에 헌신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