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좋은 지각

 

 

[시편 111]

 

 

어제 밤 성경 요한복음 11장부터 13장까지 읽다가 요한복음 13장 2절에서 제 시선이 멈췄습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그런 후 저는 계속 성경 말씀을 읽다가 가룟 유다에 대한 또 다른 말씀인 요한복음13장27절을 읽게 되었습니다: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저는 이 두 구절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가룟 유다가 생각의 영역에서 영적 싸움을 하지도 못하고 결국 사탄에게 미혹되어 예수님을 파는 생각이 자기 마음에 들어와 자라나도록 놓아두었다가 결국은 사탄이 그 속에 들어와 예수님을 파는 자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의 영역에서 예수님을 파는 행동의 영역까지 오게 되었다고 여러분은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 원인을 요한복음12장4-6절에서 찾게 되었습니다: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성경 요한복음12장4-6절을 보면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의 집에서 마리아가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었을 때(3절) 가룟 유다가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5절)고 마리아에게 말하는 모습을 봅니다. 가룟 유다가 그리 말한 이유는 그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한 마디로 돈을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가는 도적이었습니다(6절). 다시 말하면, 가룟 유다는 돈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결과 요한복음 13장 2절에서 보듯이 마귀가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넣었습니다. 즉, 돈을 사랑하는 가룟 유다에게 마귀를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이 생각이 장성하여 사단이 가룟 유다 속에 들어가(13:27) 결국 가룟 유다는 은 삼십에 예수님을 대제사장들에게 팔아 넘겼습니다(마26:15, 26:46-50).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성경 야고보서 1장 15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결국 가룟 유다는 일만 악의 뿌리가 되는 돈을 사랑하므로 말미암아(딤전6:10) 마귀가 그 마음에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넣었을 때도 무방비 상태로 그 생각을 받아들여 미혹되므로 생각의 죄가 장성하여 죄의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저는 쓴 뿌리의 나무가 자라나 결국 썩은 열매 맺는 가룟 유다의 삶과 죽음을 묵상하면서 생각 싸움에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마귀가 저에게 나쁜 생각, 죄악 된 생각을 넣을 때에 저는 선한 생각으로 싸워 이겨야 할 책임이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해야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 “깨달음”이란 무엇입니까? 제임스 페커의 “하나님의 인도”란 책을 보면 깨달음은 하나님의 계시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혜는 무엇보다도 깨달음입니다(페커). 더 나아가서 지혜는 깨달은 것을 신중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것까지 포함합니다(페커). 이것을 오늘 본문에서는 “좋은 지각”(good understanding)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시111:10). 저는 오늘 본문 시편111편 중 10절 말씀 중심으로 “좋은 지각”이란 제목 아래 과연 좋은 지각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과연 좋은 지각을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그 대답을 오늘 본문 시편111편10절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좋은 지각이 있나니 여호와를 찬송함이 영원히 있으리로다.” 우리가 좋은 지각을 얻기 위해선 “그 계명”, 즉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계명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입니다(10절). 과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저는 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잠8:13). 물론 저는 저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제임스 패커의 “하나님의 인도”란 책을 읽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던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패커는 “경외는 두려움과 무관하다. 경외는 공경 심을 의미한다”고 말하면서 ”경외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높이 우러러봄과 동시에 능동적인 행동으로 그분께 복종하고, 그분을 기쁘시게 하려는 태도를 말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란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복종하여 악을 미워해야 하지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란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하며 경배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과연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하며 경배하기 위해선 저와 여러분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는 이 질문의 대답을 오늘 본문에서 한 3가지로 찾게 되었습니다. 이 3가지 성경적 원리를 배워서 실천하므로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하며 경배하므로 말미암아 좋은 지각에 얻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첫째로, 우리가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하며 경배하기 위해선 우리 모두 주님의 행사를 연구해야 합니다.

 

성경 시편 111편 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행사가 크시니 이를 즐거워하는 자가 다 연구하는도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여호와의 행사”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10가지 재앙을 애굽에 내리사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 내시고(4절) 또한 광야에서 양식인 만나와 메추라기와 물을 공급해 주시고(5절)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기업으로 주신 일(6절)들을 가리킵니다. 이 “여호와의 행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풀어 주신 “구속”을 가리킵니다(9절). 왜 시편 기자는 과거에 하나님께서 출애굽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크시고 위대하신 구원의 역사를 즐거워하는 자는 연구한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과거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푸신 구원의 행사를 더 알아가므로 현재와 미래에도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의가 영원할 것(3절)을 믿기 위해서입니다(박윤선).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의 행사를 자세히 연구(공부)하는 이유는 우리의 믿음과 확신을 위해서입니다. 어떠한 믿음과 확신이냐면 바로 구원의 확신과 믿음입니다.

 

우리는 과거에도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 하나님께서 현재에 우리가 당면한 역경과 어려움에서도 구원해 주신다는 믿음과 확신을 위해서 성경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연구해야 합니다. 그러한 연구 중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구원의 역사를 바로 요셉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형들에게서, 보디발과 그의 아내로부터, 또한 감옥에서 등 건져내시므로 결국은 하나님께서 야곱의 가정의 생명을 다 구원하시려고 요셉을 앞서 보내셨습니다(창45:5).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번성케 하셨고 약 400년 후 모세를 통하여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져내시사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인도해주셨습니다. 이 요셉의 삶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진정한 요셉이 되시는 예수님을 삶과 죽음을 통하여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사 약속의 땅인 천국으로 인도해 주심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요셉처럼 억울하게 이런 저런 위기를 맞이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꼭 구원해 주시사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룰 실 줄 믿을 수 믿음과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구원의 믿음과 확신을 위하여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자세히 그리고 부지런히 연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달음 속에서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하며 경배해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가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하며 경배하기 위해선 우리 모두 주님의 행사를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 시편 11편 4절을 보십시오: “그 기이한 일을 사람으로 기억케 하셨으니 여호와는 은혜로우시고 자비 하시도다.”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시편 기자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과거 출애굽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하신 구원의 역사를 기억케 하셨습니다. 그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목적은 바로 하나님께서는 그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며(5절) 세우시므로(9절) 결국 그 언약을 완성하시는 신실한 언약의 하나님이심을 계시해 주시길 위해서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삶 속에 행하신 구원의 행사들, 그 기이한 일들을 우리로 하여금 기억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현재 삶 속에 어떠한 역경과 어려움을 겪을 지라도 우리로 하여금 과거의 구원의 역사를 기억케 하시므로 말미암아 현재의 역경과 어려움도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실 줄 믿는 믿음과 확신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찬송가40장4절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내 주 예수 세상에 다시 올 때 저 천국으로 날 인도하리 나 겸손히 엎드려 경배하여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라.” 우리와 맺은 언약을 신실하게 성취해 나아가시는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 속에 이미 착한 일인 구원을 시작하셨고 예수 그리스도 다시 오시는 그 순간 우리의 구원을 완성케 하시므로 말미암아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전에 올라가 영원토록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하며 경배케 하실 것입니다.

 

마지막 셋째로, 우리가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하며 경배하기 위해선 우리 모두 주님의 행사를 즐거워해야 합니다.

 

성경 시편 111편 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행사가 크시니 이를 즐거워하는 자가 다 연구하는도다.” 주님께서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하신 크신 역사는 바로 “구속”이었습니다. 여기서 “구속”이 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 내실 때 마직 열 번째 재앙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문설주에 양피를 바르라고 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로 값 주시고 사시므로 우리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신 것을 가리킵니다. 성경 베드로 전서 1장18-19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 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찬송가 4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1절)라고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 “주의 구원의 즐거움” (시51:12)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크시고(111:2) 존귀하며 엄위하신(3절) 이 구원의 역사를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구원의 즐거움을 가지고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려야 합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계명인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 즉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하며 경배하는 삶을 살므로 말미암아 좋은 지각을 얻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길 기원합니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찬송가 40장 후렴),

 

 

제임스 목사 나눔

(나의 평생 동안 주님께서 행하신 크신 구원의 역사들을 기억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