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달으세요.

 

 

[시편 107]

 

 

이 허무한 인생, 하나님 보시기에 참으로 가치 있는 인생을 살기 위해선 우리는 주님의 인자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시90:14).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전3:11).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자들로서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때 만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주님의 많은 인자를 기억치 아니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시106:7). 이러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오늘 성경 시편107편 43절의 말씀을 우리들에게 들려주시고 계십니다: “지혜 있는 자들은 이 일에 주의하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으리로다.” 저는 오늘 이 말씀 중심으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달으세요”란 제목 아래 과여 우리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어떻게 깨달을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서 주시는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어떻게 깨달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지혜로 우리는 그 크신 사랑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가 있을 때 우리“지혜 있는 자들은 이 일에 주의”합니다(43절). 그러면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이 일”은 무엇입니까?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로 주의해야 할 “이 일”은 무엇입니까? 그 일은 바로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입니다(8, 15, 21, 31절). 그러면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행하신 그 기이한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일’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셨는지 한 4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박윤선).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할 때 구원해 주셨습니다(4-9).

 

성경 시편 107편 4-5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할 성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름으로 그 영혼이 속에서 피곤하였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면서 주리고 목마름으로 피곤하여 지쳐있었을 때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고통 중에서 건져 주셨습니다(6절).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방황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통 중에서 건져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할 성에 이르게 하셨습니다(7절). 그러므로 그 구원의 은총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8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 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찌로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셨으며 또한 그들의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셨기 때문입니다(9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광야입니다. 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우리는 주리고 목마릅니다. 이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런데 왠지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기피하고 도시 한 복판에서 생활하기를 좋아합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는 이 도시와 같은 세상에서 우리는 세상적인 풍부함을 추구하는데 분주합니다. 그리고 세상적 풍족함도 얻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영혼은 만족함이 없습니다. 이러한 풍부함이 광야에서의 궁핍함도 결코 좋을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적어도 광야에서는 궁핍함으로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사모하는 영혼과 주린 영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도시에서 풍부함보다 광야에서 궁핍함이 더 귀합니다. 우리의 궁핍한 영혼을 만족케 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모하는 영혼 그리고 주린 영혼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을 때에 우리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주시사 우리로 하여금 광야에서 우왕좌왕 방황하지 않게 하시고 오히려 바른 길로 인도하시되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성”인 예루살렘 성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 생활을 하고 있었을 때 구원해 주셨습니다(10-16).

 

성경 시편 107편 10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그러면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였습니까? 그 이유를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11절). 그 죄악은, 아주 강퍅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이런 큰 죄를 범하는 자들은, 죽음보다 무서운 포로가 되는 형벌을 받을 만합니다(렘22:10)(박윤선).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수고로 저희 마음을 낮추셨으니 저희가 엎드러져도 돕는 자가 없게 하셨습니다(시107:12).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13절). 그 결과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고통 중에서 구원 하시되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 얽은 줄을 끊으셨습니다(13-14절). 그러므로 그 구원의 은총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은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 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찌로다”(15절)입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유롭게 하셨기 때문입니다(16절).

 

우리 주위엔 포로 생활 혹은 노예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용서하지 못하고 용서 받기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포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 도박 중독 등 걸린 사람들은 어느 면으로 보면 노예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지존 자를 멸시하므로 말미암아 결국 포로 또는 노예 생활 가운데 허덕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를 낮추시며 우리에게 돕는 자를 끊으십니다. 그러므로 홀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근심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고통 중에서 건져주십니다. 우리의 모든 쇠사슬을 끊어 없애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중병자 같이 죽을 지경에 놓여 있었을 때 구원해 주셨습니다(17-22).

 

성경 시편 107편 18절을 보십시오: “저희 혼이 각종 식물을 싫어하여 사망의 문에 가깝도다.” 여기서 저희 혼이 각종 식물을 싫어하였다는 말씀은 그들이 병들어서 음식물도 먹지 못함을 가리킵니다(박윤선).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치 사망의 문에 가까웠을 정도에 있었습니다. 그 원인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원인은 미련한 자는 저희 범과와 죄악의 연고로 곤난을 당하기 때문입니다(17절).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고통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19절).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을 보내”사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셨습니다(20절). 즉, 하나님께서는 그의 주권을 가지시고 명령하사 중병자 같이 죽을 지경에 놓여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여 주신 것입니다(박윤선). 그러므로 그 구원의 은총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21-2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 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찌로다 감사제를 드리며 노래하여 그 행사를 선포할찌로다.”

 

이 세상에는 세 가지 종류의 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1) 아골의 문[“아골 골짜기”, 호2:15], 즉 고통의 문, (2) 사망의 문(시107:18), 그리고 (3) 소망의 문(호2:15). 우리가 이 광야와 같은 세상, 근심된 일이, 곤고한 일이, 죄악 된 일이 그리고 참으로 죽을 일이 쌓인 세상(찬송가 474장)에 살아가면서 고통의 문과 사망의 문까지 통과할지라도 결국 우리가 분명히 통과할 문은 바로 소망의 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천국 문으로 인도해 주고 계십니다. 이 구원의 은총을 생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으로 인하여 숨질 때 되도록 주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찬송가403장).

 

마지막 넷째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다의 풍랑 중에 향해 하는 자와 같이 위태할 때 구원해 주셨습니다(107:23-32).

 

창조주 하나님께서 광풍을 통하여 바다 물결을 일으키사(25절) 위험에 빠져 그 영혼이 녹은 자처럼 환난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녹이셨고(26절) 또한 그들로 하여금 지각을 혼돈케 하사 취한 자 같이 비틀 거리게 만드셨습니다(27절). 그 때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평정히 하사 물결로 잔잔케 하”셨습니다(28-29절).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저희를 소원의 항구(their desired haven)로 인도해 주셨습니다(30절). 찬송가 462장 가사가 생각납니다: (1절) “큰 물결이 설레는 어둔 바다 저 등대의 불빛도 희미한데 이 풍랑에 배 저어 향해하는 주 예수님 이 배의 사공이라”, (2절) “큰 풍랑이 이 배를 위협하며 저 깊은 물 입 벌려 달려드나 이 바다에 노저어 향해하는 주 예수님 이 배의 사공이라”, (3절) “큰 소리로 물결을 명하시면 이 바다는 고요히 잠자리라 저 동녘이 환하게 밝아올 때 나 주 함께 이 바다 건너가리”, (후렴) “나 두렴 없네 두렴 없도다 주 예수님 늘 깨어 계시도다 이 흉흉한 바다를 지나면 저 소망의 나라에 이르리라.” 그러므로 그 구원의 은총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31-3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 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찌로다 백성의 회에서 저를 높이며 장로들의 자리에서 저를 찬송할 찌로다.”

바다에 파도가 치고 풍랑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그 바다 깊은 곳에서는 진주조개가 아름다운 진주알을 만들어 내듯이 하나님께서는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풍랑을 통하여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로 다듬어가고 계십니다. 종종 인생의 폭풍이 몰아치고 비바람이 불 때 우리의 마음이 흔들리고 두렵고 떨릴 때에 우리는 근심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건져주시사 우리 마음에 평온함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찬양합니다: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풍랑 일어도 안전한 포구 폭풍까지도 다스리시는 주의 영원하신 팔 의지해 주의 영원하신 팔 함께 하사 항상 나를 붙드시니 어느 곳에 가든지 요동하지 않음은 주의 팔을 의지함이라”(찬송가464장, 1절과 후렴).

 

결국 하나님께서는 고난과 역경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시사 그들에게 복을 주셨고 저희로 크게 번성케 하셨습니다(38절). 하나님께서는 궁핍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곤란에서 높이 드셨고 그 가족을 양 무리 같게 하시므로(41절) 정직한 자는 보고 기뻐하게 하셨습니다(42절).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행하신 기이한 일들은 무엇입니까? 저와 여러분은 그 기이한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고 있습니까?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방황할 때, 죄의 노예 생활을 하고 있었을 때,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을 때, 우리 삶 속에 풍랑이 몰아칠 때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건져(구원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이 구원의 은총을 생각할 때 우리가 어찌 주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주 예수의 구원의 은혜로다 참 기쁘고 즐겁구나 그 은혜를 영원히 누리겠네

곧 평안히 쉬리로다” (찬송가474장 후렴).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다 형용 못하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 위에 죄 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화목제로 삼으시고 죄 용서

하셨네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찬송가404장 1절과 후렴).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맛보며 살아가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에 감사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