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은혜로 나를 기억하소서.

 

 

[시편 106]

 

 

기억 상실증(Amnesia)이란 무엇입니까?  그리스어 αμνησία로부터 온 말으로, 간단히 기억에 장애가 생기는 것입니다.  기억 상실증을 일으키는 요인으로는 기질적인 요인과 기능적인 요인이 있습니다.  기질적(organic) 요인의 기억 상실증은 외상성 기억 상실증(Traumatic amnesia) 이라고 하며, 기억을 담당하는 뇌의 일부분에(일반적으로 뇌의 해마)에 이상이 생겨서 기억에 장애가 생기는 것으로, 사고나 질병, 혹은 마약으로 뇌에 손상이 갔을 때 발생합니다. 기능적(functional)인 요인의 기억 상실증은 해리성 기억 상실증(Dissociative amnesia), 이라고 합니다.  기능적인 요인들은 방어기전(defense mechanism)와 같은 심리적인 요소들입니다.  기억 상실에는 “부분 기억 상실”이란 것이 있습니다.  이 부분 기억 상실은 크게 장기 기억 상실과 단기 기억 상실로 보통 나눈다고 합니다.  여기서 “장기 기억 상실”이란 옛날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으로 부분적으로 기억을 잃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부분이 있습니다.  과거의 일부분만을 기억 못할 경우 부분 기억 상실증, 전체를 기억 못할 경우를 완전 기억 상실증이라고 합니다.  그와 반면에 “단기 기억 상실”은 바로 전에 일어났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단기 기억 상실은 가장 흔한 기억 상실 증입니다.  바로 전에 말했던 것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amnesia를 건망증이라고 하긴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의미의 건망증은 자주 깜빡깜빡 잊는 정도지만, 이 경우에는 퍼펙트(perfect)하게 잊어버린다는 것이 차이라고 합니다(인터넷).

저는 기억 상실 증에 대해서 이렇게 인터넷에서 찾아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건망증, 즉 자주 깜빡깜빡하는 것은 단기 기억 상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이 단기 기억 상실도 왠지 장기 기억 상실에 비하면 괜찮습니다.  특히 장기 기억 상실에서도 과거 일부분만 기억 못하는 경우는 다행이지만 전체를 기억 못하는 “완전 기억 상실증”에 걸리면 큰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되었냐면 오늘 본문 시편106편 말씀을 묵상하다가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되 완전히 망각한다면 (영적 완전 기억 상실)그 결과는 어떠하였을까 생각할 때 좀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은혜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완전히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한 가지 소망은 분명히 있다는 확신입니다.  그 한 가지 소망이란 시편 기자가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를 우리도 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은혜로 나를 기억”하소서(시106:4).  저는 오늘 이 말씀 중심으로 “은혜로 나를 기억하소서”란 제목 아래 한 2가지로 묵상하고자 합니다: 첫째로, 이스라엘 백성이 기억치 아니한 것은 무엇인가?, 마지막 둘째로, 하나님께서 기억하고 계신 것은 무엇인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억지 아니한 것은 무엇입니까3가지로 오늘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그들은 주님의 많은 인자를 기억치 아니하였습니다.

 

성경 시편 106편 7절을 보십시오: “우리 열조가 애굽에서 주의 기사를 깨닫지 못하며 주의 많은 인자를 기억지 아니하고 바다 곧 홍해에서 거역하였나이다.” 하나님께서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풀어 주신 많은 인자는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긍휼이 여기시사 모세를 보내 주시고 모세를 통하여 10가지 재앙을 바로와 애굽에게 내리시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신 사랑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행하신 기사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많은 인자를 잊어버리고 홍해에서 거역하였습니다.  그들은 홍해 가에 머물 때에 애굽 군이 쫓아온다는 보도를 듣고 모세를 원망하였습니다(출14:11).  이것은 곧 모세를 지도자로 세우신 하나님을 원망함과 같습니다.  이것이 불신앙입니다(박윤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죄를 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 가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시106:8).  즉,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꾸짖으시사 마르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바다 지나기를 광야를 지남 같게 하셨습니다(9절).  그리고 그들을 좇던 애굽 군대는 물이 덮으매 하나도 남지 아니하고 죽었습니다(11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미워하는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며 그 원수의 손에서 구속하셨습니다(10절).  그러므로 말미암아 자신의 큰 권능을 나타내셨습니다(8절).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게 되었고 하나님께 찬송을 불렀습니다(12절).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많은 인자(사랑)을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애굽과 같은 사탄의 왕국에서 불신앙 가운데 살아가고 있었던 저와 여러분을 “자기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셨는데 그 크신 은혜와 사랑을 망각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기에 우리 또한 오늘 본문의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로 나를 기억하소서’(4절)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행사를 잊어버렸습니다.

 

성경 시편 106편 13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미구에 그 행사를 잊어버리며 그 가르침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 바다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경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광야에서 일시동안의 음식물의 결핍을 인하여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인 모세를 원망하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속히 하나님의 행사를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공급을 기다리기보다 조급히 음식물을 탐하여 모세를 원망하는 죄를 범하였습니다(박윤선). 오늘 본문 14절을 보십시오: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발하며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도다.”  그들이 그렇게 범죄하였는데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샘물을 내어 마시게 하시며 만나와 메추라기의 고기로 공급하셨니다(박윤선).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구한 것을 주셨습니다(15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거슬러 반란을 일으키는 죄(민16장)를 범하였고 더 나아가서 호렙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는 극히 가증한 죄를 범하였습니다(시106:19, 출32장).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풀 먹는 소의 형상으로 바꾸는 죄를 범하였습니다(박윤선).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죄악 된 세상은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롬1:23).  문제는 이러한 죄를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도 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의 영광을 사람의 영광과 바꾸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 원인 중 하나는 오늘 본문 시편 106편 14절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바로 “욕심”입니다.  그 욕심이 명예의 욕심이던 물질의 욕심이던지 간에 이러한 욕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기보다 자기의 영광을 추구하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기보다 사람의 영광을 추구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행사의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사람의 행함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 본문의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로 나를 기억하소서’(4절)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구원자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성경 시편 106편 21절을 보십시오: “애굽에서 큰 일을 행하신 그 구원자 하나님을 저희가 잊었나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많은 인자와 그가 이스라엘 백성들 위하여 행하신 일들을 잊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그들의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큰 일”(21절)을 행하셨고 그의 큰 능력을 나타내시므로 그들을 구원해 주셨건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구원자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홍해에서 놀랄 일을 행하신(22절) 구원자 하나님을 잊어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아니하였고(불신앙) (24절) 원망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였으며(불순종) (25절) 더 나아가서 이방신 바알브올을 숭배하였습니다(28절).  또한 그들은 므리바 물에서 하나님의 영을 거역하였으며(33절)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는 이방인들을 멸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과 섞여서 그들의 행위를 배우며(35절) 그들의 우상을 섬겼습니다(36절).  그 우상에게 자녀의 피를 흘려 제사까지 하였습니다(37-38절).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위가 더러워졌으며 음탕하였습니다(39절).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로 말미암아 거룩하신 하나님은 진노하셨고(23, 29, 32, 40절) 이스라엘 백성들을 “열방의 손에 붙이시매”(41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원수들의 압박을 받으므로(42절)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의 고통을 아시고(44절) 이스라엘 백성들을 “여러 번” 건지셨으나 그들은 “꾀로 거역하며 자기 죄악으로 인하여” 낮아짐을 당하였습니다(43절).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너무나 빨리 잊어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그 구원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을 너무나 빨리 잊어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당시 고통과 역경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으므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이 여기사사 그 고통과 역경에서 건져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더 이상 고통과 역경이 없이 평안하게 지낼 때 그 당시 베풀어 주셨던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너무나 빨리(속히) 잊어버리곤 합니다.  우리 사람들은 고통과 역경은 쉽게 잊어버리지 못하면서도 그 고통과 역경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속히 잊어버립니다.  즉, 우리가 당한 고통과 역경은 잘 기억하고 있으면서 그 고통과 역경에서 구원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행사, 그 은혜는 너무 빨리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구원 받은 후 평안히 잘 지내고 있을 때 구원자 하나님도 잊고 살아가곤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 본문의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로 나를 기억하소서’(4절)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억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와 맺은 그의 언약입니다.

 

성경 시편 106편 45절을 보십시오: “저희를 위하여 그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 많은 인자하심을 따라 뜻을 돌이키사.”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망각하고 불신앙과 불순종 가운데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신 하나님은 결국은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사 저희가 고통 중에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저희를 위하여 그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 많은 인자하심을 따라 뜻을 돌이키사”(45절)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사로잡은 모든 자에게서 긍휼히 여김을 받게 하셨습니다(46절).  즉,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일시적 징벌에서 구원하셨던 것입니다(박윤선).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많은 인자하심과 그의 (큰) 행사를 잊어 버렸고 더 나아가서 그들의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잊어버렸지만 하나님은 그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기억하고 계셨으며 또한 그들과 맺은 언약을 잊지 않고 계셨습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불성실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불성실한 그의 언약 백성에게 성실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대답을 디모데후서 2장13절에서 찾아봅니다: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언약 백성인 저와 여러분에게 성실하신 이유는 그는 자기 자신을 부인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성실하실 수밖에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이 그의 신격입니다.  이것이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성경 이사야 49장 15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비록 엄마가 그녀의 젖 먹는 아기를 혹시 잊을지라도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아니하신다는 이 말씀, 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나는 하나님의 많은 인자(사랑)를 기억치 아니하고 그분이 우리의 삶 속에 행하신 역사들을 속히 망각하며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 때가 수 없이 많은 데 그러한 배은망덕한 우리를 하나님께서 절대 잊지 아니하신다고 하니 이것이 은혜가 아니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 본문의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로 나를 기억하소서’(4절)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밤에 시편 기자처럼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드리십니다: 주여,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로 나를 기억하소서” (4절).  비록 우리가 영적 기억 상실 증에 걸려서 하나님의 많은 인자(사랑)와 그의 행사를 기억치(망각) 아니할지라도, 더 나아가서 구원자 하나님을 잊고 살아가고 있을지라도 오늘 이 밤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로(만) 나를 기억해 주시옵소서’라고 부르짖으십시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찬송가410장),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인생의 종착점에서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라고 고백할 수 있길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