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하나님의 행사를 기억하십시다.

 

 

[시편 105]

 

 

헨리 나우웬의 책 중에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이란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을 보면 우리는 “예수님의 치유하심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사역자로써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이라면, “첫 번째 임무는 과거의 상한 기억들에 접근하고 그런 기억들이 두려움 없이 빛 속으로 다시 나올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사역자의 위대한 사명은 인간의 이야기와 하나님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연결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겪는 상처가 하나님이 직접 겪는 고통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었음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 바로 치유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생생하게 기억한다는 것은 우리의 작은 고통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겪으시는 엄청난 고통에 대한 이야기와 맥을 같이하고 있음을 밝히는 것입니다. “치유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고통을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고통이 더 큰 고통의 한 부분이며, 우리의 슬픔이 더 큰 슬픔의 한 부분이며, 우리의 경험이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눅24: 26)고 하신 그리스도의 더 큰 경험의 한 부분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인터넷).

 

과연 이러한 치유의 사역을 감당해야 함에 있어서 저는 개인적으로 헨리 나우웬의 이 글 내용을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두 단어가 제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억”과 “기념”이란 단어입니다. 기억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헨리 나우웬에 의하면 ‘기억한다는 것은 과거의 사건들을 현재로 이끌어 오며 현재 이곳에서 그 사건들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브레바드 차일드(Brevard S. Child)는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기억하는 행위는 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존재하지 않던 세대를 위해 과거를 현실화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은 구원의 위대한 행위를 친밀하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 과거에는 하나님의 계시 영역에서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억을 통해 그 간격이 없어지며 제외되던 사람들이 다시금 구원의 역사를 나누게 됩니다”(나우웬). 우리는 이러한 기억의 훈련을 해야 합니다. 과거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구원의 사건을 기억하므로 현재의 삶 속에서 그 사건을 기념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어떠한 역경과 고난과 상처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로 찬양을 드리면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저 천성을 향하여 일어나 계속 걸어갈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 시편 105편 5절을 보면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사와 그 이적과 그 입의 판단을 기억할지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행사를 기억하라’고 권면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행사’는 무엇을 가리킵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마 하신 약속(8-11절)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행하신 모든 놀라운 일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주시기 위해 행하신 그 모든 놀라운 일들은 무엇입니까? 한 3가지로 오늘 본문 12절부터 44절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이 약속을 받은 이스라엘 족장들은 그 약속을 받을 당시 가나안 땅에서 나그네로 살면서 이 족속에게서 저 족속에게로, 이 나라에서 다른 민족에게로유리하며 살고 있었을 때(105:12-13)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성취하시고자 그들을 보호해 주셨습니다(14-15).

 

성경 시편 105편 14-15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그들을 해하기를 용납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연고로 열왕을 꾸짖어 이르시기를 나의 기름 부은 자를 만지지 말며 나의 선지자를 상하지 말라 하셨도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유리하고 있었던 소수의 이스라엘 무리들을 그 가나안 땅 군왕들로 하여금 해하지 못하도록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 한 예로 우리는 아브라함과 사라를 보호해 주셨던 성경 이야기를 들 수 있습니다. 창세기 12장 10-17절을 보면 기근이 들어 약속의 말씀을 받은 아브람과 그의 아내 사래가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 사래가 아리따운 여인이므로 죽임을 당할까봐 누이라고 말하게 하므로 결국 애굽 왕 바로가 사래를 자기 궁으로 들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시므로 아브람으로 하여금 아내 사래를 다시 데리고 올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창세기20장 3-7절에도 나옵니다. 그 때도 아브라함은 그랄이란 곳에서 아내 사라를 또 누이라 말하므로 그랄 왕이 사래를 취하였을 때 밤에 하나님께서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셔서 남의 아내를 택하므로 죽으리라고 하시므로 결국 사래로 보호해 주시고 건져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말씀만 주신 것이 아니라 그 약속의 말씀을 성취하심에 있어서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를 보호해 주시고 지켜 주셨습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성취하시고자 소수의 무리인 야곱과 그의 자녀들 및 후손들이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며 살아가고 있었을 때 야곱의 아들 중 하나 인 요셉을 앞서 애굽으로 보내신 후 가나안 땅에 기근을 임하게 하시므로 말미암아 그들이 의뢰하던 양식을 다 끊으셨습니다(105:16-17).

 

이상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과 그의 자녀들 및 후손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풍족하게 계속 살아가게 하시지 않으시고 기근을 임하게 하시사 그들로 하여금 궁핍케 하셨는지 ...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잘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한 오묘한 섭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섭리란 하나님께서는 창세기15장13절에서 아브라함에 그의 자손인 이스라엘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400년 동안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이제 그 예언의 말씀대로 성취하시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하고 있었던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게 하셨고(시105:16) 또한 요셉이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의 종으로 팔려가게 하시사(17절) 결국 요셉은 애굽 총리로(20-21절), 그리고 그의 아버지인 야곱과 자녀들 및 후손들은 다 애굽으로 내려와 살게 하시면서(23절)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을 크게 번성케 하셨습니다(24절). 하나님의 섭리가 놀랍지 않습니까? 가나안 땅에서 유리하며 살아가고 있었던 소수의 무리인 야곱의 자녀들과 후손들(한 70명)을(12절) 애굽에서 고난 속에서 크게 번성케 하신 하나님 … 성경 신명기 10장 22절을 보십시오: “애굽에서 내려간 네 열조가 겨우 칠십 인이었으나 이제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하늘의 별 같이 많게 하셨느니라.” 결국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의 자손이 하늘에 셀 수 없는 무수한 별들처럼(창15:5) 번성케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 약속을 애굽에서 고난과 고통 가운데 이루셨습니다. 기근을 통하여 소수의 이스라엘(야곱)과 그의 자녀, 후손들을 궁핍케 하신 하나님께서는 결국 애굽으로 다 내려오게 하신 후 노예의 고통스러운 생활 속에서 크게 번성케 하시사 그들의 대적인 애굽보다 더 강하게 하신 하나님(24절), 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그의 섭리 가운데 성취하고 계셨습니다.

 

마지막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성취하시고자 애굽에서 크게 번성케 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을 400년 후 모세를 통하여 애굽에서 건져내시사(105:26-43) 결국은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풍성한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들을 인도해 주셨습니다(44).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크게 번성케 하시사 애굽보다 더 강하게 하셨을 때(24절) 바로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이 변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워하게 되었습니다(25절).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환란과 핍박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을 애굽에 보내사 모세를 통하여 10가지 재앙을 내리시므로 말미암아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은금을 가지고”(37절) 애굽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광야에서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셨고 (39절) 또한 메추라기란 양식으로 또한 반석에서 물을 나오게 하시사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족케 하셨습니다(40-41절).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를 오늘 본문 4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 거룩한 말씀과 그 종 아브라함을 기억하셨음이로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해 주신 그 거룩한 말씀을 기억하고 계셨기에 그 약속의 말씀을 신실하게 성취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주셨습니다. 건져주시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즐거이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며 그 택한 자로 노래하며 나오게 하셨습니다(43절). 그럼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셨습니까? 그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 목적은 오늘 본문 45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저희로 그 율례를 지키며 그 법을 좇게 하려 하심이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을 성취하시므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후손들인 그의 택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케 하셨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마 하신 약속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행하신 모든 놀라운 일들을 한 세 가지로 묵상하면서 저는 이러한 적용을 해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저희 승리 장로교회에게 주신 약속인 마태복음 16장 18절 말씀을 이루시는 그 과정 속에서 우리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저와 여러분을 보호해 주시며 지켜 주시고 계신다는 확신이 듭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고 지켜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생각할 때 큰 위로와 힘이 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저와 여러분에게 주신 약속인 진정한 가나안 땅, 저 천국으로 우리를 들어가게 하시는 가운데 지금 이 광야에서 나그네 된 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보호해 주시고 지켜 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지금도 아브라함의 약속의 성취하고 계시되 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아브라함의 영적 자녀들을 하늘의 고난 속에서 별처럼 수 없이 많게 하시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그러한 고난들을 통하여 우리가 의뢰하는 모든 것들을 끊으시사 궁핍하게 하시는 가운데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케 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신뢰하며 우리는 저 약속의 땅인 천국으로 향해 계속 걸어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애굽과 같은 사단의 왕국에서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왕국을 향하여 광야를 걷고 있는 나그네들입니다.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면서 나아감에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쳐서는 아니 됩니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는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께 감사하며(1절a), 그의 구원의 행적을 노래하며 전파하면서(1-2절) 하나님께 그의 얼굴과 능력을 구하면서 저 천성을 향하여 나아가는(3-4절)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찬송가543장)을 수요기도회 때 찬양한 후,

 

 

제임스 김 목사 나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이끌림을 받기를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