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하나님 앞에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시편 100]

 

 

지난 주일 영어 예배 때 사도행전 15장 22-35절 말씀 중심으로 한 주간 살면서 주님이 허락하시는 만남 속에서 서로 위로하며 살아가자고 권면하였습니다. 그런 후 어제 화요일 새벽기도회 끝난 후 교회 전도사님 부부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하고 또한 커피를 함께 마시면서 교제하면서 제가 그 분들을 위로하기보다 오히려 제가 위로를 받았습니다. 특히 그 전도사님의 사모님께서 “Coram Deo”(하나님 앞에서)라는 하나님 앞에서의 신앙생활 속에서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나눌 때 함께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과연 하나님 앞에서의 신앙생활은 어떠한 것입니까? 코람데오(Coram Deo)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의 삶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중심의 사상으로 결국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가도록 하는 것입니다(인터넷).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갈 때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찬양과 경배를 드릴 때 마음이 자유롭습니다.

 

저는 오늘 성경 시편100편 말씀 중심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답을 한 3가지로 본문에서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감사하므로 나아가야 합니다.

 

성경 시편 100편 4절을 보십시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 찌어다.”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자 주님의 전에 들어올 때 감사하는 마음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왜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당에 들어와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려야 합니까? 그 이유를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5절). 우리가 주님의 전에 올라와 하나님께 감사하므로 예배를 드려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은 선하시고 우리를 향하신 그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이 영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인자와 성실의 덕으로 그 백성을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박윤선 박사님께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성도를 일시 동안만 사랑하시다가 중도에 변역하심이 없으시다. 성도의 생활에도 여러 가지 굴곡이 있다. 그 진로가 혹시는 곤고하고 혹시는 평이하다. 그러나 그것은, 다 합동하여 그에게 유익을 주나니 모두가 주님의 인자하신 권고이다. 그가 성실히 우리를 돌보심이 대대에 미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저와 여러분에게 허락하여 주신 구원의 은총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감사하므로 주님의 전에 올라와 하나님께 경배를 드려야 합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주일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려고 주님의 전에 올라 올 때 감사하므로 올라오십니까? 왠지 사탄은 주일 교회 예배드리러 올라오는 우리들을 유혹하여 예배당을 밟지 못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할 때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종종 부부 싸움으로 인하여 예배당도 밟지 못하고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참으로 주일 예배당에 감사하므로 올라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저런 일들로 인하여 복잡한 마음으로 올라올 때도 있을 것이고 또한 염려와 근심, 걱정 속에서 무거운 마음으로 예배당에 들어올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러 주님의 전에 올라 올 때 감사하는 마음으로 올라와 하나님께 예배드리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생각하면서 감사하므로 주님의 전에 올라와 하나님께 경배 드리십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알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성경 시편 100편 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찌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을 맞이한 이 시대는(암8:11) 귀가 있어도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을 보게 됩니다. 특히 우리 목회자들이 마치 호세아 시대 때 이스라엘 제사장들처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버리고 하나님의 율법(말씀)을 잊어버리므로 말미암아 양 떼들도 길 잃은 양들처럼 영적으로 굶주려 영적 영양실조에서 사탄의 유혹에 이리저리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때에 우리는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아야 합니다(호6:3). 우리는 예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처럼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랴 하느냐”(마16:15)라고 질문하실 때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이다”(16절)이라고 고백하는 성도들이 되야 합니다. 오늘 본문 시편 100편 3절에서 시편 기자는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가 알 찌어다”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시요 또한 그는 우리를 기르시는 목자이심을 알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가 “그의 것”이요 “그의 백성이요” 또한 “그의 기르시는 양”으로써(3절) 마땅히 여호와를 우리의 하나님으로 알고 인정하므로 주님의 전에 올라가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성경 시편 100편 1-2절을 보십시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 찌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 찌어다.” 주님의 전에 올라와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릴 때 우리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면서 감사하므로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릴 뿐만 아니라 기쁨으로 찬양과 경배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왜 우리는 기쁨으로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려야 합니까? 한 3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안에 있은 구원의 기쁨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려야 합니다. (2)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기 때문에(습3:17) 우리 또한 하나님의 기쁨으로 찬양과 경배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3) 우리가 또한 하나님께 기쁨으로 찬양과 경배를 드려야 하는 이유는 우리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기쁨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새벽에 꿈속에서 고 김창혁 목사님을 뵈었습니다. 목사님께서 “나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니야”라고 말씀하시는 모습이 생생합니다. 그러면서 옆에는 나무 가지가 뿌려지는 물로 인하여 하나씩 하나 씩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 후 아버님 중심으로 친척 식구들이 모여서 찬양을 한 네 곡하려고 하는 가운데 찬송가 544장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를 함께 찬양하다가 꿈에서 깨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새벽 기도회 때 이 찬송을 하나님께 찬양하면서 목사님과 먼저 천국에 가신 성도님들을 생각하였습니다. 잠시 이 세상에 우리가 살면서 항상 찬송 부르다가 날이 저물어 주님 오라 하시면 영광중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길 기원합니다.

 

(4절) “한숨 가시고 죽음 없는 날 사모하며 기다리니 내가 그리던 주를 뵈올 때

나의 기쁨 넘치리라”; (후렴) “열린 천국 문 내가 들어가 세상 짐을 내려놓고 빛난

면류관 받아 쓰고서 주와 함께 다스리리”

 

그저 숨질 때 되도록 나의 구원의 하나님께 감사드리므로, 또한 기쁨으로 찬양과 경배를 드리다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길 기원합니다.

 

 

 

 

“날이 저물어 오라 하시면 영광 중에 나아가리” …

 

 

 

제임스 김 목사 나눔

(감사와 기쁨으로 영광의 주님을 찬양하며 경배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