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악인의 형통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악인은 풀같이 생장하고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흥왕할지라도 영원히 멸망하리라" (시편 927).

 

 

한 장로님이 천국 가시기 몇 주 전 저에게 던지신 질문은 '왜 악인은 형통하는데 의인은 고통을 당하는가?'였습니다. 깊이 생각하시길 좋아하시는 이 장로님의 질문, 어쩌면 80이 넘는 평생 이 문제를 고민하지 않으셨나하는 추측도 해봅니다. 그렇지 않으셨더라도 확실한 사실은 인생의 마지막 종착점이 가까이 와서는 이 문제로 인하여 고민을 많이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고민이 있으십니까? 과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악인의 형통과 의인의 고난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인지 고민해 보셨습니까? 의인의 고난에 대해서는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은혜의 말씀을 여러 번 우리는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악인의 형통은 어떻게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십니까?


오늘 성경 시편 92편 7절은 악인의 형통을 우리가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알려 주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한 3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1) 우리가 현실 삶 속에서 보고 있는 것처럼 악인은 흥왕하데 신속하게 흥왕 한다는 말씀입니다.

 

시편 기자는 본문에서 악인을 풀과 비교하면서 "생장"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수고도 들이지 않고 간교함 속에서 신속하게 성공한다는 말입니다. 얼마 전 저희 집에 뒤뜰 잔디가 죽어가는 부분이 있어서 아내와 제가 약도 뿌려보고 물도 뿌려보고 씨를 사서 뿌린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빨리 자라나서 푸른 녹색의 잔디를 보고 있습니다. 아마 이와 같이럼 악인의 형통은 풀처럼 신속한 것을 시편기자는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2) 악인의 형통은 마치 들풀의 무성함과 같이 보일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열매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즉, 악인들이 그들의 흥왕 속에서 하나님 보시기엔 아무 열매를 맺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열매 없는 풀과 같은 악인의 형통, 그것이 바로 성경이 묘사하고 있는 악인의 모습이란 말입니다.

 

(3) 악인의 신속한 형통은 결국 영원히 멸망당하기 위해서라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돼지를 도살장에 끌고 가기 위해 잘 먹여서 살을 찌우는 것처럼 악인의 형통의 목적은 영원한 멸망을 위해서라는 말씀입니다. D. L. 무디 목사님은 이 구절에 나오는 악인의 형통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악인은 필경 풀처럼 연료가 되기 위하여 생장한다."


우리는 오늘도 삶 속에서 악인의 형통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성공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과 비교하면서 고민에 빠지게 될 위험이 충분히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악인을 어떻게 보는지 오늘 시편 92편 7절 말씀의 관점으로 보아야 합니다. 시편 기자가 11절에서 "내 원수의 보응 받는 것을 내 눈으로 보며 일어나 나를 치는 행악 자에게 보응하심을 내 귀로 들었도다"라고 말씀한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께서 악인을 보응하심을 보고 말씀을 통하여 들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그들의 결말은 영원한 멸망임을 알고 믿을 때에 그들을 부러워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악인의 형통과 의인의 고통'에 대한 고민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시편 74편 말씀으로 '악인의 형통과 의인의 고통'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 주신 하나님께서 오늘 시편 92편 7절 말씀으로 더욱더 확언 시켜 주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임스 목사 나눔

(토요새벽기도회 때 이 말씀을 믿음으로 선포 한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