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심히 깊으신 주님의 생각

 

 

[시편 92]

 

 

오늘 제 아내가 저희 집 막둥이 예은이 생일을 유치원에서 축하한다고 하여 한인 타운 떡집에서 무지개 떡을 주문하러 갔다고 합니다. 예은이의 말로는 이번 주 금요일 유치원에서 자기 생일 축하 때 무지개 떡과 함께 자기는 한복을 입고 간다고 아내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하하. 그래서 오늘 떡을 주문한 후 아내가 방과 후 학교인 교회로 아이들을 데리러 갔는데 예은이가 자기 친구에게 엄마를 이렇게 소개했다고 합니다: “얘가 내 엄마야”. ㅎㅎㅎ 이 말을 듣고 한 쪽으로 웃었지만 또 한쪽으로는 그래도 자기 엄마라고 자기 유치원 친구에게 소개하는 예은이를 생각할 때 엄마를 친구처럼 여기는 것인지... ㅎㅎㅎ 예은이와 예리 그리고 딜런을 생각할 때 참으로 이 아빠는 부족한데 하나님께서 이 아이들을 양육하고 계심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아이들을 생각할 때 어제 밤 잠들기 전에 읽었던 성경 욥기 1장을 말씀이 생각납니다. 특히 5절 말씀에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함이라”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욥이란 인물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1절)였는데 그가 그의 자녀들인 아들 일곱과 딸 셋(2절)을 위하여 혹시나 그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하여 아들들의 집에서 잔치를 벌인 후 그 다음 날 아침 에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5절). 이 말씀 속에서 아버지로서 욥은 자녀들의 마음까지도 신경을 썼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 성경에는 자녀들이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이지만 영문 성경을 한글로 번역한다면 욥은 그의 자녀들이 마음으로 하나님을 저주(욕?)했을까바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제 욥기서를 계속 읽다 보니 “curse”(저주)라는 단어가 여러 번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욥기2장9절을 보면 사단이 욥을 쳐서 그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게 하였을 때(2:7) 고생하는 남편을 보고 아내가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curse)하고 죽으라”(9절)고 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는 순전하고 정직함,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악을 미워하는 욥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으로 또는 생각으로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을 경계하며 또한 마음과 생각에서의 영적 싸움을 부지런히 해야 할 것을 도전 받습니다. 이 영적 싸움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롬12:2).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님의 생각을 알고 그 생각을 생각하므로 우리 생각도 주님의 생각과 일치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오늘 성경 시편 92편 5절을 보면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행사가 어찌 그리 크신지요 주의 생각이 심히 깊으시니이다.” 여기서 “주의 생각이 심히 깊으시니이다”란 말씀 중심으로 “심히 깊으신 주님의 생각”이란 제목 아래 그의 깊으신 생각을 한 두 가지로 묵상하면서 주님의 생각을 알고 그 주님의 생각을 믿고 우리 또한 그 주님의 생각을 생각하여 우리 마음을 지키고 계속 변화하는데 힘을 얻는 시간이 되길 기원합니다.

 

첫째로, 악인을 향하신 심히 깊으신 주님의 생각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악인을 향하신 심히 깊으신 주님의 생각은 한 마디로 멸망입니다. 비록 악인은 풀 같이 생장하고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흥왕할지라도 영원히 멸망합니다(7절). 이 말씀은 악인의 형통을 우리가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알려 주고 있습니다:

 

(1) 우리가 현실 삶 속에서 보고 있는 것처럼 악인은 흥왕하데 신속하게 흥왕 한다는 말씀입니다.

 

시편 기자는 본문에서 악인을 풀과 비교하면서 "생장"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수고도 들이지 않고 간교함 속에서 신속하게 성공한다는 말씀입니다. 즉, 악인들은 그 간교한 수단에 의하여 수고도 들이지 않고 얼른 성공하는 수가 있지만 그러나 실상 그것이 축복을 받는 참된 성공이 아닙니다(박윤선).

 

(2) 악인의 형통은 마치 들풀의 무성함과 같이 보일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열매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즉, 악인들이 그들의 흥왕 속에서 하나님 보시기엔 아무 열매를 맺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열매 없는 풀과 같은 악인의 형통, 그것이 바로 성경이 묘사하고 있는 악인의 모습이란 말씀입니다.

 

(3) 악인의 신속한 형통은 결국 영원히 멸망당하기 위해서라는 말씀입니다.

 

예를 들어 돼지를 도살장에 끌고 가기 위해 잘 먹여서 살을 찌우는 것처럼 악인의 형통의 목적은 영원한 멸망을 위해서라는 말씀입니다. D. L. 무디 목사님은 이 구절에 나오는 악인의 형통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악인은 필경 풀처럼 연료가 되기 위하여 생장한다."

 

언젠가 시편 73편을 묵상하면서 ‘악인의 형통과 의인의 고난’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교훈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악인의 형통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말씀은 겉으로 보기엔 악인이 “풀 같이 생장하고” 또한 “다 흥왕할지라도” 결국은 영원한 멸망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잠20:21). 우리는 악인의 신속한 성공이나 흥왕을 부러워하며 질시할 필요가 없습니다(시73:3).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악인이 성공을 신속히 하는 것처럼 그들의 멸망 또한 신속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시편 73편 18-20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 저희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악인의 멸망 또한 성공처럼 아니 성공보다 더 신속하게 멸망당할 것입니다. 졸지에 황폐되고 꿈 깨듯이 순식간에 멸망당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92편 9절에서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원수 곧 주의 원수가 패망하리니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흩어 지리이다.” 악인들, 죄악을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원수로서 패망할 것이며 다 흩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원수들이 성공하고 흥왕 하는 것을 보고 질시하며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악인과 죄악을 행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면서 일시 동안은 이기는 것 같아도 우리는 장래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시사 멸망하실 것(11절, 박윤선)을 믿음으로 흔들리지 않고 믿음의 견고히 서 있어야 합니다.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저는 주님의 깊으신 생각에 대해 이러한 아주 지극히 작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왜 하나님께서는 악인을 잠시나마 생장하고 흥왕하게 하시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그 하나님의 의도(뜻)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하나님의 의도는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악인의 잠시 형통이나 생장 및 흥왕은 우리를 위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 잠언13장22절 하반절 말씀을 보십시오: “…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쌓이느니라.” 이 말씀에 비취 볼 때에 악인의 생장이나 흥왕(예: 악인의 재물)은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깊은신 뜻입니다. 이 주님의 깊은 신 뜻을 우리가 알 때 악인의 생장이나 흥왕이나 형통을 부러워하거나 질시할 필요가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또 한 가지, 주님께서 악인의 흥왕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바로 악인의 흥왕을 통하여 저와 여러분을 시험하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시험은 악인의 흥왕(형통)을 보고 의인이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가운데 시편 73편 25절 말씀을 고백하는지 안 하는지를 시험하신 다고 생각합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마지막 둘째로, 의인을 향하신 심히 깊으신 주님의 생각을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악인은 흥왕 하는데(시92:7) 의인은 그의 원수들인 행악 자들로 인하여(11절) 박해를 받아 고난을 당할 때에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이러한 억울한 박해와 고난을 당하게 하시는지 우리는 종종 의아할 때가 없지 않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 할 것은 그 고난 가운데서도 주님의 깊으신 생각(뜻)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주님의 깊으신 생각은 무엇인지 오늘 본문 시편 92편에서 한 3 가지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주님의 깊으신 생각은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에 주님은 그의 크신 행사, 곧 큰 구원을 계획하시고 또한 실천해 나아가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92편 5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주의 행사가 어찌 그리 크신지요 주의 생각이 심히 깊으시니이다.” 여기서 시편 기자가 말씀하고 있는 주님의 크신 행사는 바로 ‘구원’을 가리킵니다. 즉, 우리의 구원의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형통과 의인의 고난 중에서 악인을 멸하시므로 우리 의인을 건져(구원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의 깊으신 뜻은 우리를 구원해 주시므로 그의 크심과 위대하심과 구원자이심, 즉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십니다.

(2) 주님의 깊으신 생각은 그의 구원의 은총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므로 말미암아 우리를 기쁘게 하시며 또한 주님을 찬양케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92편 4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주의 행사로 나를 기쁘게 하셨으니 ….” 하나님께서는 그의 크신 구원의 행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구원의 즐거움(기쁨)(시51:12)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그 구원의 기쁨 속에서 감사하므로 하나님을 찬양케 하십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오늘 본문 시편 92편 1-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존자여 십현금과 비파와 수금의 정숙한 소리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나타내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행사로 나를 기쁘게 하셨으니 주의 손의 행사를 인하여 내가 높이 부르리이다.”

 

(3) 주님의 깊으신 생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92편 1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 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리로다.” 여기서 “여호와의 집에 심겼”다는 말씀은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실을 가리키는 비유”입니다(박윤선). 즉,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로서 하나님의 궁정인 천국에서 영원히 흥왕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인들은 비록 이 땅에서 잠시 흥왕하지만 의인은 천국에서 영원히 흥왕할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궁정에서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발육”할 것입니다(12절). 즉, 우리는 영원히 썩지 않을 영광스러운 몸을 입고 영원히 하나님의 궁정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들어내며 살 것입니다. 그리고 악인들의 열매 없음과 달리 의인은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할 것입니다(14절). 즉, 의인은 하나님께서 열매를 맺게 하실 것이며 생명력이 풍성할 것입니다(박윤선). 바로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깊으신 생각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약속의 말씀을 우리에게 하시고 계십니까? 그 이유는 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존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92편 10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주께서 내 뿔을 들소의 뿔 같이 높이셨으며 내게 신선한 기름으로 부으셨나이다.” 여기서 “신선한 기름을 부으셨나이다”라는 말씀은 유다의 풍속에 귀한 손님에게는 기름을 부으므로 귀하게 대접한 것을 생각할 때 그처럼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들을 귀빈처럼 접대하신다는 말씀입니다(박윤선).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의 궁정인 천국에 영접하셔서 귀빈처럼 대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로 하여금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주님의 깊으신 생각을 다 헤아릴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주님은 우리를 항상 생각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 찌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오히려 주와 함께 있나이다”(139:17-18).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수 없으신 깊으신 생각을 우리가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그러나 이 세상에서 잠시 우리가 고난을 당할지라도 그의 구원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감사하며 주님을 찬양하는 가운데 그의 궁정에서 영원히 흥왕할 것을 믿고 확신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모인 우리”를 찬양 한 후 수요일 밤에,

 

 

제임스 목사 나눔

(주님의 심히 깊으신 생각이 나의 생각이 되어가길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