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나의 피난처

 

 

[시편 91]

 

 

지난 주 TV 뉴스에서 노숙자(Homeless)에 대한 내용을 보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기 남가주 지역 한 도시에 노숙자들이 지낼 수 있도록 시가 예산을 세우고 도와주다가 여기저기서 더 많은 노숙자들이 몰려오므로 말미암아 감당할 수 없어 결국은 그 한 지역을 철거하는 장면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 때 한 기자가 노숙자 한 두 여자들을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주로 그 기자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 라는 식의 질문을 던지니까 잘 모르겠다는 식의 대답 가운데 그리 걱정하는 모습 같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노숙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성경 출애굽기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났습니다. 애굽을 떠나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향하는 그들, 그들은 광야에서 집이 없이 캠프를 치면서 목적지인 가나안 땅을 향하였습니다.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참으로 중요했던 것은 바로 “장막”이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장막이란 생활 중심지였습니다. 즉, 장막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의 길을 가다가 잠시 머물며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하여 처 놓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장막은 예배의 중심지였습니다. 이 장막(성막)내부에는 지성소와 성소로 나누어지고, 지성소에는 법궤가 있었고, 성소에는 향로와 떡 상, 금 촛대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장막을 중심 하여 이스라엘 12지파는 세 지파씩 나뉘어 동서남북에 캠프를 쳤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인 이 장막에서는 레위 지파가 수종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는 이 하나님의 장막이 진행하면 함께 진행하였고, 어느 곳에 머물면 그들도 머물렀습니다(인터넷).

 

시편 기자는 시편84편1-2절에서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왜 이렇게 시편 기자는 주님의 궁전을 사모했습니까? 그 이유는 그곳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중요한 것은, 장막이나 궁전 자체가 아니라 그곳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느냐 아니냐 입니다.

 

오늘 성경 시편 91편 2절을 보면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저는 오늘 이 말씀 중심으로 “나의 피난처”란 제목 아래 나의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베풀어 주고 계시는 은혜를 한 3가지로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금 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길 기원합니다.

 

첫째로, 나의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건져주십니다.

 

성경 시편 91편 3절을 보십시오: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무엇으(어디)로부터 건져주시는지 한 2가지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올무에서 건져 주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올무”란 새나 짐승을 잡는 데 쓰이는 도구입니다. 그것은 기만적 수단으로 해하는 것 인만큼 마음이 단순한 신자들이 거기에 걸리기가 쉽습니다(박윤선). 그러면 어떻게 사단은 마음이 단순한 신자들을 자기의 올무에 빠지게 합니까?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는 바로 거짓입니다. 즉, 거짓의 아버지인 사단은 거짓말을 하여 마음이 단순한 신자들로 하여금 미혹하여 올무에 빠지게 합니다. 사단이 이렇게 믿는 우리들을 미혹하여 올무에 빠기게 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 목적은 바로 우리 신자들의 “파멸”입니다(6절하). 그러나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진실한(4절) 하나님은 이 사단의 올무에서 우리를 건져 주셨고 또한 계속 건져주고 계십니다.

 

(2)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극한 염병에서 건져주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염병’이란 것은, 전염되며 퍼지는 것을 그 특색으로 하는데, 이것은 여기서 참소하며 훼방하며 돌아다니는 독한 혀를 비유하기도” 합니다(박윤선). 이 “염병”이란 단어가 오늘 본문 6절 상반절에도 나옵니다: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 그리고 5절을 보면 “너는 밤에 놀램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들을 종합해서 생각해 볼 때 “극한 염병”이란 우선 우리에게 죽음을 가져다주는 병(disease)을 얘기합니다. 그러면서 또 다른 의미는 사단이 우리 믿는 자들을 거짓말로 미혹하여 우리를 파멸시키고자 돌아다니면서 우리를 참소하며 훼방하는 그의 독한 혀를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박윤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올무와 극한 염병에서 건져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즉,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파멸과 죽음(의 공포)에서 건져주시는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우리 구원의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자를 올무에서 그리고 극한 염병에서 건져주신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까? 1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 우리 피난처가 되시는 구원의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랑하는 자를 건져주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이 “지존 자”이시요 또한 “전능하신 자”(1절)이심을 알고 있습니다(14절). 그리고 그는 이 지존자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를 “올무”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수 있음을 믿음으로 그의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사랑하며 자기에게 믿음으로 간구하는 자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간구하는 자의 기도를 응답하시사 환난에서 그와 함께 하여 저를 건져주시고 그를 영화롭게 해 주십니다.

 

둘째로, 나의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성경 시편 91편 11절을 보십시오: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하나님을 자기의 피난처로 삼는 신앙인들은(9절) 하나님께서 그들의 거처가 안전하도록 하여 주십니다(9, 10절).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피난처로 삼았던 시편 기자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거처를 안전하도록 하여주셨습니까? 10-11절을 보십시오: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랑하며 그에게 간구하는 자들을 보호해 주시되 화와 재앙으로부터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화와 재앙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의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우리에게 보내시사 우리의 모든 길을 지켜 주시고 계십니다. 시편 37편 7절과 열왕기하 6장 16절 등을 보면 보호하는 천사가 한 사람에게 하나씩 있다는 사상을 가르치지 않고, 한 사람을 위하여 많은 천사들의 활동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비록 성도를 해하려는 악의 세력 많으나, 그를 보호하는 세력은 그보다 큽니다(박윤선). 이렇게 천사들을 통하여 우리를 보호해주시고 지켜 주시는 하나님은 천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실 뿐만 아니라(12절) 사자와 독사와 같은 험악한 동물들에게서도 우리를 보호해주시고 지켜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13절). 여기서 “사자”와 “독사”, “젊은 사자와 뱀”같은 험악한 동물들은 “무지하고 악독한 원수들을 비유합니다(박윤선). 우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간구하는 저와 여러분을 우리의 악독한 원수들에게로부터 보호해주시고 지켜 주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을 의뢰해야 합니다(2절). 우리를 보호하시고 지켜주시는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의뢰하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우리의 요새가 되십니다(2절). 그 하나님께서는 “그의 진실함”이 우리의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십니다(4절). 성경 시편18편 2절 말씀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길 기원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마지막 셋째로, 나의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만족하게 해주십니다.

 

성경 시편 91편 16절을 보십시오: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 무엇으로 나의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만족시켜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까? 그것은 바로 “장수함”으로 입니다. 성경에 장수함에 대한 약속의 말씀 중 우리가 익히 아는 것은 에베소서 6장 2-3절 말씀입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이 말씀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약속인 장수의 축복을 받음에 있어서 우리의 책임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그 책임은 여기 에베소서 6장 2-3절에서는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 시편91편에서 알려주는 우리의 책임은 무엇입니까?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약속인 장수함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 우리의 책임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알고 그를 사랑하며 (시91:14) 그를 의뢰하며(2절) 그에게 피하여(2, 9절) 간구하는 것입니다(15절). 그리할 때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을 만족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가 우리를 환난에서 건져주시므로(15절) 우리의 생명을 연장시켜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만일 저와 여러분이 진실로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으면서 살아가고 있다면 이 땅에서의 장수함보다 영원한 천성에서 주님과 함께 거하는 것을 더 사모할 것입니다. 분명히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완성되는 날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때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을 온전히 만족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 날 그 순간까지 우리는 주님을 나의 피난처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를 의뢰하고 그를 사랑하며 그에게 간구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과 보호와 내 영혼을 만족하게 해 주시는 은총을 누리면 살아가시길 기원합니다.

 

 

 

 

“나의 피난처”가 되시는 주님의 구원과 보호와 만족케 하시는 은총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내 영혼이 주님의 영원한 장막을 사모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