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소서.

 

 

[시편 90]

 

 

잉그리드 버그만이라는 여배우가 있습니다. 그녀는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제8복음>, <가스등> 등으로 유명해졌는데, 그녀가 출연한 영화는 그녀의 연기 때문에 언제나 최고의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원래 스웨덴 출신으로서 유럽을 풍미하다가 더 크게 명성을 떨치려는 원대한 포부를 안고 할리우드로 갔습니다. 그리고 할리우드에서 영화에 출연해 두 번이나 아카데미상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그만한 명배우는 드물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명배우가 성공의 정점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할리우드여! 실버스크린이여 … 이렇게 황량한가, 이렇게 허무한가….” 그녀는 남편과 딸을 버리고 유명한 영화감독과 결혼했다가 얼마 못 가 파경을 맞이합니다. 그 후에도 여러 남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딸이 계부를 죽이는 끔찍한 일이 발생합니다. 그녀에게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성취했습니다. 그러나 목적이 없었습니다. 종국에는 암으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목표는 있지만, 목적이 없는 인생을 산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목표는 갖고 있지만, 목적이 없습니다. 목표는 방향을 이야기한다면 목적은 의미를 묻습니다. ‘왜 사는가’하는 것은 목적을 위한 질문이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묻는 것은 목표에 대한 질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목표와 목적을 혼동한 채, 그것이 마치 하나인 것처럼 헤매다가 한 번 밖에 없는 소중한 생애를 망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인터넷).

 

목표를 이뤘지만 허무함을 경험한 잉그리드 버그만이라는 여배우처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허무함을 느끼고 있습니까? 그 대표적인 성경적 인물은 바로 전도서를 쓴 솔로몬 왕입니다. 그가 전도서 1장 2절에서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말한 것을 보면 얼마나 인생이 허무한지를 실제로 경험한 사람인지를 우리는 좀 알 수가 있습니다. 그가 쓴 전도서를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하나님 없는 삶이 얼마나 허무한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떠나서 행하는 인간의 모든 수고를 헛된 것이며 결국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회복에서 만이 인간은 영원한 가치와 의미를 찾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지혜도 헛되고(1:12-6:9), 쾌락과 물질도 헛되며(2:1-11), 물질생활도 헛되고(12-23절), 압제도 허무하며(4:1-3), 모든 수고도 헛되며(4-12절), 정치도 헛된 것입니다(13-16절). 전도서의 저자는 사색이나 관념으로 이러한 생각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체험을 근거로 교훈 삼아 이야기 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영원하고 진정한 즐거움은 이 세상에서는 찾을 수가 없고 인생의 진정한 만족은 하나님과의 관계 혹은 하나님 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인터넷).

 

우리는 이 헛되고 헛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그 질문의 대답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시편 기자가 오늘 본문 시편90편12절에서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를 우리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 기도는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소서’입니다. 우리는 이 기도 제목을 한 2가지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소서’란 기도는 두 가지 기도 내용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기도 내용은, ‘인생의 허무함을 가르치소서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90편 3-10절을 보면 인생이 왜 허무한지 한 3가지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인생은 다시 흙으로 돌아가기에 허무합니다.

 

성경 시편 90편 3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하나님께서는 아담에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 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3:19). 흙으로 아담을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시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입니다. 그러기에 인생은 허무합니다. 그래서 솔로몬 왕도 전도서 3장 19-21절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 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전도자의 말처럼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기에 인생은 허무합니다.

 

(2) 인생은 잠깐이기에 허무합니다.

 

성경 시편 90편 4-6절을 보십시오: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 저희는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벤바 되어 마르나이다.” 인생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습니다. 신속히 왔다가 신속히 가는 세월과 인생, 허무한 인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치 홍수에 휩쓸려 일시에 몰사하는 것처럼 인생들의 생명은 얼른 얼른 죽고 맙니다. 인생은 마치 잠깐 동안 잠들었다가 깨어남과 같습니다. 사람이 잘 때에는 무의식중에 지나가므로, 깨어 있을 때보다 시간이 얼른 지나고 맙니다. 그뿐 아니라, 잘 때에는 꿈이 많음과 같이, 인생의 일생에는 꿈과 같은 공허한 경영이 많습니다(박윤선). 시편 기자의 말대로 인생은 아침에 돋는 풀과 같습니다.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벤바 되어 마르는 것과 같이 인생도 마찬가지이기에 허무합니다. 그래서 사도 야고보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4:14). 특히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에 비춰볼 때(시90:2) 하나님의 영원성 인생은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참으로 인생은 짧고 짧습니다. 잠깐이요 또 잠깐일 수밖에 없는 인생 허무하고 허무한 것입니다.

 

(3) 인생은 일평생 수고와 슬픔뿐이기에 허무합니다.

 

성경 시편 90편 10절을 보십시오: “우리의 년 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 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우리의 년 수가 칠십, 강건하면 팔십, 신속히 날아가는 한 평생 동안 수고와 슬픔뿐이기에 인생은 허무합니다. 그래서 전도자 솔로몬 왕도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으로 소득이 무엇이랴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전2:22-23). 일평생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인 인생, 고통과 괴로움이 가득 찬 인생, 밤에도 쉬지 못하고 수고하지만 결국 이것도 헛되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자 솔로몬 왕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1:2).

 

우리도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께 ‘인생의 허무함을 가르치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특히 왜 인생이 허무한지를 오늘 본문에서 3 가지로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을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깊은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흙으로 다시 돌아가는 인생, 너무나 신속히 가는 짧은 인생, 그리고 일평생 수고와 슬픔뿐인 인생이기에 우리는 허무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지막 두 번째 기도 내용은, ‘인생을 가치 있게 지내야 할 것을 가르치소서입니다.

 

인생의 허무함을 안다면 우리는 결코 인생을 허비해서는 아니 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짧은 인생을 어떻게 하면 가치 있게 살 수 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한 3가지로 오늘 본문에서 교훈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1) 우리는 인생을 가치 있게 살기 위해선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성경 시편 90편 11절을 보십시오: “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를 두려워하여야 할대로 주의 진노를 알리이까.” 하나님을 경외하기 위해선 우리는 시편 기자가 하나님께 간구하였던 것처럼 “지혜의 마음”을 구해야 합니다(12절).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잠1:7). 그래서 솔로몬 왕은 전도서에서 ‘헛되고 헛되다’고 말씀하면서 결론적으로 전도서 12장 13절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 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성경은 인간의 본분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을 가치 있게 살기 위해서 오늘 본문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께 지혜의 마음을 구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우리는 인생을 가치 있게 살기 위해선 주님의 인자로 만족해야 합니다.

 

성경 시편 90편 14절을 보십시오: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일평생 동안 수고하며 슬픔 가운데 허무하게 인생을 지낼 수밖에 없었던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기쁨을 주셨고 지금도 주시고 계십니다. 그 즐거움과 기쁨은 바로 주님의 인자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주님의 사랑으로 만족할 때에 참된 기쁨을 누리며 이 한 평생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주님의 사랑으로 예수님의 계명인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갈 때에 인생을 가치 있게 살 수 있습니다.

 

(3) 우리는 인생을 가치 있게 살기 위해선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성경 시편 90편 16절을 보십시오: “주의 행사를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저희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우리, 즉 이스라엘 백성들을 곤고케 하신 날수대로 (화를 당한 년 수대로) 기쁘게 해 주시길 간구하면서 그러기 위해선 주님의 행사와 주님의 영광을 그들에게 나타내 주시길 간구하였습니다(15절). 수고와 슬픔이 많은 한 평생,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선 우리 삶 속에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역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삶 속에 나타날 때에 우리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생이 수고와 슬픔 속에서 허덕일 수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나의 영광을 위해서 살고 나의 영광만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가치 있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 삶 속에서 나타날 때 그 인생은 참으로 보람되고 가치가 있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4) 우리는 인생을 가치 있게 살기 위해선 하나님의 은총을 사모해야 합니다.

 

성경 시편 90편 17절을 보십시오: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임하게 하사 우리 손의 행사를 우리에게 견고케 하소서 우리 손의 행사를 견고케 하소서.” 어제 화요일 새벽 기도회 때 사무엘하9장1절 말씀 중심으로 다윗이 요나단의 아들인 두 발이 다 절뚝인 므비보셋에게 베푼 “하나님의 은총”(3절)에 대해서 묵상했었습니다. 요나단과 맺은 언약에 충실하였던 다윗, 그는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에게 “내가 반드시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7절)고 말씀하면서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그의 할아버지인 “사울의 밭을 다” 도로 주었고(7절) 또 므비보셋으로 하여금 왕자 중 하나처럼 항상 왕의 상에서 먹게 하였던 것입니다(7, 10, 11, 13절). 그리고 사울의 사환인 시바에게 그와 더불어 그의 아들들 열 다섯 명, 그리고 종들 이십 명을 다 므비보셋을 섬기게 하였습니다(10절). 그 때 므비보셋의 반응은 이러했습니다: “저가 절하여 가로되 이 종이 무엇이 관대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8절).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결론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자격이 하나도 없는 나에게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베풀어 주신 모든 영적 축복들을 베풀어 주셨다’는 사실에 그저 우리는 감사, 감사 또 감사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찬송가 495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를 부르는 것입니다: (1절)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 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후렴)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오늘 말씀을 묵상하다가 인터넷에서 찾은 한 시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시냇물은 흘러 흘러 어디로 가나 낙엽이 떨어지기 전에는 아름다움을 과시 하다가 한잎 두잎 소리 없이 떨어질 때는 허무함뿐이구나 눈부신 아름다움을 뽐낼 때도 순간 뿐이고 우리의 인생도 젊음을 과시 하는 것도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고 외롭고 쓸쓸한 낙엽이 되어지는 해와 같이 늦가을을 맞게 되니 허무함뿐이로다 삶이 힘들다고 아우성치던 때도 모두 다 지나가 버리고 지는 낙엽 바라보며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가다리는 처량한 모습 속에서 인생의 참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구나 아름다운 단풍의 빛깔처럼 삶의 여운이 소리 없이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리는구나 아 이 땅의 삶의 의미는 무엇이엇나 우리의 삶이 아름다운 단풍의 빛깔 되어 추억으로 물들어 우리의 가슴을 시리게 하는구나”(인터넷). 우리는 헛되고 헛된 세상에서 인생의 허무함을 절실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딱 한 번 사는 인생 어떻게 가치 있게 살아가야 할지를 성경 말씀을 통하여 배워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며 주님의 인자로 만족하며 사십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총을 사모하면서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인생의 허무함을 철저히 느끼면서 값진 인생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기를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주님이 세우시는 승리장로교회 목양 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