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축복의 사람

 

 

[시편 84]

 

 

아브라함 링컨에게는 여러 별명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정직한 아브라함’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10대 시절, 어느 가게의 점원으로 있을 때 이야기입니다. 어떤 손님이 와서 돈을 치르고 갔는데 링컨은 나중에야 10센트를 거슬러 주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10센트 때문에 밤새도록 괴로워하다가 휴일인 다음 날 3마일 떨어진 곳까지 손님을 찾아가 10센트를 돌려주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그의 정직한 모습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내가 왜 칭찬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당연히 해야 할 것 때문에 칭찬받는 사람이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할 것 이상을 해서 칭찬받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링컨이 변호사가 되고 나서 먼저 한 일은 돈 때문에 소송을 못하고 있는 억울한 사람을 위해 무료 변론을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소송 첫날 그는 “10대 시절 맹세했던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어 기쁩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인터넷).

 

참으로 아브라함 링컨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축복의 통로라 생각합니다. 그로 인하여 많은 이들이 자유를 누리는 축복을 누린 것을 생각할 때에 저는 이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양가 부모님을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시사 저에게 풍성한 축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양가 부모님을 통하여 저에게 베풀어 주신 축복으로 인하여 저 또한 다른 이들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는 오늘 본문 시편84편 말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시편84편을 보면 “복이 있나이다”이라는 말이 세 번이나 나옵니다(4, 5, 12절). 그 말씀을 생각할 때 저는 과연 “축복의 사람”이란 누구인지 한 세 가지로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 다 축복의 사람들로서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주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째로, 축복의 사람은 주님의 집에 거하는 자입니다.

 

성경 시편 84편 4절을 보십시오: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셀라).” 이 시편 기자는 예루살렘으로 순례하러 온 제사장이었을 것입니다(박윤선). 그는 성전에 가기를 심히 사모하였습니다(1-4절). 왜 그는 주님의 성전을 그리 사모하였습니까? 그 이유는 바로 주님의 성전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박윤선). 그곳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며 하나님과 교제하기에 시편 기자는 주님의 성전을 심히 사모하였습니다. 그 사모함 속에서 시편 기자는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라고 고백하였습니다(1절). 박윤선 박사님은 이러한 말을 하였습니다: “교회의 아름다움은 건물이 성립시키는 것이 아니고, 거기에 하나님의 영이 계시다는 사실이 성립시킨다.” 하나님의 성전은 기도하는 집입니다. 그 성전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에게 가까이 오시는 하나님(신4:7), 시편 기자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므로 그곳이 그리 사랑스럽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어느 정도로 주님의 성전을 사모하였습니까? 오늘 본문 시편 84편 2절을 보십시오: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궁정을 너무나도 사모하여 신체까지 쇠약 해졌습니다. 그가 그리 주님의 성전을 사모하였던 것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심히 갈망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 마음과 육체가 생존 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시편 기자가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3절)께 부르짖으면서 자기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 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3절). 여기서 시편 기자는 마치 자기 집을 사모하는 참새가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는데 자기는 성전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말미암아 서글픈 자신의 신세를 아프게 한탄하면서 주님의 성전으로 갈 수 있기를 애원하는 심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박윤선).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 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10절). 여기서 주님의 궁정에서 거주한다 함은 “하나님과 참된 교제를 가질 수 있는 생활을 가리킵니다(박윤선). 하나님과 참된 교제를 가지면서 하루 사는 것이 악한 생활을 하면서 사는 천 날보다 낮다는 시편 기자의 고백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더 주님과 주님의 교회를 사모해야 할 것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의 전인 교회를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 함께 모여, 합심하여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전혀 기도에 힘쓰는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해야 합니다. 주님의 집인 교회는 기도하는 집입니다. 기도의 맛을 보므로 우리는 더욱더 하나님의 전을 사모해야 합니다. 사모하는 가운데 우리는 복 있는 자처럼 주님의 집에 거하면서 항상 주를 찬송해야 합니다(4절). 아직 기억이 납니다. 2003년 교회갱신목회자협의회(교갱협) 수련회 때 “… 내가 …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는 마태복음16장18절 약속의 말씀을 받고 찬송가 246장 “내 주의 나라와”를 부르면서 승리장로교회를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린 기억이 납니다. 특히 1절을 부르면서 마음이 뭉클하여 울음을 억제할 수 없었습니다: “내 주의 나라와 주 계신 성전과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 그리고 3절인 “이 교회 위하여 눈물과 기도로 내 생명 다하기까지 늘 봉사합니다”를 부르면서 다시 승리장로교회로 돌아와 충성하길 결심하였습니다. 하물며 우리가 영원한 하나님의 집인 저 천성을 생각할 때 어찌 그 곳에 거하기를 사모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시편 기자처럼 진정한 새 예루살렘 성전인 저 천성을 향하여 이미 순례를 떠난 자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또한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조상들처럼 이 세상에서 우리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는 것입니다(히11:13). 우리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자들입니다(16절). 그 본향을 향하여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은 그곳에서 주님과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입니다(고전13:12). 그리고 우리는 우리 주님과 함께 영원히 거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에 것을 생각하며 위에 것을 찾아야 합니다(골3:1-2). 그러한 자가 참으로 축복의 사람입니다.

 

둘째로, 축복의 사람은 주님께 힘을 얻는 자입니다.

 

성경 시편 84편 5절을 보십시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축복의 사람은 주님의 성전을 사모하여 그 전에 올라가고 싶은 강한 열정으로 하나님께 부르짖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을 공급받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기도 가운데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18:1)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를 사모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왜 시편 기자는 이렇게 주님의 힘을 얻기를 사모하였습니까? 7절을 보십시오: “저희는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그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여 그가 주시는 힘을 얻기를 사모했던 이유는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힘으로만이 시온의 성전에 올라 갈 수 있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박윤선). 왜 주님의 성전에 올라가는데 하나님의 힘이 필요합니까? 그 이유가 오늘 본문 6절에 나와있습니다: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 박윤선 박사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옛날 외국에 살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한 번 가보려는 경영과 노력에는 ‘눈물 골짜기’ 같은 고통과 난관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인내하고 통과하면 그 끝에 ‘많은 샘의 곳’, 곧 심령의 안위와 희열에 봉착한다. 그리고 거기서 ‘이른 비’ 같은 천래의 은사를 받으며 하나님을 뵈옵는 일을 영적으로 체험한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이렇게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셀라)”(8절).

 

제가 좋아하는 복음 성가 중에 “축복의 사람”(혹은 “주께 힘을 얻고”)란 찬양이 있습니다. 그 곡 가사를 보면 이렇습니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그대는 하나님의 축복의 사람이죠 주님 그 대를 너무 기뻐하시죠 주의 집에 거하기를 사모하고 주를 항상 찬송하는 그대는 하나님의 축복의 사람이죠 주님 그대를 너무 사랑하시죠 그대 섬김은 아름다운 찬송 그대 헌신은 향기로운 기도 그대가 밟는땅 어디에서라도 주님의 이름 높아 질 거에요”. 이 찬양은 시편84편 말씀에 근거한 찬양입니다. 이 찬양을 들을 때마다 힘을 얻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저는 이 찬양을 듣거나 부를 때에 주님께 힘을 얻고 주님의 집에 거하기를 더 사모하게 됩니다. 낙망 했다가도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다시 일어나 저 천성을 향하여 나아가게 됩니다. 특히 그 천성을 향하여 나아감에 있어서 위에 것을 생각하고 그 곳에 계신 신앙의 선배님들을 생각할 때 더욱더 저 천국이 마음에 그리워집니다. 아마도 그러한 마음을 가리켜 “시온의 대로가 있는” 마음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점점 더 천국화 되어가는 우리 마음에 깊이 새겨지는 시온의 대로, 그 대로를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그 발걸음은 힘이 있고 소망에 가득 찬 발걸음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축복의 사람입니다.

 

마지막 셋째로, 축복의 사람은 주님께 의지하는 자입니다.

 

성경 시편 84편 12절을 보십시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어떠한 하나님을 시편 기자는 의지하였습니까?

 

(1) 시편 기자는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9).

 

시온의 성전을 향하여 나아가는 이 여정에 많은 눈물 골짜기 같은 고통과 난관들이 있기에 시편 기자는 더욱더 교회의 방패가 되시는 주님을 의지하였습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7:10).

(2) 시편 기자는 은혜와 영화를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84편 1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시편 기자가 의지한 하나님께서는 은혜와 영화를 주시되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시편 기자는 의지하였습니다.

 

찬송가 342장 1절과 후렴을 보면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어려운 일 당할 때 나의 믿음 적으나 의지하는 내 주를 더욱 의지합니다. 세월 지나 갈수록 의지할 것뿐일세 아무 일을 만나도 예수 의지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방패가 되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은혜와 영화를 주시되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주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세월 지나 갈수록 어려운 일 만날 때마다 깨닫는 우리의 연약한 믿음, 우리는 그 연약함과 무기력함 철저히 깨닫는 가운데서 우리는 더욱더 오직 예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렇게 주님만을 의지하는 자는 축복의 사람입니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수요 저녁에 주님의 전을 사모하여 올라와 주님을 찬양하며 기도하는 여러분은 축복의 사람들이십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가운데 주님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여러분은 축복의 사람들이십니다. 세월 지나갈수록 더욱더 주님을 의지하는 여러분은 축복의 사람들이십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너무 기뻐하십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너무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의 섬김은 아름다운 찬송입니다. 여러분의 헌신은 향기로운 기도입니다. 여러분이 밟는 땅 어디에서라도 주님의 이름은 높아질 것입니다.

 

 

 

“축복의 사람”으로써 축복의 통로가 되길 간절히 기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주님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축복의 사람들로 인하여 기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