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시편 79]

 

 

저는 성경 시편34편8절 중심으로 시편 34편을 묵상하였습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나님께 피하는 자가 맛보는 하나님의 선하심, 즉 복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하면, ‘영육간의 구원’입니다.  육체적으로는 ‘건지심’입니다[(4절) “…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6절) “…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7절) “… 저희를 건지시는도다”, (17절) “… 저희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18절) “…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19절) “…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영적으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피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은 구속입니다[(22절) “여호와께서 그 종들의 영혼을 구속하시나니 저에게 피하는 자는 다 죄를 받지 아니하리로다”].  

 

오늘 성경 시편 79편을 보면 하나님께 피하여 간구하는 시편 기자의 모습을 봅니다. 그가 하나님께 간구한 내용 중에 특히 9절 말씀이 제 마음에 다가옵니다: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도우시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건지시며 우리 죄를 사하소서.”  저는 오늘 이 말씀 중심으로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라는 제목 아래 시편 기자가 구원의 하나님께 간구한 기도 제목 3가지를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과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시편 기자의 기도 제목은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도우소서!’입니다.

 

성경 시편 79편 9절을 보십시오: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도우시며 ….”  왜 시편 기자는 구원의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는 간구를 드렸습니까? 그 이유는 주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핍박 자들로 인하여 예루살렘이 멸망을 당하고 받는 환난에서 비참한 상황에 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 4절까지를 보면 이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열방이 주의 기업에 들어와서 주의 성전을 더럽히고 예루살렘으로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나이다 저희가 주의 종들의 시체를 공중의 새에게 밥으로 주며 주의 성도들의 육체를 땅 짐승에게 주며 그들의 피를 예루살렘 사면에 물 같이 흘렸으며 그들을 매장하는 자가 없었나이다 우리는 우리 이웃에게 비방거리가 되며 우리를 에운 자에게 조소와 조롱거리가 되었나이다.”  이스라엘의 대적들은 “주의 성전”인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혔고 예루살렘 성을 돌 무더기가 되게 하였습니다(1절).  그리고 그 예루살렘 성안에 있는 “주의 종들”, “주의 성도들”을 죽이고 매장하였습니다(2절).  그러므로 그들의 피가 예루살렘 사면에 물 같이 흘렸습니다(3절).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이웃에게 비방거리와 조소와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4절).  이러한 때에 시편 기자는 구원의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도움을 하나님께 청하되 그는 주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도와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9절).  이것은, 자기들에게 의가 없음을 알고, 다만 주님께서 그들을 택하신 거룩한 위신을 위하여 구원해 주시기를 원합입니다(박윤선).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간절히 도움을 청하면서도 자기 이름이던 자기 영광을 위해 도움을 청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도와주시길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이뤄지길 원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 무기력함(helplessness)을 느낄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help)을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힘으로 될 것 같아 보이는 것들이 많은 것 같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음조차도 잘 다스리지 못하는 참으로 연약한 자들입니다.  어느 면으로 보면, 신앙생활 이라는 것은 하면 할수록 우리의 연약함과 무기력함을 깊이 깨달아 가는 동시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우리가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욥을 보시길 바랍니다.  욥은 그의 환난 가운데서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나의 도움이 내 속에 없지 아니하냐 …”(욥6:13).  욥은 극심한 환난 가운데서 자신의 무기력함을 깨닫고 자기 스스로 자신을 도움을 수가 없음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편 기자가 시편 46편 1절에서 고백한 것처럼 고백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환난 날에 큰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무기력한 중에서 도움을 청할 때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큰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둘째로, 시편 기자의 기도 제목은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건시소서!’입니다.

 

  성경 시편 79편 9절을 보십시오: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도우시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건지시며 ….”  예루살렘의 멸망과 주님의 성도들의 죽음, 그리고 환난 가운데 있는 무기력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도와주시길 간구하였던 시편 기자는 오늘 본문 5절에서 이렇게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영원히 노하시리이까 주의 진노가 불붙듯 하시리이까.”  여기서 “어느 때까지니이까”(How long?)이란 시편 기자의 기도는 우리가 이미 시편 13편에서 묵상한 적이 있습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언제까지 숨기시겠나이까 내가 나의 영혼에 경영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쳐서 자긍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1-2절).  이러한 기도는 환난과 핍박 중에서 성도들이 인내하며 견디는 가운데 하나님의 신속한 건지심을 원하는 기도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79편에서도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신속한 건지심을 간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오늘 본문 7절은 이렇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저희가 야곱을 삼키고 그 거처를 황폐케 함이니이다.”  이러한 멸망의 위기 상황에서 시편 기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신 주님의 진노를 거두시사 그들의 대적인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는 열방들에게 쏟으시길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6절).  왜 시편 기자는 이렇게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까?  10절에서 그 대답을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어찌하여 열방으로 저희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리이까 주의 종들의 피 흘림 당한 보수를 우리 목전에 열방 중에 알리소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만 더럽힌 것이 아니라(1절)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이 어디냐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있었기에 하나님께 진노를 열방들에게 내리시길 간구하였습니다.  더 구체적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의 종들의 피를 복수하심을 열방들로 하여금 알게 해 주시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실재로 오늘 본문 12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핍박하였던 열국들은 주님을 “훼방”(the reproach)하였던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는 열방들에게 그의 진노를 쏟으시길 간구하면서 그들에게 포로가 되어 갇힌 자들의 탄식의 소리를 주님께서 들으시사 “죽이기로 정한 자를 주의 크신 능력을 따라 보존”해 주시길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11절).

 

이 얼마나 놀라운 간구입니까?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죽이시기로 작정하신 자들을 그의 크신 능력을 건져주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존해 주시길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 문제보다 하나님을 위한 관심이 더욱 컸습니다(박윤선). 비록 그가 하나님의 구원을 사모하여 하나님께 ‘우리를 건져주소서’라고 간구하였지만(9절) 그는 불신자 이방인들이 고난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서 비방하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말하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10절).  우리는 이러한 마음 자세로 하나님께 ‘우리를 건져주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간절히 구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기도 제목을 하나님께 아뢰야 합니다.

셋째로, 시편 기자의 기도 제목은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 죄를 사하소서!’입니다.

 

성경 시편 79편 9절을 다시 보십시오: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도우시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건지시며 우리 죄를 사하소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아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한 환난과 재앙이 죄의 결과임을 알고 있었기에 하나님께 “우리 죄를 사하소서”라고 간구하였습니다(9절하).  그는 죄를 사하여 주시되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사해주시길 간구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께 이렇게 간구하였습니다: “우리 열조의 죄악을 기억하여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가 심히 천하게 되었사오니 주의 긍휼하심으로 속히 우리를 영접하소서”(8절). 성경 출애굽기20장5절에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 삼사 대까지 이르게”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 자손들의 그 조상이 범한 죄와 같은 죄를 회개하지 않고 계속하여 범하는 경우에 그렇게 하신다는 뜻입니다(박윤선).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주님의 긍휼하심을 구하였습니다.  심히 천하게 된 상황에서 그는 겸손히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주님의 긍휼하심 속에서 그는 하나님께서 속히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영접해 주시길 간구하였습니다.  결국 시편 기자가 필요했던 하나님의 도우심과 건지심(구원)은 죄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가 절실히 필요했던 것은 주님의 긍휼하심 가운데 죄 사함 이였습니다.  이 죄의 문제로 인해서 모든 환난과 재앙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했던 것을 그는 알았기에 근본적인 죄의 문제가 주님 앞에서 해결되지 않고서는 환난과 재앙에서의 도우심과 건지심은 의미가 별로 없음을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우리는 우리의 죄의 문제를 먼저 주님 앞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시편 기자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환난과 고통 그리고 생명의 위기를 느낄 때에 물론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그의 구원을 간구해야겠지만 그러한 중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혹여나 이 모든 일이 나의 죄로 인한 것이라면 우리는 시편 기자처럼 “우리 (나의) 죄를 사하소서”라고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이 3가지 기도 제목을 아뢰면서 하나님께서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하면 주의 백성 곧 주의 기르시는 양된 우리는 영원히 주께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대대로 전하리이다”(13절).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건짐을 받고 죄 사함까지 받는 성도가 마땅히 하나님께 해야 할 일은 감사와 찬양인 것을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시편 기자의 이 3가지 기도 제목이 저와 여러분의 기도 제목이 되어 기도 응답을 받으므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예배자로 세움 받기를 기원합니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며 감사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나의 도움이 되시며 나를 건지시며 나의 죄를 사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에 감사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