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그 마음의 성실함으로

 

 

[시편 7842-72]

 

 

우리는 지난 주 시편 78편 23-41절 말씀 중심으로 “정함이 없는 마음”이란 제목 아래 한 세 가지로 정함이 없는 마음에 대하여 묵상했었습니다.  정함이 없는 마음, 즉 불성실한 마음은 첫째로 욕심을 따르며 둘째로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불신하며 의심하며 또한 셋째로 정함이 없는 불성실한 마음은 거짓을 말한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회개조차도 아첨에 불구한 이스라엘 열조들의 회개는 결국 입술은 주님을 닮은 듯 하나 마음은 하나님께 멀리 있었던 것을 우리는 묵상하면서 우리 마음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생각나는 말씀은 성경 예레미야 17장9절 말씀입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이 부패한 마음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흘리신 그의 보혈로 씻겨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제 새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우리는 우리 안에 정함이 없는 마음을 봅니다.  과연 이러한 우리 마음을 어떻게 지키고 단련시킬 수 있습니까?

 

저는 오늘 새벽기도회 때 시편 26편 2절 말씀을 묵상하였습니다: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  저는 이 말씀 중심으로 과연 우리가 어떻게 우리 마음을 단련할 수 있을까를 한 3가지로 생각했습니다.  첫째로, 지적인 면에서 우리 마음을 단련하기 위해서는 “주의 진리”(3절)를 알아 가는데 힘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둘째로, 감정적인 면에서 우리 마음을 단련하기 위해서는 주님을 향한 “사랑”(8절)이 우리 마음에 동기부여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셋째로, 의지적인 면에서 우리 마음을 단련하기 위해서는 시편 기자 다윗처럼 “완전함에 행”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11절).  다시 말하면, 저는 정직히 행해야 한다는 교훈을 받았습니다.

 

오늘 성경 시편 78편 마지막 절인 72절을 보면 시편 기자는 하나님에 대하여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이에 저가 그 마음의 성실함으로 기르고 그 손의 공교함으로 지도하였도다.” 저는 오늘 이 말씀 중심으로 “그 마음의 성실함으로”란 제목 아래 과연 목자 되신 우리 주님은 그 마음의 성실함으로 우리에게 어떠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지 한 3 가지로 묵상하는 가운데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목자 되신 우리 주님은 사랑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성경 시편 78편 68절과 70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오직 유다 지파와 그 사랑하시는 시온산을 택하시고  …  또 그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은 분명하십니다.  선택하신 사람과 선택하지 않은 사람은 분명합니다. 오늘 본문 68절을 보면 한글 성경에는 “오직…”으로 시작을 하지만 영어 성경을 보면 “But”(그러나)으로 시작합니다.  왜 “그러나”로 시작을 하는가 하면 67절 말씀과 대조하기 위해서입니다: “또 요셉의 장막을 싫어 버리시며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아니하시고.”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둘째 아들인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아니하셨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비록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는 에브라임 지파는 택하지 아니하셨지만 다윗은 택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70절).  이렇게 하나님의 선택과 선택하지 않으심은 분명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분명한 선택과 선택하지 않으심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롬9:13).  성경 로마서 9장은 특히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히 20절부터 보면 그 유명한 토기장이 비유가 나옵니다.  즉, 토기장이 되신 하나님께서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라고 말하였던(21절) 사도 바울은 로마서 9장 20절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감히 피조물이 조물주의 주권을 도전할 수 없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의 주권 속에서 야곱을 택하시고 에서를 택하지 않으셨다는 말씀을 생각해 볼 때 하나님께서 다윗은 선택하시고 에브라임 지파는 선택하지 않으셨다는 오늘 본문 67-68절 말씀을 우리는 겸손히 받아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성경 에베소서 1장 4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선택은 결코 우리 안에 뭔가 선택 받을 만한 것들이 있어서 선택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는 무조건적으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목자 되신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사 선택하시어 우리를 그의 양으로 삼으셨습니다.

 

둘째로, 목자 되신 우리 하나님은 선택하신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성경 시편 78편 42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그의 권능을 기억지 아니하며 대적에게서 구속하신 날도 생각지 아니하였도다.”  이스라엘 열조들은 불성실하게도 자기들을 대적에게서 구속하신 하나님의 권능을 기억지 아니하였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사 그 마음의 성실함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속해 주셨습니다.  시편 기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들의 대적에게서 구속해 주신 사건을 오늘 본문 43절 이후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 사건 설명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열조들을 애굽에서의 노예 생활 속에서 있었을 때 10가지 재앙을 애굽에 내리시사(43-41절) 결국 바로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들을 떠나보내게 하므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52절)을 애굽에서 구속해 내셨습니다. 여기서 “구속”이란 무슨 뜻입니까?  구속이란 말은 값을 치르고 사 드린다는 말입니다. 구속이란 말은 노예 시장에서 값을 치르고 노예를 사 가듯이 하나님께서 비싼 값을 치르시고 죄인들을 마귀 시장에서 사 가지고 하나님의 집으로 데려 가시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구속이란 말은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피 값을 치르시고 우리를 마귀의 노예 시장에서 사셨다는 말입니다. 출애굽 당시 10번째 재앙을 내리시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르게 하셨는데 그 양의 피가 바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피를 가리킵니다.  이 구속의 사건을 생각할 때 우리는 성경 이사야 43장4절 말씀을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 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왜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시고 계십니까?  그 이유는 바로 우리는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로 값 주고 산 바 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대신하여 십자가의 죽으셨기에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존귀하고 보배로운 자들이 된 것입니다. 

 

셋째로, 목자 되신 우리 하나님은 그 마음의 성실함으로우리를 기르시고 지도하십니다.

 

성경 시편 78편 72절을 보십시오: “이에 저가 그 마음의 성실함으로 기르고 그 손의 공교함으로 지도하였도다.”  오늘 본문 52절을 보면 시편 기자는 목자 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 열조들을 애굽에서 양같이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에서 양떼같이 지도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시고 지도하시되 안전히 인도해 주시므로 말미암아 그들은 두려움이 없었습니다(53절).  결국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성소의 지경 곧 그의 오른손이 취하신 산”(54절)인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해 주셔서 그 땅에 열방을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쫓아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업을 분배하시고 그 땅에 거하게 해 주셨습니다(55절).  그러나 이스라엘 열조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오늘 본문 56-58절을 보십시오: “그럴찌라도 저희가 지존하신 하나님을 시험하며 반항하여 그 증거를 지키지 아니하며 저희 열조 같이 배반하고 궤사를 행하여 속이는 활 같이 빗가서 자기 산당으로 그 노를 격동하며 저희 조각한 우상으로 그를 진노케 하였으매.” 하나님은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마음의 성실함으로 기르시고 인도해 주셨지만(72절) 그들은 “그럴찌라도” 하나님을 시험하며 반항하고 배반하였습니다(56절).  배반하되 “속이는 활 같이 빗”가서 산당을 짓고 조각한 우상으로 하나님을 진노케 하였습니다(57-58절).  결국 하나님은 진노 가운데 이스라엘을 크게 미워하사(59절) “인간에 세우신 장막을 떠나시고”(60절) “자기 영광”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적의 손과 칼에 붙이셨지만(60-61절) 그 와중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택하시고(70절) “그 마음의 성실함으로”(72절) 이끄시고 기르시고 지도하셨습니다(71-72절).

 

우리가 묵상한 시편 78편 23-41절 말씀에서 생각한 것처럼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탐욕 가운데(18절) 하나님의 능력을 시험하였어도(19-20절)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하늘 문을 여시사 그들에게 만나를 비같이 내려 먹이셨습니다(23-24절).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를 했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오히려”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실한 은혜와 사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함이 없는 마음을 가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하나님은 “오히려”  “그 마음의 성실함으로” 그들을 기르시고 지도하시고 인도해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마음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다른 것입니다.  성실한 하나님의 마음과 정함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정함이 없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성실하십니다.  성실한 마음으로 성부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우리를 선택하셨고 성자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속하셨으며 또한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인도해 주시고 지도해 주시고 계십니다.  이렇게 우리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우리처럼 정함이 없는 마음 혹은 불성실한 마음을 가진 자들에게 그 마음의 성실함으로 선택해주시고, 구속해 주시며 또한 인도해 주시니 어떻게 우리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주 찬양합니다  내 마음을 다해  주가 하신 놀라운 일들을 세상에 모두 말하리다

        주 찬양합니다 내 마음을 다해, 내가 주를 기뻐하며 즐거해 할렐루야

        지극히 높으신 이름 찬양해 할렐루야”

 

 

 

 

성삼위 하나님의 성실한 마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임스 목사 나눔

(불성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