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정함이 없는 마음

 

 

[시편 7823-41]

 

 

이번 주 월요일에 어머님을 모시고 병원에 갔었습니다. MRI와 CT 촬영을 하셨는데 MRI를 찍으실 때는 MRI를 찍는 의사와 기술자(technician)가 있는 방문이 열려 있어서 제가 잠깐 모니터로 어머님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결과는 좀 있어야 알 수가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몸이 건강한지 아니면 어딘가 병이 있는지 진단하기 위하여 MRI와 CT 촬영하신 어머님을 생각해 볼 때 몸이 의학적으로 이러한 방법으로 진단할 수가 있지만 과연 우리 사람의 마음은 어떻게 진단할 수가 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할 때 저는 성경 말씀으로 우리 마음을 진단할 수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성경 야고보서 1장 7-8절을 보면 사도 야고보는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건강하지 못한 마음은 두 마음과 정함이 없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두 마음이란 분열된 마음으로써 흐트러진 마음이요 정함이 없는 마음으로 요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마음은 진실이 아닌 것들로 가득하여 끊임없는 변덕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연출해 냅니다. 이러한 마음은 온전하거나 건강한 마음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상처를 받고 좌절하고 무너지고 맙니다. 이런 마음은 약해서 삶의 온갖 스트레스들을 이겨낼 수 없고, 건강하고 활기 찬 생활보다는 무의미와 무기력한 삶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병든 마음입니다. 그래서 성경 잠언 4장 23절은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 시편 78편 37절을 보면 시편 기자는 정함이 없는 마음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향하는 저희 마음이 정함이 없으며 그의 언약에 성실치 아니하였음이로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정함이 없다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그 뜻은 ‘심령은 하나님께 충성치 아니하였다’라는 뜻입니다(8절). 곧, 정함이 없는 마음은 불성실한 마음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 불성실한 마음은 하나님의 언약에 성실하지도 않고 또한 성실할 수도 없습니다(37절). 이 정함이 없는 마음을 저는 한 3가지로 묵상하면서 우리는 우리 마음을 진단하는 계기로 삼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 진단된 마음을 내려놓고 회개하는 가운데 정결케 되며 또한 정함이 있는 마음으로 변화되는 역사가 있길 기원합니다.

 

첫째로, 정함이 없는 마음은 욕심을 따릅니다.

 

성경 시편 78편 30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그 욕심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저희 식물이 아직 그 입에 있을 때에.” 시편 기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기들의 열조를 거울로 삼아 죄를 범하지 말라고 경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하는 가운데 그는 그들의 열조의 범한 죄 중에 탐욕 죄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저희 탐욕대로 식물을 구하여 그 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하였으며”(18절). 이스라엘 백성들의 열조가 출애굽 당시에 탐욕 가운데 어떻게 하나님을 시험하였습니까? 오늘 본문 시편 78편 19-20절을 보십시오: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이 광야에서 능히 식탁을 준비하시랴 저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내시매 시내가 넘쳤거니와 또 능히 떡을 주시며 그 백성을 위하여 고기를 예비하시랴 하였도다.” 이스라엘 열조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였습니다. 그리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열조들을 향하여 맹렬히 노하셨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위의 궁창을 명하시며 하늘 문을 여시고 저희에게 만나를 비같이 내려 먹이시며 하늘 양식으로 주셨습니다(23-24절).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진노가운데 형벌을 받아야 할 이스라엘 열조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하늘 문을 여시사 만나를 비 같이 내려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시험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식물을 충족히 주셨습니다(25절). 주시되 그의 권능 속에서(26절) “고기를 티끌같이” 내리시므로 말미암아(27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먹고 배불렀습니다(29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욕대로 만나를 주셨습니다(29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의 욕심에서 떠나지 아니했습니다(30절). 그들은 먹을 것이 없어도 범죄하고 있어도 범죄하였으니, 그야말로 무가내하한 자들 인고로 이번에는 그들에게 벌을 내리셨습니다(민11:33-35, 시78:31)(박윤선).

 

성경 야고보서 1장 15절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탐욕이란 결국 사망을 낳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욕심이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만족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사람의 욕심입니다. 지난 주에 교회 일로 기독교 서점에 갔다가 “희대의 소망”(저자: 이희대)이란 책을 보고 암에 관련된 책이라 사서 읽어보았습니다. 저자 자신이 암전문의 의사이면서 암으로 고생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치유를 받고 쓴 책이래서 더 관심을 갖고 책을 사서 읽게 되었습니다. 암 4기에서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생명의 5기를 경험한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저는 암 세포에 관한 저자의 글에 흥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저자에 의하면 암 세포란 성장과 죽음을 반복해야 하는 세포의 유전자에 변이가 생겨 결코 죽지 않고 끊임없이 자라나는 세포라는 합니다. 암 세포가 무서운 것은 끊임없이 자라나기 위해서 다른 세포들의 영양분을 혼자서 차지한다는 사실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암 세포란 끊임없이 여기 저기 옮겨 다니면서 고칼로리 영양분을 낚아채서 독식하며 성장한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저자에 의하면 암세포의 본질은 탐욕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탐욕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의 탐욕을 부추기는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 안에서 꿈틀거리는 탐욕이라는 것을 십자가 앞에 매일 매일 순간순간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처럼 우리는 마음을 끊임없이 비워야 합니다. 내려놓고 또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에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한 분으로만 자족하는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물로 주신 영생(롬6:23)과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롬8:38-39)으로 인하여 우리는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암 세포와 같은 탐욕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 마음을 주장케 해서는 아니 됩니다.

 

둘째로, 정함이 없는 마음은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성경 시편 78편 32절을 보십시오: “그럴 찌라도 저희가 오히려 범죄하여 그의 기사를 믿지 아니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출애굽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늘 문을 여시사 만나를 풍족히 은혜로 내려주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탐욕은 만족을 하지 못했습니다. 끝없는 욕심 가운데서 결국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형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31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히려 범죄하여 하나님의 기사를 믿지 아니하였습니다(32절). 결국 그들은 욕심 가운데서 하나님께 범죄하였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은 것입니다. 그 죄는 바로 “불신”입니다. 시편 기자는 출애굽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이렇게 규명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며 그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한 연고로다”(22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홍해바다에서부터 광야까지의 여러 가지 기사들을 행하셨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의지하지 않으므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맹렬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노하셨습니다(21절). 그 결과 하나님이 저희 날을 헛되이 보내게 하시며 저희 해를 두렵게 지내게 하셨습니다(33절). 그 때서야 그들은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고 하나님이 저희의 반석이시요 지존하신 하나님이 저희 구속자이심을 기억하였습니다(34-35절).

 

성경 요한복음 20장 30-31절을 보면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요한복음에 기록된 표적들 왜에도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는가 하면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백성들이 자기를 믿지 아니하면 자기가 행한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10:38, 14:11).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에게 하신 누가복음24장25절 말씀이 맞습니다.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참으로 우리는 미련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더디 믿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우리의 더디 믿음에 대해서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은 죄니라”(롬14:23).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믿음의 진보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말씀을 부지런히 들어야 합니다(10:17). 그 결과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젓을 먹고 단단한 식물을 먹지 못하는 자가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히5:12). 우리는 더 이상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들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13절). 오히려 우리는 장성한 자들이 되어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되야 합니다(14절).

 

셋째로, 정함이 없는 마음은 거짓을 말합니다.

 

성경 시편 78편 36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저희가 입으로 그에게 아첨하며 자기 혀로 그에게 거짓을 말하였으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므로 하나님께 범죄하였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노하셨습니다.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돌이켜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지만(34절) 그것은 아첨에 불구한 회개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열매 없는 회개는 하나님 앞에 발라맞추는 아첨이었습니다. 그들의 회개가 하나님께 아첨이 되고 만 이유를 두 가지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개가 하나님 중심이 아니고 전연 자기들의 이익을 위한 까닭이며, 둘째로, 외부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보려는 것뿐이고, 중심의 진실함에서 죄악을 원통히 여기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박윤선).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향에 대하여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사29:13).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입술은 주님을 닮은 듯 하였으나 마음은 주님으로부터 멀어져 있었습니다. 이러한 정함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은 결국 하나님과의 언약에 성실치 아니하였습니다(시78:37).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렇게 하나님과의 언약에 성실치 아니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성실한 은혜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78편 38절과 39절을 보십시오: “오직 하나님은 자비하심으로 죄악을 사하사 멸하지 아니하시고 그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시며 그 분을 다 발하지 아니하셨으니 저희는 육체뿐이라 가고 다시 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로다.” 하나님께서는 거짓을 말하며 죄를 범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고 다시 오지 못하는 바람과 같은 육체(인생)뿐이라는 사실을 아시고 진노를 돌이키사사 그의 자비하심으로 그들의 죄악을 사하사 멸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이러한 죄를 범하였습니다: “저희가 광야에서 그를 반항하며 사막에서 그를 슬프시게 함이 몇 번인고 저희가 돌이켜 하나님을 재삼 시험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격동하였도다”(40-41절).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망각하고 수 없이 하나님을 시험하고 슬프시게 하였습니다.

 

저는 어제 새벽기도회 때 요한계시록 14장5절 말씀을 묵상하였습니다: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이 말씀은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구속 받은 자들, 즉 상징적인 숫자인 십사만 사천 명의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입에 거짓말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구속 받은 자들의 입에 거짓말이 없다는 말씀은 “정직한 언행”을 가리킵니다(박윤선). 성경 잠언 6장16-1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 중에 하나는 “거짓된 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짓된 혀를 버려야 합니다. 구속 받는 우리들은 거짓말이 없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들에게는 진실된 마음과 혀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 번” 진노를 돌이키시지만(시78:38) 이스라엘 백성들은 “몇 번”이고 하나님을 슬프게 하였으며(40절) 하나님께서는 그 분을 “다” 발하지 아니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탐욕을 다 발하여 하나님께 범죄를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그의 진노를 억제하신 반면에 출애굽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탐욕을 억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오히려”(23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주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히려”(32절) 하나님께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기사를 믿지 아니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에 성실치 아니하였지만(37절) 하나님은 그의 언약에 성실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이 정함이 없었지만 하나님은 그의 백성인 이스라엘 향하여 정함이 있는 마음으로 사랑하셨습니다. 왠지 죄를 좇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좇으시는 하나님의 신실한 언약적 사랑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그 신실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마음은 더욱더 하나님을 향하여 정함이 있는 마음으로 섬길 것입니다. 탐욕대신 예수님 한 분으로만 자족할 것이며 하나님의 기사를 믿으며 그의 구원을 의지할 것이며 또한 진실 된 마음과 혀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정함이 없는 마음의 소유자인,

 

 

 

제임스 김 목사 나눔

(나 같은 죄인을 신실하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