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라

 

 

[시편 77]

 

 

새해를 준비하면서 새해 표어를 “기도에 전혀 힘쓰라!”라고 정했습니다.  이 표어는 바로 사도행전1장14절에 근거한 것입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우리가 초대 교회 성도들처럼 함께 모여서, 마음을 같이하여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길 원합니다. 

 

죤 칼빈은 기도에 대하여 이러한 5가지 전제를 말하였습니다: (1) 하나님의 부드러운 초청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에 관하여서 주도권을 쥐고 계십니다.  그가 우리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시고 또한 우리에게 기도하기를 명하셨습니다.  (2) 중보자이신 예수님입니다.  모든 기도는 그리스도의 화해의 일과 중보 기도의 일로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하고 그가 기뻐하시는 기도는 중보자이신 예수님께서 거룩케 하시는 기도가 돼야 합니다.  (3) 없어서는 안 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야 하며 빚어져야 하며 또한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그것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약속의 말씀을 믿지 않고 기도하는 자의 기도하는 척하는 것입니다.’  (4) 성령님의 역할입니다. 성경 로마서 8장 26절 말씀이 이 전제를 설명해 줍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5) 믿음의 중요성입니다.  믿음은 진정한 기도의 기초요 필요한 조건입니다.  ‘믿음은 기도로 강화되고 기도는 믿음으로 영향 분을 공급 받습니다’(인터넷).

오늘 성경 시편 77편 1절 말씀을 보면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하나님께 내 음성으로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저는 오늘 이 말씀 중심으로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라”는 제목 아래 시편 기자의 기도에 대해서 한 2가지로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먼저 묵상하고 하는 것은 시편 기자가 언제 자신의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었는가 입니다2가지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시편 기자는 자기의 영혼이 위로 받기를 거절할 때에 자신의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성경 시편 77편 2절을 보십시오: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 밤에는 내 손을 들고 거두지 아니하였으며 내 영혼이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시편 기자는 이스라엘 국가적으로 당하는 환난 날에 깊은 고통에 빠져있었을 때 기도의 손을 내려놓지 않고 하나님께서 기도를 응답해 주실 때까지 기도하였습니다.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는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기도 응답해 주시기 전까지는 자신의 영혼이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시편 기자는 오직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응답해 주실 때만이 그의 영혼이 위로 받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 시편 기자의 영혼은 어떠한 상태에 놓여있었습니까? 

 

(1) 시편 기자의 심령은 상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77편 3절을 보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생각하고 불안하여 근심하니 내 심령이 상하도다(셀라).”  자신의 심령이 상해 있었다는 말씀은 시편 기자의 영혼이 불안하며 근심하였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왜 시편 기자의 영혼은 불안하며 근심하였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을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전날에게 그에게 하신 것과 같지 않고, 그 얼굴을 가리우신 듯이 혹은 노하신 듯이 생각되었기 때문에(박윤선) 자기의 영혼을 불안하며 근심하여 상해 있었습니다. 

 

(2) 시편 기자는 괴로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77편 4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나로 눈을 붙이지 못하게 하시니 내가 괴로워 말할 수 없나이다.”  시편 기자는 너무나 괴로워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받는 고난이 끝나지 않은 이유를 알지 못하여 고심하며 묵상하면서 잠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박윤선).  끝나지 않는 고난 속에서 고심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여 말할 수 없을 때에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을 좋은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도 오늘 본문 시편 기자처럼 위로받기를 거절할 정도로 마음이 괴롭고 심령이 상해있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때에 우리는 어느 누구의 위로의 말이나 행동도 위로가 안 되는 것입니다.  아예 그러한 주위에 사랑하는 이들의 위로조차도 우리의 마음이 받기를 거부합니다.  이런 때는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위로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성경 시편 119편 50절 말씀이 마음에 다가옵니다: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  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께 부르짖으십시다. 

 

둘째로, 시편 기자는 자기가 연약할 때 자신의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성경 시편 77편 10절을 보십시오: “또 내가 말하기를 이는 나의 연약함이라 지존자의 오른손의 해.”  시편 기자의 연약함은 그의 생각 속에서 나타났습니다: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그 인자하심이 길이 다하였는가, 그 허락을 영구히 폐하셨는가, 하나님이 은혜 베푸심을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 긍휼을 막으셨는가 하였나이다(셀라)(7-9절)”.  시편 기자가 고난과 고통 속에서 연약해져서 결국 그의 생각 속에서 이런 저런 하나님에 대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의문은 신앙적이 아니었습니다: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그 인자하심이 길이 다 하였는가…”(7-8절).  과연 시편 기자의 생각대로 그를 향한 또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중단될 수 있습니까?  과연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심을 잊으실 수 있습니까?  과연 주님께서 우리를 영원히 버리실 수 있으십니까?  우리가 알다시피 이러한 모든 의문은 하나님의 신격에도 어긋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시지도 않으시고 버리실 수도 없으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결코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을 잊으실 수가 없으십니다.  그는 우리에게 지금도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독생자 예수님을 주시기까지 사랑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의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우리고 시편 기자와 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즉, 우리도 고통과 고난이 길어지면 질수록 영육 간에 연약해져서 시편 기자처럼 연약한 생각을 합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나를 이 고난과 고통 가운데서 건져 주실까?, 언제까지 나를 이렇게 계속 보고만 계실 것인가?, 설마 나를 버리신 것은 아니겠지… 등등.  이러한 때에 과연 저와 여러분은 시편 기자처럼 자신의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십니까?  제 개인적 생각은 우리가 고통과 고난 가운데서 심신이 너무나 약해져 있으면 입을 열어 우리의 음성으로 하나님께 기도할 수도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 때에 제가 자주 불렀던 복음성가는 바로 “누군가 널 위하여”였습니다: “당신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릴 때 주님은 우리 연약함을 아시고 사랑으로 인도하시네 {후렴}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내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제가 위로 받은 또 다른 복음성가는 “주 만 바라볼지라”입니다: (1절)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 하나님의 평안을 바라보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 {후렴}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 만 바라볼지라.”

 

마지막으로 묵상하고자 하는 것은 시편 기자는 어떻게 하나님께 자신의 음성으로 부르짖을 수 있었는가 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가 하나님의 과거에 행하신 일들을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성경 시편 77편 11절을 보십시오: “곧 여호와의 옛적 기사를 기억하여 그 행하신 일을 진술하리 이다.”  시편 기자는 자기의 영혼이 위로 받기를 거절할 때 그리고 자기가 연약할 때 이렇게 행하였습니다: “내가 옛날 곧 이전 해를 생각하였사오며 밤에 한 나의 노래를 기억하여 마음에 묵상하며 심령이 궁구하기를”(5-6절).  그는 자기의 영혼이 위로 받기를 거절할 때 그리고 자기가 연약할 때 과거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회고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위안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미래의 소망을 가지고자 애썼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오늘 본문 11절에 와서 시편 기자는 자기가 회고하였던 옛적의 하나님의 기사, 즉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생각하며 찬송하며 그것으로 만족하고, 앞날 일은 하나님께 일임하였습니다(박윤선).  그는 주님의 모든 일을 묵상하며 주님의 행사를 깊이 생각하므로 말미암아(12절) 하나님께 자기의 음성으로 부르짖을 수 있었습니다(13-20절).  그가 묵상한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크신 하나님(13절) 이시요 그의 능력을 알리시는 하나님(14절)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속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15절).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시사 홍해 바다도 건너게 하신 하나님의 기적을 묵상하였습니다(16-20절).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께 자기의 음성으로 부르짖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시편 기자처럼 상한 심령과 괴로움 속에서 우리의 영혼이 위로 받기를 거절할 때 과거의 우리 삶 속에서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들을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우리의 염려를 다 주님께 기도로 맡겨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분명히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는 하나님이십니다(1절).  그리고 그의 때에 그의 뜻을 따라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복음 성가 “너는 내 아들이라”를 부르고 싶습니다:

 

“힘들고 지쳐 낙망하고 넘어져  일어날 힘 전혀 없을 때에 

조용히 다가와 손 잡아주시며  나에게 말씀하시네 

나에게 실망하며 내 자신 연약해  고통 속에 눈물 흘릴 때에 

못자국난 그 손길 눈물 닦아주시며  나에게 말씀하시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너는 내 아들이라

나의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 언제나 변함없이 너는 내 아들이라 

나의 십자가 고통 해산의 그 고통으로 내가 너를 낳았으니”

 

 

 

“힘들고 지쳐 낙망하고 넘어져 일어날 힘 전혀 없을 때에 조용히 다가와 손 잡아주시며 나에게 말씀”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임스 김 목사 나눔

(내 영혼이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을 온전히 성취해 주시기 전까지는 위로 받기를 거절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