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주님여, 기억하옵소서!

 

 

[시편 74]

 

 

500자리의 숫자를 한 번 듣고 기억해 기억력 부문에서 세계 기네스 기록(1998년)을 보유하고 있는 예루살렘 출신의 에란 카츠씨는 두뇌 능력 계발 전문가로 모토로라· IBM · 마이크로소프트 · 코카콜라 등 유명 다국적 기업과 기관에서 1000회 가까이 워크숍을 진행하며 세계적 명성을 쌓았습니다.  그가 자신의 저서 ‘천재가 된 제롬’(황금가지) 출간을 했다고 하는데 그 책을 보면 그가 유대인들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두뇌 계발 법을 연구하면서 유대인 두뇌 계발법의 큰 특징을 두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상상력’과 ‘불편함’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상상력은 좀 이해가 됩니다.  우리가 계속 상상할 때에 두뇌를 녹슬지 않게 하므로 기억력 감퇴를 막을 수 있고 기억을 잘 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좀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카츠씨가 말하는 “불편함”은 좀 이해가 안 됩니다.  그의 주장은 공부나 일을 할 때 불편한 자세로 하면 더 잘될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편안한 상태에 익숙해지면 두뇌를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의 말로는 유대인들이 즐기는 테크닉 중 하나는 일어서서, 또는 몸을 앞뒤로 움직이면서 공부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몸을 흔들면 두뇌에 산소가 공급되고, 몸의 움직임이 두뇌를 자극합니다.  걸어가는 동안 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처럼요.”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배움의 고통을 참지 못하면 무식함의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결국 카츠의 말대로 사람들은 유대인이 똑똑하다고 입을 모으지만 그건 유전 또는 혈통 때문이 아니라 홀로코스트 같은 슬픈 역사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유대인들이 스스로 발전시켜온 두뇌 계발법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에서 불편함이나 고통은 우리의 기억력에 도움이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인터넷).

 

오늘 성경 시편 74편을 보면 시편 기자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원수요 주님의 대적들로 인하여 고통 중에 있었습니다.  시편 기자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학대를 받으므로 가난하고 궁핍하게 되었습니다(21절).  그러한 가운데서 그는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버리시나이까”(1절)라는 한탄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면서 ‘주님여, 기억하옵소서!’라는 부르짖는 모습을 우리는 봅니다(2, 18, 20절).  저는 오늘 본문 말씀 중심으로 “주님여, 기억하옵소서!”라는 제목 아래 시편 기자가 하나님께 구하였던 기도 제목들을 한 3가지로 요약해서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기억력이 고통 중에 우리의 기억력이 되길 기원합니다.

 

첫째로, 시편 기자의 기도 제목은 주님의 회중을 기억하옵소서!’였습니다

 

성경 시편 74편 2절을 보십시오: “옛적부터 얻으시고 구속하사 주의 기업의 지파로 삼으신 주의 회중을 기억하시며 주의 거하신 시온 산도 생각하소서.”  시편 기자는 목자 되신 주님께서 그가 치시는 양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랫동안 고난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없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이여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버리시나이까 어찌하여 주의 치시는 양을 향하여 진노의 연기를 발하시나이까”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1절).  그러한 가운데서 그는 주님의 회중인 고난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억해 주시길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2절).  과연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잊어버리고 계셨던 것입니까?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랫동안 고난을 당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방치해 두셨던 것입니까?  성경 이사야 49장15절을 보십시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하나님은 결코 이스라엘 백성들을 잊어버리고 계셨던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들려주시는 말씀처럼 우리 하나님은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15절).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잊지 아니하시고 기억하고 계십니까?  그 이유를 오늘 본문 시편74편 1-2절에서 한 2가지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이시요 우리는 그의 양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74편 1절을 보십시오: “… 주의 치시는 양을 향하여 ….”  목자가 양을 잊을 리가 없습니다.  목자 되신 우리 주님은 우리를 영원히 기억하고 계십니다. 성경 요한복음 10장 27절을 보십시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2)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속하사 자기의 소유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74편 2절을 보십시오: “옛적부터 얻으시고 구속하사 주의 기업의 지파로 삼으신 주의 회중 ….”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값 주고 사시사 우리를 구속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잊으실 수가 있겠습니까?  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비록 우리가 길어지는 고통과 역경, 고난 중에서 주님의 구원이 더디다고 생각하여 그가 나를 잊어버리셨는가 의문을 던질 수 있겠지만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영영히 기억하고 계십니다.  성경 시편139편17-1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찌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오히려 주와 함께 있나이다.”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셔서 항상 수없이 우리를 생각하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기억치 아니하시고 잊을 수 있겠습니까?

 

둘째로, 시편 기자의 기도 제목은 주님의 원수를 기억하옵소서!’였습니다. 

 

성경 시편 74편 18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이것을 기억하소서 원수가 주를 비방하며 우매한 백성이 주의 이름을 능욕하였나이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그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억해 주시길 간구했을 뿐만 아니라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핍박하며 주님을 비방하는 원수들 또한 기억해 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18, 22절).  즉,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수이며 주님의 원수들을 잊지 마시고 심판해 주시길 간구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주로 시편 말씀을 묵상하면서 보는 하나의 패턴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자비)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시고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공의로우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수들을 심판해 주시길 간구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의 원수들이요 주님의 원수들은 “성소에서 모든 악을 행하였”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3절).  주님의 원수들, 주님을 대적하는 이들은 주님의 성소에서 무례히 떠들며(4절, 박윤선) 그 성전을 훼파하였습니다(3절).  더 나아가서 주님의 원수들은 마치 도끼로 삼림을 마구 쪼개듯이 잔인무도하게 하나님의 성전을 훼파하였습니다(5-6절, 박윤선).  심지어 이들은 하나님의 성소를 불사르며 주님의 성전을 더럽히기까지 했습니다(7절).  8절을 보십시오: “저희의 마음에 이르기를 우리가 그것을 진멸하자 하고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회당을 불살랐나이다.”  주님의 원수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전멸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하는 땅에 모든 예배 장소를 다 불살랐습니다.  이 얼마나 잔인무도한 우리의 원수들이요 주님의 원수들입니까?  이들은 주님을 대적하며 또한 주님의 백성들인 이스라엘 백성들, 또한 우리를 대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아덴 도시에서 많은 우상을 보고 사도 바울이 분노하였던 것처럼 우리는 지금 우리 교회들을 바라보면서 분노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얼마나 더렵혀지고 있습니까?  얼마나 죄악이 난무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거룩한 전에 황폐되어가고 있음을 보이십니까?  우리에게는 거룩한 분노가 불붙듯 일어나야 합니다. 

 

(2) 우리는 우는 자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박윤선). 

 

우리는 지금 교회를 바라보면서 울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령의 전이 더렵혀지고 황폐해져가는 모습을 하나님의 거룩한 눈으로 조금이나마 직시하면서 회개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3) 우리는 교회가 황폐해지는 마당에서 영적 고독을 느낄 줄 알아야 합니다(박윤선). 

 

오늘 본문의 시편 기자는 예루살렘과 성전의 폐허를 보고 거기에서 하나님은 멀리 떠나가신 듯한 고독을 느꼈습니다(3절, 박윤선).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께 이렇게 간절히 간구하였습니다: “우리의 표적이 보이지 아니하며 선지자도 다시없으며 이런 일이 얼마나 오랠는지 우리 중에 아는 자도 없나이다 하나님이여 대적이 언제까지 훼방하겠으며 원수가 주의 이름을 영원히 능욕하리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주의 손 곧 오른손을 거두시나이까 주의 품에서 빼사 저희를 멸하소서”(9-11절).  그는 주님의 원수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성소가 황폐되며 하나님의 이름이 욕을 당하는 것과 더불어 표적이나 선지자도 없는 영적 암흑시대에 하나님의 대적이 언제까지 이렇게 주님의 이름을 능욕하며 주님의 전을 황폐케 하는 것을 주님께서 보고만 계시고 주님의 오른손으로 그들을 심판하실 것인지 하나님의 심판을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이렇게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주의 대적의 소리를 잊지 마소서 일어나 주를 항거하는 자의 훤화가 항상 상달하나이다”(23절).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우리의 원수들, 주님의 원수들을 분명히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지금 우리가 보기엔 그의 심판이 더딛어 보일지라도 주님은 그의 때에 우리의 원수들, 주님의 대적들을 꼭 심판하시는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성경 이사야13장11절을 보십시오: “내가 세상의 악과 악인의 죄를 벌하며 교만한 자의 오만을 끊으며 강포한 자의 거만을 낮출 것이며.”

 

마지막 셋째로, 시편 기자의 기도제목은 주님의 언약을 기억하옵소서!’였습니다

 

성경 시편 74편 20절을 보십시오: “언약을 돌아보소서 대저 땅 흑암한 곳에 강포한 자의 처소가 가득하였나이다.”  시편 기자는 오늘 본문 12-17절을 보면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그의 신실하심을 의지하여 간구하는 모습을 우리는 볼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시편 기가는 현재의 고난과 흑암 속에서 과거의 하나님의 신실한 은혜를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구원과 도우심을 간구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붙잡았던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은 언약이였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과거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흑암의 시대 가운데 살아갔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맺은 언약을 잊지 않으시고 신실하게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셨던 것처럼 현재의 흑암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그의 언약을 기억하시사 그가 사랑하시고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시길 간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가난하고 궁핍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주님의 이름을 찬송케 하여 주시길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21절).

        

우리 하나님은 우리와 맺은 언약을 굳게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성경 시편 89편 28절을 보십시오: “저를 위하여 나의 인자함을 영구히 지키고 저로 더불어 한 나의 언약을 굳게 세우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되 그 변치 않으신 사랑으로 우리와 맺은 언약을 신실하게 지켜 나아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삶 속에 어떠한 고난과 예기치 않은 역경들로 인하여 암흑 속에 있다는 느낌이 들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의 말씀을 붙잡아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소망이 없어 보이고 미래가 보이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해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성경 민수기 23장 19절 말씀을 붙잡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으로 인하여 힘을 얻고 소망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또한 저는 성경 이사야 55장 11절 말씀도 붙잡습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하나님은 절대로 그가 사랑하여 택하고 그의 소유로 삼으신 우리들을 잊지 않으십니다.  또한 그는 우리의 원수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의 때에 그들을 꼭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은 우리와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맺은 언약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악인을 심판하시므로 우리를 건져주시는 구원의 은총을 누려야 합니다.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고 약속해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하나님의 기억이 고통 속에서 나의 기억이 되길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