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마음이 정결한 자 (1)

 

 

[시편 73]

 

 

작년 10월에 새 차를 사서 잘 관리하고자 제 아이들보고 뒷좌석에서 음식을 먹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한 1년 동안은 별 문제 없이 차를 깨끗하게 잘 관리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3주전, 제 첫째 아이인 Dillon이가 제 차 뒷좌석에서 ‘우왁’하고 그만 토를 왕창해 버렸습니다.  그 전날 밤부터 속이 안 좋아서 잠을 못자더니 결국 제 차 안에서 토를 해 버린 것입니다.  그 때 제 첫째 딸 예리는 냄새가 지독하다고 자기 코를 손으로 틀어막았으면 막내 예은이도 냄새가 난다고 자신의 불쾌한 심정을 약간 토해냈습니다. 하하.  그 때 감사하게도 정유소가 근처에 있어서 그리로 가서Dillon의 뱃속에서 나온 냄새나는 음식물들을 다 치우고 물수건으로 닦았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저는 제 아이들에게 생각난 예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고자 대화를 하였습니다.  음식이 우리 안에 들어갈 때에 그 음식 자체는 더러운 것이 아니지만 속 안에서 나오는 것은 이렇게 냄새가 나고 더럽다는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나쁜 생각, 거짓말, 질투와 시기 및 죄악 된 것들로부터 우리 마음을 잘 지켜야 할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자 시도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생명의 근원이 되는 우리 마음을 잘 지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죄악된 것들로부터 우리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너무나 우리 마음을 오염시키고자 하는 죄악된 것들이 우리 주위엔 너무나 많습니다.  보고 듣고 느끼고 냄새나는 것들 등등 우리 주위에는 너무나 우리 마음을 미혹하여 더럽히고자 하는 죄악된 것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죄악 된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우리 마음의 청결함을 지켜 나아가도록 애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장 8절에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우리는 하나님을 보는 마음이 청결한 복된 자들이 돼야 합니다.

 

오늘 성경 시편 73편을 보면 시편 기자 아삽은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하나님은 선을 행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절).  그러나 아삽은 거의 실족할 뻔 하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2절).  왜 그는 거의 실족할 뻔하였습니까?  다시 말하면, 마음의 정결을 지키려는 우리에게 오는 시험 중에 우리를 실족케 하는 요소는 과연 무엇입니까?  한 3가지로 우리는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아삽은 악인의 형통함을 보므로 말미암아 실족할 뻔하였습니다

 

성경 시편 73편 3절을 보십시오: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시편 기자 아삽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질시할 뻔하였습니다.  이러한 아삽의 ‘질시’(시기)는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언젠가 어떤 분이 저에게 이러한 질문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어째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가난하여서 힘든 생활을 해야 하고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돈이 많아서 별 고생 없이 잘 살아가고 있는가?’  아마도 나이 많으신 성도님은 이러한 고민을 많이 하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이 성도님만 가지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생각을 할 때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할 때 사탄은 우리 마음 깊은 속에서 질시 혹은 시기를 생기게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악인의 형통함’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악인은 의인과 달리 고통과 고난이 없다는 것입니다(5절).  또한 악인은 몸이 건강합니다(4-5절).  그리고 악인은 항상 평안하고 재물을 더하는 것입니다(12절).  이 얼마나 우리가 악인을 부러워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저런 사람도 저렇게 고통, 고난 없이 몸도 건강하고 잘 살고 있는데 나는 왜 이렇게 항상 힘든 고통과 고난을 격을 때로 겪으면서 몸은 쇠태어져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충분히 우리 자신에게 던질 수 있습니다. 

 

둘째로, 아삽은 악인의 교만으로 말미암아 실족할 뻔하였습니다

 

성경 시편 73편 6절 상반 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 아삽은 악인의 형통함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교만함 또한 목격하였습니다.  그들의 교만함은 3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행동의 교만입니다

 

이것은 악인들의 강포를 가리킵니다.  6절을 보면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라고 아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곧, 그들의 모든 행동과 표현은 남을 압제하며 착취하는 포학뿐이라는 뜻입니다(박윤선). 

 

(2) 마음의 교만입니다

 

이것은 악인들의 눈이 높아짐을 가리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며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  배가 부르면 어떻게 됩니까?  눈이 높아 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에 상상력이 한계가 없어져서 욕심가운데 재물을 쌓아간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남의 재물을 취하는 고로 예산보다 많은 수입도 생기게 됩니다(박윤선). 

 

(3) 입의 교만입니다.

이것은  입의 죄를 범함을 가리킵니다.  오늘 본문 8-9절을 보십시오: "저희는 능욕하며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거만히 말하며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무슨 뜻입니까?  여기서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란 말씀은 자기가 하늘처럼 높은 듯이 자긍함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라는 말씀은 가는 곳마다 악담을 위주 하는 행동을 가리킵니다.

 

셋째로, 아삽은 악인을 좇는 백성들로 말미암아 실족할 뻔했습니다

 

성경 시편 73편 10-1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그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도다.“ 아삽은 악인들의 악한 생각, 그 교만한 사상을 그대로 받아들여 모방하는 당파가 생겨 악인을 좇는 무리들이 많아지는 것을 보았을 때 거의 실족할 뻔했습니다.  악인들을 모방하는 이들은 배교하여 그들이 믿어 오던 하나님의 섭리적 통치를 의심하고,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대하여 무관심하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아삽에게 있어서 힘든 도전입니까? 악인을 좇는 배교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았을 때 분명히 아삽은 조금이나마 마음이 흔들렸을 것입니다.  이때에 악인에 대한 아삽의 결론은 바로 이것이였습니다: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 하도다“(12절).

 

      이러한 악인의 형통, 즉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 하는 것을 볼 때에 여러분은 어떠한 반응을 보이실 것입니까?  힘 빠지실 것입니까? 화를 낼 것입니까?  그들을 욕할 것입니까?  이 악인의 형통을 보고 아삽은 어떻게 반응하였습니까? 

 

(1) 그는 자신의 마음을 정히 한 것이 헛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시편 73편 13절을 보십시오: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2) 그는 자신의 곤고한 삶을 한탄하였습니다.

 

시편 73편 14절을 보십시오: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 

 

결국 의인의 마음에 불평을 일으킨 요소는 악인들은 흥(형통)하는 반면에 의인 자신은 곤고에 빠졌던 것입니다(박윤선).  이러한 생각, 곧 ‘악인의 형통함’과 ‘의인의 곤고’를 보았던 아삽은 어떻게 했습니까? 먼저 그는 이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의 짧은 지식으로 ‘하나님의 섭리의 복잡성‘을 해결하여 보려고 애썼습니다(박윤선).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결국 아삽의 마음을 심히 곤란하게 하였습니다(1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