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와서 하나님의 행하신 것을 보라!”

 

 

[시편 66]

 

 

요즘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어떠하나요?  저는 종종 만나는 형제, 자매들에게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어떠하십니까?’(How is your spiritual life?)라고 물어보곤 합니다.  물론 저의 질문에 좀 당황하는 지체도 없지 않아 있지만 주로 대답을 보면 ‘교회에서 이렇게 저렇게 섬기고 있고 기도 모임에도 참석하고 성경공부도 참석하고 있습니다’라는 식으로 대답합니다. 그저 제 개인적은 생각은 이 지체들의 대답을 들으면서 뭔가 신앙생활에 있어서 “존재”(being)보다 “행함”(doing)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생각입니다.  즉, 어느 누구도 신앙생활이 어떠하십니까 물었을 때 주로 우리는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또한 자신의 믿음 생활을 위해서 이런 저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라는 자신의 행함을 말하지 ‘하나님께서 제 삶 속에 이렇게 저렇게 역사하셔서 제가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 성장과 더불어 예수님을 닮아가고 있습니다’라는 식의 대답은 잘 듣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것은 곧 우리가 하나님의 행하심, 곧 하나님께서 우리 삶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역사하시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기보다 우리의 행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행함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믿음은 행함이 있는 믿음이기 때문에 우리의 행함도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우리가 우선순위로 생각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행하심이지 우리의 행함이 아닙니다. 

 

오늘 성경 시편 66편 5절을 보면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와서 하나님의 행하신 것을 보라 인생에게 행하심이 엄위하시도다.”  저는 오늘 이 말씀 중심으로 “와서 하나님의 행하신 것을 보라”는 제목 아래 한 두 가지를 생각하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겸손히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하나님의 행하심입니다.

 

(1)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행하심이 엄위하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66편 5절을 보십시오: “와서 하나님의 행하신 것을 보라 인생에게 행하심이 엄위하시도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하신 크고 기이한 일들 중 우리고 빼 놓을 수 없는 일은 바로 출애굽 당시에 하나님께서 홍해 바다를 가르시사 육지 되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보로 강을 통과한 것입니다(6절).  이것은 하나님의 초자연 적인 역사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도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행하심이 엄위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5절).  즉, 그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행하심이 “크고 기이하시도다”(계15:3)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크고 기이한 역사는 하나님의 능력(권능)을 보여주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얼마나 사랑하셔서 돌보주셨는지를 보여주었던 하나님의 일이였습니다(MacArthur).  그 하나님의 권능과 사랑(돌봄)을 후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억하였을 때 그들은 주님으로 인하여 기뻐하였습니다(시66:6). 또 다른 하나님께서 행하신 크고 기이한 일은 시편 기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가 그 능으로 영원히 치리하시며 눈으로 열방을 감찰하시나니 거역하는 자는 자고하지 말지어다(셀라)”(7절).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서 섭리하셔서 그의 능력으로 영원히 세상을 다스리시고 치리하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박윤선).   그 세상을 다스리시고 치리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또한 열방을 감찰하시고 계십니다(참고: 11:4-5).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거역하는 자는 자고하지 말지어다”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66:7).  우리 인생이 무엇이 관대 우리 주님께서는 그의 능력으로 우리를 치리해시며 감찰하시고 또한 돌봐주시는지 우리는 그의 크고 기이한 뜻을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렇게 찬양하는 것입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410장 1절).

 

(2) 시편 기자는 하나님은 우리의 실족함을 허락지 아니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66편 9절을 보십시오: “그는 우리 영혼을 살려 두시고 우리의 실족함을 허락지 아니하시는 주시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권능으로 세상을 다스리시고 치리하시는 가운데서 그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명을 아끼시사 보전하시고 살려두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실족치 않도록 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실족치 않게 하셨습니까?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은을 단련함같이 단련하시므로 그들로 하여금 실족치 않게 하셨습니다(10절).  어떻게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단련하셨습니까?  오늘 본문 11-12절을 보십시오: “우리를 끌어 그물에 들게 하시며 어려운 짐을 우리 허리에 두셨으며  사람들로 우리 머리 위로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행하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 그물에 들게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 허리에 어려운 짐도 두시므로 말미암아 단련하셨던 주님, 왜 주님은 이러한 고난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허락하셨습니까?  그 이유는 주님께서 그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을 보여주시므로 말미암아 그들의 인격을 빚어주시길 원하셨기 때문입니다(11:4–5, 7b)(WBC).  이스라엘 백성들을 단련하신 후 하나님은 그들을 고난에게 끌어내시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습니다(66:12).  우리 주님은 우리를 고난을 통하여 단련시켜 주시되 우리로 하여금 더욱더 예수님을 닮아가게 하시는 토기장이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비록 잠시 우리로 하여금 고난을 겪게 허락하시지만 그 고난은 우리에게 유익한 것입니다(119:71).  즉, 주님은 고난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시고 또한 우리의 인격을 빚어 주십니다.

 

둘째로 우리가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마땅히 행해야 할 일들입니다.

   

(1)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찬양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시편 66편 1-2절과 8절을 보십시오: “온 땅이여 하나님께 즐거운 소리를 발할지어다 그 이름의 영광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찬송할지어다”(1-2절); “만민들아 우리 하나님을 송축하며 그 송축 소리로 들리게 할지어다”(8절).  여기서 주님을 “영화롭게 찬송할지어다”(2절)란 말씀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으로 네 영광을 삼으라”는 뜻입니다(박윤선, Aben Ezra, 칼빈).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하신 엄위하신 일과 세상을 다스리시고 치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묵상하는 가운데 “온 땅이여 하나님께 즐거운 소리를 발할지어다…”하면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을 자기의 영광으로 삼았습니다.  시편 기자는 우리에게도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하나님께 이렇게 고하기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고하기를 주의 일이 어찌 그리 엄위하신지요 주의 큰 권능으로 인하여 주의 원수가 주께 복종할 것이며 온 땅이 주께 경배하고 주를 찬양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 할지어다(셀라)”(3-4절). 

 

     (2)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 시편 66편 13절을 보십시오: “내가 번제를 가지고 주의 집에 들어가서 나의 서원을 갚으리니.”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주신 은혜를 생각할 때 주님의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며 자기의 서원을 갚겠다고 결심하는 것을 우리는 봅니다.  언제 시편 기자는 이러한 결심을 하였습니까?  “내 환난 때”입니다(14절).  왜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영화롭게 찬송을 드리면서 번제를 드리려고 했었습니까? 그것은, 인간의 감사와 찬송이 그의 죄 때문에 더럽혀 하나님께 열납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박윤선).  그래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번제 드리되 수양의 향기와 함께 살진 것으로 주님께 번제를 드리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겼습니다(15절).  우리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 죽음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되 다윗이 살진 것으로 수소와 염소를 하나님께 드렸듯이 우리 또한 하나님께 귀한 예물인 우리 몸과 마음을 다 받쳐야 합니다.

 

       (3) 우리는 우리 영혼을 위하여 행하신 하나님의 일을 선포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시편 66편 16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너희들아 다 와서 들으라 하나님이 내 영혼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내가 선포하리로다.”  시편 기자는 구원을 얻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다 와서 들으라”고 권면하면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행하신 일을 모든 그들에게 증거하였습니다.  박윤선 박사님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일은 무엇보다 귀하다.  그것은 그 받은 은혜 그것을 인해서 보다, 그런 은혜 받는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과 가까워진 관계를 인하여 그러하다.  그러므로 그는 침묵할 수 없고 또 침묵해서는 안된다.”  시편 기자 다윗도 시편 39편 2절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잠잠하여 선한 말도 발하지 아니하니 나의 근심이 더 심하도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가 우리에게 행하신 일, 그가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모든 이에게 선포해야 합니다.

 

      (4)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시편 66편 17절을 보십시오: “내가 내 입으로 그에게 부르짖으며 내 혀로 높이 찬송하였도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찬양을 드렸습니다.  마치 사도행전 16장에 나오는 바울과 실라처럼 하나님께 기도하며 찬미한 것처럼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께 기도와 찬양을 드렸습니다. 그의 기도하는 마음에는 죄악을 품지 않았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시편 기자는 주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듣지 아니하실 줄 알았습니다(시66:18).  그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실로 들으셨으며 내 기도 소리에 주의하셨도다”(19절).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그 인자하심을 그에게 거두지도 아니하셨습니다(20절).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약 2000년 전에 갈보리산 십자가에서 행하신 크고 기이한 일을 묵상하십시다.  그가 우리의 영생(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 행하신 크고 기이한 일을 기억하십시다.  그리고 그 구원하신 우리들을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서 치리하시며 감찰하시며 돌봐주시는 등 그의 은혜에 깊이 잠기십시다.  그는 우리의 실족함을 허락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우리를 고난을 통하여 단련하시되 그 고난 가운데서 자신을 계시하시며 또한 우리를 빚으시사 예수님을 닮게 하시고 계십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장차 오실 재림의 예수님, 그가 오셔서 행하실 크고 기이한 일을 믿음으로 묵상해야 합니다.  그가 다시 오실 때 우리는 홀연히 변화되어 영광스러운 영적인 몸을 입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우리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석할 것이며 영광스러운 하나님 앞에서 영원토록 찬양하며 경배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욱더 하나님을 영화롭게 찬양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몸과 마음 정성을 다하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을 모든 이에게 선포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하되 사도 요한처럼 ‘마라나타’,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간구해야 합니다(계22:20).

 

 

 

 

“내 주 예수 세상에 다시 올 때 저 천국으로 날 인도하리 …”(찬송가 40장 4절),

 

 

 

제임스 김 목사 나눔

(하나님 중심된 신앙생활을 하기를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