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주의 성전에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시편 65]

 

 

“사람은 왜 만족을 모르는가?”(저자: 로리 애슈너어와 미치 메이어슨)란 책은 무언가를 성취해도 늘 무언가가 불만족스럽고 불안한 사람들, 기쁜 일이 생겨도 애써 자신은 행복하지 않다고 강박관념에 스스로 사로잡히는 사람들을 위한 심리분석서입니다.  10년 넘게 심리 상담을 해온 지은이들은 이러한 상태를 '만성 불만족 증후군'이라 부르고, 이와 관련된 일곱 가지 심리 증상을 분석하고 그 치유법을 이야기 합니다.  지은이들은 이러한 불만족 증상이 많은 실패를 겪은 사람들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고 갖고 싶은 것을 손에 넣은 사람들일수록 심했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행복해야 할 순간에 오히려 우울을 느끼는 사람들을 보면서 지은이들은 만족이 결코 성취나 소유의 문제가 아니며, 조금씩 쌓여서 자기 자신을 얽매이게 만드는 불만족이 더 큰 문제임을 강조합니다.  만성 불만족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심리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인터넷):

 

         성공을 해도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  기뻐해야 할 순간에 오히려 그 일을 또다시 해낼 수 있을까 고민한다.

         자신이 특별하고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다가도 그런 자신까지 의심한다.

         자신의 노력을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 속이 상하지만 막상 칭찬을 받으면 불편하다.

         앞장서기보다는 늘 누군가를 도와주는 역할에 만족한다. 자신보다 능력 없고 보잘것없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잘되는 것을 보면 씁쓸한 기분이 든다.

         그저 그런 성공으로는 충분치 않다.  평범하다는 것은 실패한 것과 마찬가지다.

         남에게 의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성과 가족, 혹은 일에서 문제가 생기면 항상 자신을 탓한다.

         항상 자신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         좌절감을 느끼는 상황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한다.

         남에게 손을 뻗치는 것을 싫어한다.

         늘 애를 쓴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에 만족하고 계십니까?  만일 만족하고 계시지 못하다면, 어떻게 하면 만족하시겠습니까?  물질이 많고 소득이 풍부하시면 만족하겠습니까?  전도사 솔로몬 왕은 전도서 5장 10절에서 이렇게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여러분의 눈이 원하는 것, 여러분의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다 누리면 만족하시겠습니까?  이것에 대해서도 솔로몬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분복이로다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2:10-11).  이 세상에서 솔로몬 왕처럼 다 누려본 사람이 어디있었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그러한 솔로몬 왕이 다 누려보았지만 결국은 ‘헛되고 헛되도다’하는 고백을 생각해 볼 때에 결국은 우리 영혼을 만족케 할 수 없음을 솔로몬처럼 우리 또한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 시편 65편 4절 말씀을 보면 시편 기자 다윗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여기서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은 “교회”를 상징하고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라는 말씀은 ‘신령한 은혜’로 만족한다는 말씀입니다(박윤선).  그래서 저는 오늘 말씀 제목을 “주의 성전에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라고 정한 후 과연 우리 교회는 어떻한 신령한 은혜로 만족해야 하는지 한 3가지로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기도 응답으로 인하여 만족해야 합니다 (65:1-4).

 

        성경 시편 65편 2절을 보십시오: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우리 주님은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지 않을 실 때도 있습니다.  즉, 응답 받는 기도에 대한 세 가지 큰 장애물이 있습니다. 

 

(1) 우리의 죄악입니다. 

 

성경 이사야 59장1-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2)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지 않으십니다.

 

성경 잠언 28장 9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3) 우리의 교만입니다. 

 

성경 야고보서 4장 6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우리가 교만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지 않으십니다.

 

그러면 우리 주님은 어떠한 기도를 들으십니까? 

 

(1) 우리 주님은 찬양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오늘 본문 시편 65편 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여 찬송이 시온에서 주를 기다리오며 사람이 서원을 주께 이행하리이다.”  우리가 6월달 구역 성경공부인 “기도의 능력”에서 배운 것처럼 기도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찬양, 감사, 자백, 중보, 간구.  이 중에서 찬양의 기도란 기도를 시작함에 있어서 먼저 하나님의 하나 되심을 알고 인정하며 나아가는 기도입니다.  그 좋은 예로 저는 시편 18편1-2절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시편 기자 다윗은 주님 앞에서 잠잠히(“기다리오며”) 머물러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긴장하여 고대”하였습니다(박윤선).  특히 그는 어떠한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원했는가 하면 “우리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5절). 

 

(2) 우리 주님은 우리의 감사 기도를 들으십니다

 

오늘 본문 시편 65편 2절을 보십시오: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다윗의 하나님, 또한 우리의 하나님은 기도를 들어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다윗이 말씀하였던 것처럼 “모든 육체”인 유대인이니 이방인이니, 귀한 자나 천한 자나 모두 다 하나님께 기도하려고 나옵니다(박윤선). 

 

(3) 주님은 자백(회개)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오늘 본문 시편 65편 3절을 보십시오: “죄악이 나를 이기었사오니 우리의 죄과를 주께서 사하시리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죄의 확신 성경구절인 요한일서 1장 9절 말씀을 보면 성경은 이렇게 약속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교회는 기도의 집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전에 올라가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찬양의 기도, 감사의 기도, 회개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만족해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전쟁의 승리를 주심으로 인하여 만족해야 합니다 (65:5-8).

 

성경 시편 65편 5-8절은 다윗이 압살롬의 난에서 구원 받은 일을 염두해 두고 전쟁의 승리를 주신 은혜로 인한 감사를 하나님께 드립니다(박윤선).  압살롬의 핍박과 난제 가운데서 다윗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므로 찬양의 기도와 감사의 기도와 회개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으시사 응답해 주셨습니다. 곧,  하나님은 압살롬과 그의 사람들로부터 다윗을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땅의 모든 끝과 먼 바다에 있는 자의 의지할 주께서 의를 좇아 엄위하신 일로 우리에게 응답하시리이다”(5절).  여기서 “엄위하신 일로” 다윗의 기도를 응답하셨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경이로운 일들 곧, 초자연적 행사들을” 통하여 다윗을 전(과거)에도 구원 하셨고 현재에도 구원해 주실 줄 확신하였습니다(박윤선).  다윗은 구원의 하나님께 간구하면서 자기의 기도를 들으시사 응답해 주실 줄 믿었습니다. 그 믿음 속에서 다윗이 의지하고 믿었던 것은 바로 주님의 힘이었습니다(6절). 다윗은 연약해져서 압살롬과 그의 사람들에게 쫓기면서 오히려 산을 세우시며 권능으로 띠를 띠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그가 의지하였던 전능하신 하나님은 바다의 흉용과 물결의 요동과 만민의 훤화까지 진정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7절).  그 하나님을 의지하였던 다윗에게는 즐거움이 있었고 반대로 하나님의 종 다윗을 대적하였던 압살롬과 그의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이 임하였습니다(8절).

 

성경 사무엘하 8장 6절을 보면 “…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다윗으로 하여금 어디를 가든지 전쟁에서 승리케 해주셨습니다.  그랬기에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히 행하였습니다(시60:12).  승리의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하시매 다윗의 전투적인 삶 속에서 그는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전투에 임하였으며 또한 주님께서 그로 하여금 승리케 하여 주시므로 말미암아 그는 만족하였고 또한 감사하였습니다.  우리 또한 다윗처럼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면서 용감히 행해야 합니다.  물론 계속 되는 영적 전쟁으로 인하여 우리의 영혼이 시달리고 괴롭고 또한 불안하며 낙망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윗처럼 우리의 영적 전쟁에서 구원의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되 특히 그 구원의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여 이 영적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싸우는 가운데 우리는 승리의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가 우리와 함께 하시매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케 하실 것입니다.  이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우리는 전투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주님께서 주시는 승리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혼을 만족을 누려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승리의 주님으로 인하여 만족해야 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우리는 풍년으로 인하여 만족해야 합니다(65:9-13).

 

성경 시편 65편 9절을 보십시오: “땅을 권고하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케 하시며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 이 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저희에게 곡식을 주시나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곡식을 주시되 풍성하게 주시고자 자연에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하늘 문이 여시사 비를 내리시고 땅을 물로 적셔 주시므로 그 땅을 심히 윤택케 하시므로 말미암아 결국은 그 땅으로 하여금 곡식을 풍성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10절).  하나님은 다윗에게 풍년으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곧 다윗의 회개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증거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주로 우리가 죄를 범한 후 회개치 아니할 때에 우리를 탕자처럼 궁핍케 하시므로 우리로 하여금 풍성한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여 스스로 돌이켜 회개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은 결국 왕궁에서 범한 죄로 인하여 압살롬에게 쫓겨 도망 다닐 때 하나님께 서는 다윗을 광야에서 회개케 만드셨습니다.  그런 후 하나님께서는 다시 다윗을 왕궁으로 인도하시므로 말미암아 다윗으로 하여금 풍족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탕자처럼 궁핍할 때에도 감사해야 할 것은 우리가 의지하던 물질 같은 것이 다 없어지므로 말미암아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며 의지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궁핍할 때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내려 주시는 풍부함을 어찌 우리가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신령한 복”을 받은 자들입니다(엡1:4).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택함을 받았고 그의 예정하심을 입었고 그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죄 사함(구속함)을 받았으며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 아버지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신령한 복입니다.  우리는 풍성한 은혜를 하나님께 이미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풍성한 은혜로 말미암아 만족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자족의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빌4:11-12).  그 자족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오직 주님 한분으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성경 빌립보서 4장 11-13절을 보십시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아무리 풍부할지라도 주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하지 못한다면 그 풍부함은 우리에게 저주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궁핍할지라도 주님 한분만으로도 만족 할 수 있다면 그의 궁핍함은 그에게 축복이 될 것입니다.

 

 

 

오직 주님만으로 만족하며 살아가고 싶은,

 

 

제임스 김 목사 나눔

(기도 응답해 주시는 주님, 승리케 하시는 주님, 그리고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주님의 신령한 은혜 가운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