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시편 63]

 

 

오늘 새벽기도회 때 잠언 12장 3절 말씀을 묵상하였습니다: “사람이 악으로 굳게 서지 못하나니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아니하느니라.”  움직이지 않는 의인의 견고한 뿌리를 묵상하면서 어떻게 그러한 뿌리 깊은 신앙을 가질 수 있을까 생각해 볼 때에 같은 장 잠언 12장1절 말씀에서 그 대답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나니 ….”  움직이지 않는 의인의 견고한 뿌리 깊은 신앙은 바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러나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그의 책 “영적 투쟁”에서 말하고 있듯이 사탄의 역사 중 하나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결국 아모스의 예언처럼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 임한 것입니다(암8:11).  그러므로 말미암아 호세아 선지자의 예언대로 하나님의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호4:6).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4장 13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하 데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강해질 것입니다.  지혜 있는 자는 강하고 지식 있는 자는 힘을 더하는 것입니다(잠24:5).

 

오늘 성경 시편 63편1절을 보면 다윗은 유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므로 왕궁에서보다 오히려 유대 광야에서 하나님을 더욱더 깊고 넓게 알게 되어 이러한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고백하는 다윗의 시를 묵상하면서 과연 이러한 고백을 하는 신앙인의 마음은 어떠한지 한 6가지로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고백하는 다윗의 영혼은 하나님을 갈망하였습니다.

 

성경 시편 63편 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광야란 다윗 말대로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입니다.  다윗은 압살롬으로부터 도망 다닐 때 광야에서 목말라 물을 찾듯이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에게는 하나님을 찾고자하는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다윗이 왕궁에 있었을 때도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었는가?’라는 의문이 듭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그의 책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에서 다윗이 그의 생애 동안 범한 중대한 죄 중에 가장 변명의 여지가 없고 가장 많은 대가를 지불한 죄가 바로 자기 아들 압살롬을 진정으로 용서하지 못한 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왕궁에서 범한 이 다윗의 죄에 대하여 이러한 말을 하였습니다: “밧세바와의 간음은 순간적 정욕을 못 이겨 범한 혼외 정사였고, 그것을 은폐하려고 왕으로서 저지른 죄가 우리아를 죽인 것이다.  그러나 압살롬을 거절하는 행위는, 자신은 하나님으로부터 그토록 풍성히 받았던 것을 아들에게 나누어 주기를 지속적으로 결연하게 거부한 죄였다”(피터슨). 피터슨 목사님은 다윗이 압살롬을 왕궁에 데리고 온 후에도 그를 무정하게 대하는 동안에는 하나님에 대한 다윗의 관심 역시 점점 줄었을 것이고 기도의 삶도 줄었을 것이라고 추측을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압살롬을 진정으로 용서하지 않고 거리를 두고 멀리하면 할수록 다윗은 하나님과도 멀어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다윗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릴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도 다윗과 별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주신 풍부함 속에서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지 않다가 하나님께서 ‘왕궁’과 같은 삶에서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징계하셔서 광야로 인도하실 때에는 주위에 아무 것도 없는 “곤핍한 땅”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광야로 인도해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성경 호세아2장14절을 보십시오:“그러므로 내가 저를 개유하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호세아 시대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바알을 함께 섬기면서 혼합주의 신앙생활을 하였기에 하나님께서 사랑의 매로 징계 하시되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은 그 광야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부드럽게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풍부함 속에서 하나님을 멀리하므로 범죄를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징계로 우리를 광야로 데리고 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무엇입니까?  거기 광야에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간절함을 우리에게 회복시켜 주시길 원하고 계십니다.  광야에서 다윗의 간절함이 어떻게 회복되었습니까?  다윗은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광야에서는 그의 육체가 밧세바와 같은 여인을 갈망하며 앙모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다윗이 왕궁에서는 자기의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요일2:16)을 갈망하며 앙모했었던 적이 있었지만 이젠 광야에서는 오직 그의 영혼과 육체가 주님만을 갈망하며 앙모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시63:1).

 

둘째로,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고백하는 다윗의 영혼은 밤중에 주님을 기억하였습니다.

 

성경 시편 63편 6절을 보십시오: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밤중에 주를 묵상할 때에 하오리니.”  하루의 첫 시간이 새벽도 주님을 묵상하기 좋은 시간이지만 하루 일과를 마치는 밤중도 주님을 묵상하기에 좋은 시간입니다.  조용한 시간에 홀로 앉아 주님을 묵상하되 그가 오늘 하루 삶에서 행하신 일을 뒤돌아보며 회상하는 시간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더 나아가서 오늘 하루의 만난 하나님은 누구이신지를 생각하면서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묵상하는 습관을 들이면 우리 신앙성장에 큰 유익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박윤선 박사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사람이 ‘침상’에 있는 때는 그 마음을 모든 외부적 사무에서 일단 거두게 된다.  그 때는 경건한 마음을 가지기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된다.”

     

다윗이 유대 광야에서 그의 영혼이 밤중에 주님을 기억하였다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그 뜻은 바로 다윗은 과거의 주님께서 자기를 도와주셨던 사실을 회상하였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과거에 도와주신 주님께서 지금 현재 유대 광야에 있는 자신을 도와주실 줄 확신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거이 부르리이다”(7절).  다윗은 과거에도 도와주셨을 뿐만 아니라 현재 압살롬에게 좇기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광야로 피할 수 있었음을 알고 있었기에 그의 도우심을 밤중에 묵상하면서 오히려 “나의 도움”이 되시는 주님을 주님의 날개 그늘에서 주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주님은 “나의 도움”이 되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위험할 때 우리를 그의 날개 그늘로 인도하시사 보호해주십니다.  우리는 이 주님을 묵상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다윗처럼 밤중에 침상에서 주님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도우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구원의 은총을 되새겨 봐야 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고백하는 다윗의 영혼은 만족하였습니다.

성경 시편 63편 5절을 보십시오: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내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  분명히 다윗은 지금 압살롬에게 도망하여 유다 광야에 있었기에 왕궁에서처럼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다윗은 물이 없고 마른 유다 광야에서 육체적으로는 만족함을 누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광야에서 영적으로는 만족하였습니다.  어떻게 그는 광야에서 마치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영적으로는 만족할 수 있었습니까?  그 이유는 다윗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경험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주님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음을 경험하였기에 그 하나님의 영원한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영혼이 만족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3절). 

 

과연 저와 여러분의 영혼은 지금 만족함을 누리고 있습니까?  혹시나 다윗처럼 왕궁과 같은 곳에서 생활하면서 육체적으로는 기름진 것을 먹으면서 배가 불러 만족함을 누리고는 있지만 영적으로는 굶주린 상태에 있는 것은 아닌지요?  다윗은 왕궁에서의 육체적 만족감 속에서 결국은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를 죽이는 범죄 후 하나님의 징계로 인하여 압살롬에게 배반당하고 쫓겼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그는 유대 광야에서 그는 육체적으로는 굶주리고 궁핍했을지라도 영적으로는 광야를 성소로 삼아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을 사모하는 가운데 결국 영적으로는 만족함을 누렸습니다.

 

복음성가 “주님과 같이”(There is None Like You)라는 곡이 있습니다.  그 곡의 가사가 이렇습니다: “주님과 같이 내 마음 만지는 분은 없네   오랜 세월 찾아 난 알았네 내겐 주밖에 없네/ 주 자비 강같이 흐르고 주 손길 치료하네  고통 받는 자녀품으시니 주밖에 없네/ 주님과 같이 내 마음 만지는 분은 없네  오랜 세월 찾아 난 알았네 내겐 주밖에 없네.”  결국 우리는 군중 속에서도 고독을 느끼는 가운데서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갈망하는 영혼을 만족시킬 줄을 믿고 간절히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 때에 우리 영혼은 만족할 수 있습니다.

 

넷째로,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고백하는 다윗의 영혼은 주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성경 시편 63편 3절을 보십시오: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왜 다윗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의 인자를 광야에서 경험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다윗은 유대 광야에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을 때 인자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함으로 말미암아 그는 이러한 믿음의 고백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인자하시다.

 

홍성건 목사님의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이란 책을 보면 6장은 “찬양 중에 임하시는 주님 찬송의 능력”이란 장이 있습니다. 그 장을 보면 그는 찬양의 능력에 대해서 이러한 말을 하였습니다: “찬양의 능력이 어디에 있습니까?  찬양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찬양의 내용이 믿음의 고백일 때, 하나님이 그 믿음 가운데 능력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찬양은 믿음의 고백입니다.  …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라’할 때에 영어로는 ‘I will praise You’라고 합니다.  거기에는 내가 의지적으로 선택해서 찬양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찬송할 수 없을 만큼 내 환경이 답답해도 하나님을 찬양하기로 선택한다는 것입니다”(홍성건). 그 예로 사도행전 16장에 나오는 바울과 실라를 들 수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믿음으로 결심하고 찬미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63편에 나오는 다윗은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이 자기의 생명보다 더 나으므로 하나님을 찬양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자기를 향하신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는 분명히 왕궁에 있을 때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이렇게 유대 광야에서처럼 경험하질 못했을 것입니다.  만일 그가 왕궁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경험했다면 그는 자기 아들 암놈을 죽이 또 다른 아들 압살롬을 그렇게 왕궁에 데리고 오고도 거리를 두면서 진정으로 용서하지 않는 죄를 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결국 다윗은 왕궁에서 쫓겨나서 압삽롬으로부터 도망 다니면서 그를 죽이려는 아들의 사람들에게로부터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되 “주의 날개 그늘”(7절) 아래 두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유대 광야에서 경험하였습니다.  때에 따라 돕는 은혜로 광야에 있는 다윗을 도우시는 하나님의 선한(은혜의) 손길을 다윗은 왕궁보다 광야에서 더 깊이 체엄하였습니다. 다윗은 광야에서 자기가 하나님을 향한 갈망보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향한 갈망이 더 간절함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의 이 놀라운 사랑으로 말미암아 다윗은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섯째로,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고백하는 다윗의 영혼은 주님을 가까이 따랐습니다.

 

성경 시편 63편 8절을 보십시오: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여기서 ‘주님을 가까이 따른다’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성경 신명기 4장4절을 보면 그 대답을 좀 알 수가 있습니다: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느니라.”  즉, 주님을 가까이 따른다는 말씀은 주님께 붙어 떠나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그의 주님을 향한 다윗의 변하지 않는 헌신(unfailing commitment)을 가리킵니다. 한 마디로, 다윗은 유대 광야에서 재헌신(recommitment)을 한 것입니다.  왕궁에 있을 때는 잠시 주님을 떠나 하나님께 죄를 범하였지만 다윗은 왕궁에서 쫓겨 나아가 광야에 있을 때에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주님을 더욱더 가까이 따랐습니다.  왕궁에서는 주님께 붙어있지 못했던 다윗이 광야에서는 주님께 붙어 떠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왕궁에서보다 광야에서 하나님께 변하지 않는 헌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흥미롭지 않습니까?  왕궁에서는 변질, 광야에서는 변하지 않는 헌신을 하게 된 것을 보면 ….  다윗은 광야에서 주님의 오른손이 자기를 붙들어주시고 계심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는 광야를 성소로 삼아 주님의 “권능과 영광”을 보려 하였었는데(시63:2)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응답하시사 그의 권능, 즉 그의 능력의 오른손으로 다윗을 꼭 붙잡아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다윗이 주님께 붙어 떠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가까이 따라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주님의 능력의 오른손에 붙잡히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광야에서 제일 연약하고 힘들 때 하나님의 권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그의 능력의 오른손으로 우리를 꼭 붙잡아 주실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는 다윗의 영혼을 찾아 멸하려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신 것처럼 우리의 대적들을 멸망시키실 것입니다(9-10절).

 

마지막 여섯째로,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고백하는 다윗의 영혼은 하나님을 즐거워합니다.

 

     성경 시편 63편 11절을 보십시오: “왕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리니 주로 맹세한 자마다 자랑할 것이나 거짓말 하는 자의 입은 막히리로다.”  다윗은 광야에서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그 기쁨은 왕궁에서 잠시 누렸던 세상적 쾌락하고 전혀 다른 것이 였습니다. 그가 광야에서 맛본 기쁨은 세상이 이해할 수도 없고 줄 수도 없는 기쁨 이였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주님의 영원한 인자하심을 경험하였기에 즐거워하였습니다.  다윗은 광야에서 자신의 영혼이 만족함을 경험하였기에 기뻐하였습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받고 주님의 능력의 오른손에 붙들린바 되었던 다윗은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즐거워함은 꼭 환경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그는 왕궁에서 아닌 광야에서 하나님을 즐거워하였습니다.  다윗의 즐거움은 오직 주님 때문 이였습니다.  그는 주님 한분만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다윗처럼 주님 한분만으로 즐거워하며 기뻐해야 합니다.

 

이번 주 월요일 저녁에 뜻 밖에 영어사역 공동체 가운데 있는 한 형제로 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지난 주일 영어 예배 가운데 받은 은혜를 나누면서 주님이 주신 “revelation” (계시)이 있다고 말하면서 만나길 원하여 그 다음 날인 화요일 만나 함께 점심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의 확신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길 주님이 원하고 계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어떻게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길 수 있는지 아주 작은 일이라도 알려달라고 하여 저는 그에게 제일 먼저 매 주일 규칙적인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자고 권면하였습니다.  먼저 예배자로 세워지면서 그 존재 안에서 행함(섬김)이 나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권면을 들은 그 형제는 제 의견에 동의하는 듯 해 보였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그 형제와 주님 안에서 마음과 마음의 대화를 나누는 중 저는 그 형제의 확고한 신앙, 즉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신앙을 엿보게 되어 마음이 감사하고 기뻤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이렇게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호6:3).  하나님을 힘써 알아가는 가운데 다윗처럼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시63:1).  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 살아가면서 다윗처럼 역경과 어려움, 핍박과 고난이 있을지라도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을 갈망하며, 밤중에 하나님을 기억하므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혼을 만족케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길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인자하심, 그의 권능과 영광을 경험하므로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서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십시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재헌신하십시다.  그리할 때 우리는 다윗처럼 하나님 한분으로만 즐거워할 수 있을 것입니다.

 

 

 

“O God, You are my God” (‘하나님, 당신은 저의 하나님이십니다),

 

 

제임스 김 목사 나눔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다른 어떤 은혜 구하지 않으리 오직 주님만이 내 삶에 도움이시니 주의 얼굴보기 원합니다  주님 사랑해요 온 맘과 정성 다해 하나님의 신실한 친구 되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