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내 영혼을 붙들어 주시는 주님

 

 

[시편 54]

 

 

헨리 나우웬의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이란 책을 보면 “예수님의 붙드심을 생각나게하는 사람”이란 장이 있습니다.  이 장에서 나우웬은 “지탱해 주는 것, 지탱해 주기 그리고 지탱해 주는 사람’에 대해서 말합니다.  여기서 핵심 구절은 성경 요한복음 16장7, 13절입니다: “…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  여기서 핵심 내용은 예수님께서 떠나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과 더욱더 친밀한 만남(교제)이 (성령님을 통하여)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부재로 말미암아 제자들은 주님과의 더욱더 친밀한 만남(교제)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친밀한 만남(교제)이 제자들을 고난 가운데서 지탱해 주었으며 예수님을 다시 만나고자 하는 소망을 일으켰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그것은 바로 “기억하는 행위”로 가능합니다(나우웬).  즉, 과거를 현실화 하는 것으로 말미암 제자들은 고난 가운데서도 예수님을 소망하므로 견디고 이겨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떠나신 후 오신 보혜사 성령님께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들과 그분의 사랑을 기억케 하시므로 말미암아 핍박과 역경과 고난 가운데 있는 제자들을 붙들어(지탱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에 대해 어떠한 기억이 있으십니까?  어떠한 예수님에 대한 기억들이 오늘 여러분이 당면한 어려움과 역경 속에서도 여러분을 붙들어(지탱해) 주고 있습니까?  기억이란 우리를 과거와 연결해 줄 뿐만 아니라 현재를 계속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줍니다(나우웬).  과거의 구원의 기억이 현재 우리가 당면한 역경 속에서 힘을 주어 우리로 하여금 앞으로 전진해 나아가게 합니다.

 

       오늘 성경 시편 54편 4절을 보면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돕는 자시라 주께서 내 생명을 붙드는 자와 함께 하시나이다.’”  여기서 “내 생명을 붙드는 자”라는 말씀은 주님께서 ‘내 영혼을 지탱해주시는 자’ 혹은 ‘내 영혼을 붙들어 주시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 중심으로 “내 영혼을 붙들어 주시는 주님”이란 제목 아래 주님께서 붙들어 주시는 영혼의 삶은 어떠한지 한 3가지로 묵상하면서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주님께서 붙들어 주시는 영혼은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성경 시편 54편 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이소서.”  오늘 본문 말씀은 다윗이 사울에게 핍박 받아 도망 다니고 있었을 때 십 땅 사람들이 다윗에 숨어있는 곳을 사울 왕에게 밀고한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삼상 23장 19절과 26장에 나와 있음).  이 시편 53편 말씀의 배경은 시편 52편과 좀 비슷합니다.  우리가 이미 묵상한 시편 52편 말씀 배경도 다윗이 사울 왕에게 핍박받아 도망 다니고 있었을 때 에돔 사람 도엑이 사울 왕에게 다윗이 아히멜렉 제사장 집에 왔더라고 밀고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나 시편 52편이나 둘 다다 다윗이 사울 왕에게 핍박 받던 중에 쓴 시로서 밀고를 당하여 위험과 위기에 처했을 때 쓴 시입니다.  이러한 위험과 위기의 상황에서 다윗은 제일 먼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2절).  그의 결론적인 또는 핵심적인 기도 내용 중 하나는 바로 오늘 본문 1절에 나와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으로 나를 구원하시고 주의 힘으로 나를 판단하소서.”  다윗은 위험한 일을 당하여서도 그 위험 자체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하기보다 먼저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그의 구원을 간구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다윗은 위험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부르짖으면서 “주의 이름”을 의지한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은 ‘선하신 이름’입니다(6절). 그 선하신 이름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한다는 것은 자기가 당면한 위험한 상황까지도 합력하여 하나님께서 선을 이루실 줄 믿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기도에 대하여 이러한 말을 하였습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빈 마음으로 무력하게 있으면서 모든 것이 은혜이며 아무것도 단지 우리의 고된 노력의 대가로 얻어진 것이 없음을 선언하는 한 방법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윗처럼 “주의 힘”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또한 다윗처럼 주님의 선하신 이름과 주님의 힘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위험한 환경과 역경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사모하여 구원의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그러한 기도가 우리를 계속하여 지탱해 줄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를 붙들어 주십니다.

 

        둘째로, 주님께서 붙들어 주시는 영혼은 하나님을 우리 앞에 둡니다.

 

       성경 시편 54편 3절을 보십시오: “외인이 일어나 나를 치며 강포한 자가 내 생명을 수색하며 하나님을 자기 앞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셀라).”  여기서 우리는 왜 다윗이 하나님께 간절하 간구하였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외인”, 즉 경건치 않은 악도(악인)들이 다윗을 치며 그의 생명을 찾아 죽이려는 상황에 그가 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여기서 외인이란 다윗을 사울 왕에게 밀고한 십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강포한 자가 내 생명을 수색”하였다는 말씀은 사울 왕이 다윗을 잡아서 해하려는 행동을 가리킵니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악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악을 행한다고 다윗은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을 사울 왕에게 밀고하였던 십 사람들은 왕 중의 왕이신 주님을 바라보며 그를 경외하기보다 육안으로만 보이는 사울 왕을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러기에 그를 도와 다윗이 있는 곳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하나님께 붙들린바 된 신앙인은 코람데오(Coram Deo)의 삶을 삽니다.  “코람데오"란 말은 라틴어로 "코람"(앞에서)과 "데오"(하나님)가 합쳐진 말로 "하나님 앞에서"(In the presence of God)이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얼굴이 항상 내 눈 앞에 존재해 계시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것, 하나님 면전의식, 곧 신전의식이야 말로 우리에게 진정한 담력과 성결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인터넷).  코람데오 신앙을 가졌던 성경 인물 중에 우리는 요셉을 예로 들 수있습니다.  요셉은 그의 삶 속에서 언제나 매 순간순간 그의 앞에 계신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았습니다.  성경 창세기 39장9절을 보십시오: "이 집에는 나보다 큰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그 자리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무도 몰랐습니다. 아무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신 앞에 계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  하나님이 듣고 계신다.  하나님이 알고 계신다.  그런데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요셉의 "코람 데오" 신앙이었습니다(인터넷).  우리도 코람데오 신앙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유혹이 많은 이 세상에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요셉처럼 계속되는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승리하기 위해서 우리는 "코람데오" 즉, "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신앙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주님께서 붙들어 주시는 영혼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합니다.

 

        성경 시편 54편 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나의 돕는 자시라 주께서 내 생명을 붙드는 자와 함께 하시나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붙들어주심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었습니까?  7절을 보면 그 대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대저 주께서 모든 환난에서 나를 건지시고 내 원수가 보응 받는 것을 나로 목도케 하셨나이다.”  다윗은 현재의 위협과 위기 상황에서 과거의 하나님께서 자기를 환난에서 건지신 경험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과거의 하나님께서 자기의 원수들을 보응하시는 것을 보고 만족하였던 순간들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은 지금 현재 자기를 핍박하는 사울이던 십 땅 사람들이던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보응하실 줄 확신하였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내 원수에게 악으로 갚으시리니 주의 성실하심으로 저희를 멸하소서.”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성실하게 다윗의 원수들을 보응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이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다윗의 반응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내가 낙헌제로 주께 제사하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6절).  다윗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과거에도 경험하였고 지금 현재에서도 경험할 줄 확신하므로 하나님께 자발적으로 감사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헨리 나우웬은 기억에 대해서 이러한 말을 하였습니다: “기억한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에 일어난 일들을 돌아보는 것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과거의 사건들을 현재로 이끌어 오며 현재 이곳에서 그 사건들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구원의 사건들을 현재 위기 상황으로 이끌어 와서 그 사건들을 기념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 즉 악인을 심판하시고 의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확신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위기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자발적으로 감사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약 2000년 전 갈보리 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을 성찬식을 통하여 기념합니다.  생명의 떡이 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찢기신 살을 상징하는 빵과 그가 십자가상에서 흘리신 보혈을 상징하는 포도주를 마시면서 우리는 예수님을 기념합니다.  또한 우리 안에 내재하시는 성령님은 예수님의 말씀과 사랑을 기억케 하시므로 우리로 하여금 현재 삶 속에 어떠한 역경과 아픔과 고난도 이겨 나아가게 해주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선하신 주님의 이름과 그의 능력을 의지케 하시므로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케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 가운데 우리는 주님께서 능히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줄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구원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내 영혼을 붙드시는 주님의 은총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들의 영혼을 붙잡아 주시길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