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어리석은 자들

 

 

[시편 53]

 

 

“지혜’란 무엇입니까?  켄 가이어에 의하면 지혜란 히브리 단어로 ‘살아가는 기술’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기술은 마음에 하나님의 음성을 더욱 민감히 듣는 습관을 기름으로써 배울 수 있다고 합니다.  C. S. 루이스는 “피조물로서 인간 최대의 존엄성은 주도권이 아니라 반응에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우리는 듣는 것입니다.  그분이 씨를 뿌리시면 우리는 받는 것입니다.  씨를 뿌리는 것은 광야 같은 인간의 심령에 에덴을 복원하시는 하나님의 시도인 것입니다.  씨를 받는 것은 그 일에 동참하는 우리의 몫입니다(인터넷). 우리는 찰스 스윈돌의 말처럼 “광야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광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미드바르’입니다.  이 단어는 ‘말하다’라는 뜻인 ‘다바르’에서 나왔습니다. 이러한 어근에 비춰볼 때, 광야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곳, 하나님이 가장 중요한 그분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주시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한적한 곳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지혜로운 자의 삶입니다(인터넷). 그러나 왠지 요즘 하나님께서는 제 자신의 미련함을 계속 들춰내고 계십니다.  특히 요즘 에머슨 에서리치 박사의 책 “그 여자가 간절히 바라는 사랑, 그 남자가 진심으로 원하는 존경”을 통하여 얼마나 성경적으로 부부관계를 세워가고 있지 못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해주고 계십니다.  부부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삶 속에 적용하지 못하므로 말미암아 인간의 미련함을 들어내고 있는 제 자신을 모습을 보면서 마치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저는 제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성경 시편 53편 1절을 보면 "어리석은 자"들이 나옵니다.  이 어리석은 자들은 시편 기자 다윗을 포위하여 박해하였습니다(6절).  물론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어리석은 자”들은 의인인 다윗을 박해하고 죽이고자 하는 악인들을 가리키지만 저는 오늘 본문 말씀과 시편14편 말씀 중심으로 과연 어리석은 자들은 누구인지를 생각해 보면서 우리 안에 어리석음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계시를 통하여 우리 안에 어리석음을 깨닫게 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회개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체험하기를 기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즐거움을 회복하는 은총이 있길 기원합니다.

 

첫째로, 어리석은 자들은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들입니다.

    

성경 시편 53편 1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  "어리석은 자"란 히브리어는 "나발"입니다.  여기서 “나발”이란 다윗 이야기에 나오는 아비가일의 남편 이름이기도 합니다.   성경 사무엘상 25장을 보면 나발이 다윗에게 악으로 선을 갚았을 때에(21절)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운 나발의 부인 아비가일은 (3절) 다윗에게 나아가 그의 발에 엎드려 그 얼굴을 땅에 대고 “이 죄악을 나 곧 내게로 돌리시”기를 청합니다(24절).  그러면서 그녀는 자기 남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봅니다: “… 내 주는 이 불량한 사람 나발을 개의치 마옵소서 그 이름이 그에게 적당하니 그 이름이 나발이라 그는 미련한 자니이다 …”(25절).  다윗을 선을 악으로 갚았던 어리석은 자, 나발을 생각할 때에 우리 또한 하나님 앞에서 ‘나발’이라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을 베푸시고 계시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선을 죄악으로 갚고 있기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나발’입니다.

박윤선 박사님은 그의 주석에서 "어리석은 자"를 가리켜 "실제적인 무신론자"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론적인 무신론자가 아닌 실제적인 무신론자는 말로는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는 자입니다.  이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습니다(롬1:21).  어리석은 자들은 분명히 하나님을 알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이 허망하여지고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져서 하나님을 부인하는 삶을 살고 입습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는 자들(딛1:16), 이러한 자들을 가리켜 디도는 “복종치 아니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딛1:10).  이러한 자들을 향한 디도의 권면은 “저희의 입을 막을 것이라”입니다.  그 이유는 어리석은 자들이 교회 안에서 말로만 하나님을 시인하고 행위로는 부인할 때에 교회는 이런 자들로 인하여 온통 엎드러지기 때문입니다(11절).

 

둘째로, 어리석은 자들은 선을 행지 아니하는 자들입니다.

 

     성경 시편 53편 1절 하반절과 3절을 보십시오: “…저희는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1절하), “…  각기 물러나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3절).  어리석은 자들은 입술로는 '하나님은 선하시다'라고 찬양할지는 모르겠지만 삶 속에서는 선을 행치 아니하므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부인합니다.  비록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았을지라도(시편 34:8), 이미 모든 선한 일을 버린 자들이기에 선을 행치 아니하는 악행 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의 악행은 "부패"와 "가증한 악"이었습니다(1절). 여기서 부패란 '도덕적 부패', 즉 "자력으로 회복할 수 없는 정도의 극악한 죄성을 가리킵니다(박윤선).  이들의 "가증한 악"은 결국 "더러운 자"(3절)라는 칭함을 다윗에게 받았습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므로 선을 행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할 수도 없습니다.  선하신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자들이 어떻게 선을 행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8:7).  어리석은 자들은 ‘선을 행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부패와 가증한 악을 행하기를 일삼는 것입니다. 

 

셋째로,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을 알려고 힘쓰지도 아니하는 자들입니다.

    

성경 시편 53편 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여기서 어리석은 자들은 말로는 하나님을 안다고 고백하지만 진정으로 하나님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들로서 하나님을 알려고 애쓰지도 않습니다.  아니 그들은 그 필요성조차도 느끼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굽어서 살피심'에도 불구하구 어리석은 자들 중에 하나님을 알려고 찾는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려고 힘쓰지도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하나님을 부르지도 않는다는 말입니다(4절).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죄를 범했어도 하나님께 부르짖어 회개하지도 않습니다.  

 

성경 시편 14편 3절 말씀을 보면 어리석은 자들은 다 치우친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아는 길에서 탈선된 자들이라는 말씀입니다(박윤선).  하나님을 찾을 마음조차도 없고, 하나님만을 찾지 아니하고 다른 것도 겸하며, 하나님보다 먼저 세상 것을 찾으며, 하나님을 찾느라고 하나 열심 없이 찾으며, 계속하여 찾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찾지 않고(이단) 그리고 적시 적으로 찾는 것(회개해야 할 때에 회개하지 않습니다(박윤선). 

마지막 넷째로,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박해하는 자들입니다.

 

       성경 시편 54편 4절을 보십시오: “죄악을 행하는 자는 무지하뇨 저희가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하나님을 부르지 아니하는 도다.”  다윗은 어리석은 자들은 죄악을 행하는 자들이요 참으로 무지한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도무지 배우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죄악에 마음이 강팍케 된 자들입니다.  더 나아가서, 다윗은"... 저희가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말은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박해하기를 기탄 없이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을 예사로 알기에 그는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뇨"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4절).

 

이러한 어리석은 자들의 결과는 무엇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어리석은 자들을 버리셨습니다. 5절 하반 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저희를 버리신 고로 네가 저희로 수치를 당케 하였도다.”  하나님께서는 어리석은 자들을 버리신 고로 그들은 수치를 당합니다.  또한 어리석은 자들은 “두려움이 없는 곳에서 크게 두려워합니다(5절).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어리석은 자들의 뼈를 흩으시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과 벌로 말미암아 결국은 하나님을 크게 두려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리석은 자들을 버리시고 자기의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오늘 본문 시편 52편 6절을 보십시오: “시온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줄 자 누구인고 하나님이 그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며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하나님께서는 어리석은 자들을 버리시고 자기의 백성의 포로된 것을 회복시키시므로 말미암아 구원을 이루실 것이기에 다윗은 즐거워하며 기뻐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슬픔은 잠깐이요 기쁨은 영원한 것입니다.

 

 

 

나 자신의 어리석음을 자랑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지혜를 사모하면서,

 

 

제임스 목사 나눔

[아버님이 주신 이름 “지원” (지혜 “지”자와 으뜸 “원”자) 답게 살기를 원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