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시편 49]

 

 

짐승이 사람보다 나은 것이 많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치타는 사람보다 빠르고 기린은 사람보다 크고,  몸무게로 따진다면 일곱 사람이 코끼리 한 마리를 당해내지 못한다고 합니다.  눈 밝기로는 매나 독수리가 사람의 눈보다 앞서며 냄새 맡는 코는 개가 사람보다 1만 배 이상 발달돼 있다고 합니다.  청각으로 말하자면 사람의 귀는 토끼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물속에서 헤엄치기를 한다면 사람은 물개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사람이 짐승만 못한 것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짐승보다 나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만 하나님의 형상을 부여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 중에 첫 번째는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과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가지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선한 양심을 주신 것입니다.  양심은 도덕과 윤리의 기반입니다.  양심은 우리 안에 있어도 늘 하나님 편입니다.  그래서 죄를 지으면 양심은 가책을 받고 불안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다운 사람, 짐승보다 나은 사람은 착한 양심에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입니다(인터넷).

 

그러면 짐승보다 못한 사람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마음속에 영원을 사모하지 않고 또한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도 없는 자입니다.  또한 짐승보다 못한 사람은 양심이 마비된 사람, 선한 양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 시편 49편 12절과 20절을 보면 사람이 “짐승 같도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멸망하는 짐승 같은 사람은 누구인지, 왜 그 사람이 어리석은지를 생각해보면서 또한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15절)라고 확신하는 또 다른 부류의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며 무슨 책임이 있는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는 과연 어떠한 사람이 돼야 하며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본문을 통해서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멸망하는 짐승 같은 사람

 

  성경은 어떠한 사람이 멸망하는 짐승 같은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바로 세상에서 부귀와 영화를 누릴지라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를 가리켜 멸망하는 짐승 같은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12, 20절).  이 짐승 같은 사람은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에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면서 자기의 풍부함을 자랑(자긍)합니다(6절).  그래서 이 짐승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항상 살 것 같이 꿈꾸면서 자기의 이름으로 토지의 소유권을 냅니다(11절).  다시 말하면, 그 사람은 땅 위에서 이름을 내려고 힘쓰고 있습니다(박윤선).  이렇게 이 세상 번영만을 생각하고 애쓰는 행위는 우매한 것입니다.  그 이유를 무엇입니까?  한 세 가지 이유를 오늘 본문에서 찾게 됩니다.

 

(1) 첫 번째 이유는 오늘 본문 시편 4917절에 나와 있습니다: “저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 영광이 저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 아무리 재물이 많다한들 죽으면서 가지고 갈 수도 없는데 그 재물을 의지하며 자랑하며 살아간다는 것, 이 얼마나 어리석은 삶입니까?  어느 면으로 보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재물(돈)을 우상화하여서 헛된 인생을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헛된 죽음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2) 두 번째 이유는 자신의 재물은 결국은 타인에게 주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짐승 같은 사람은 우매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49편 10절을 보십시오: “저가 보리로다 지혜 있는 자도 죽고 우준하고 무지한 자도 같이 망하고 저희 재물을 타인에게 끼치는도다.”   우리가 이미 묵상한 시편 39편 6절에도 이와 같은 비슷한 내용의 말씀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 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결국 성경 말씀처럼 악인의 재물은 우리 의인들이 취하게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재물을 위해서 살면서 열심히 모아놓은 것이 결국은 죽을 때에 누가 취할는지도 알지 못하니 그 얼마나 헛된 인생입니까?  참으로 어리석은 삶입니다.

 

(3) 또 한 가지 이유를 본문에서 찾아본다면 7-9절 말씀을 들수가 있습니다: “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치지도 못할 것은 저희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며 영영히 못할 것임이라 저로 영존하여 썩음을 보지 않게 못하리니.” 

 

아무리 재물이 많다고 할지라도 인간을 사망에서 구속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생명의 구속은 너무나 귀합니다.  돈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썩음을 보지 않고 영원히 천국에서 살 수 있는 것은 결코 많은 재물로 될 수가 없습니다.  영국 엘리사벳(Elizabeth) 여왕이 임종 시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로 하여금 일촌의 광음을 더 살게 해 주는 자가 있으면 백만금을 주겠다”(박윤선).

 

우리는 이러한 멸망하는 짐승 같은 사람을 질시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시편 기자 아삽은 시편 73편22-23절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하니 주의 앞에 짐승이오나 내가 항상 주와 함께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아삽은 악인의 형통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었는데(3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 악인의 결국을 깨닫게 된 후(17절) 자기 자신의 우매 무지함과 주님 앞에서 짐승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22절).  그러나 그는 주님과 항상 함께 있었으므로 주님께서 그의 오른손을 붙잡아 주시사(23절) 거의 미끄러질 뻔 하였지만 미끄러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결코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악인은 멸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구속받는 정직한 자

 

짐승 같은 사람은 멸망하지만 구속받는 정직한 자는 하나님께서 영접하십니다.  오늘 본문 시편 49편 1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구속하시리로다(셀라).”  여기서 하나님께서 구속받는 정직한 자를 ‘영접한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성도의 사후에 그 영혼을 그의 나라로 데려가심을 가리킵니다(박윤선).  멸망하는 짐승 같은 자들은 이 세상에서의 삶과 재물에만 소망을 두지만 우리 성도들은 장차오는 세상인 저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1) 그러므로 우리는 첫째로 짐승 같은 자들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49편 5절을 보십시오: “죄악이 나를 따라 에우는 환난의 날에 내가 어찌 두려워하랴.”  여기서 “죄악”이란 성도의 것이 아니고 그를 박해하는 자들의 악행과 포학을 말합니다(박윤선).  시편기자는 자기를 박해하는 악인들의 악행과 포학 가운데서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악인들은 자기들이 믿는 재물이나 풍부함으로도 자기들을 죽음에서 건질 수가 없지만 성도는 하나님의 구속을 받아서 영생하였기 때문입니다(박윤선). 

(2) 우리는 옳은 길을 걸어야 합니다.  

 

우리는 의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결코 우리는 불의의 길을 걸어서는 아니 됩니다.  오늘 본문 시편 49편 14절을 보십시오: “양 같이 저희를 음부에 두기로 작정되었으니 사망이 저희 목자일 것이라 정직한 자가 아침에 저희를 다스리리니 저희 아름다움이 음부에서 소멸하여 그 거처조차 없어지려니와.”  여기서 “정직한 자”란 ‘옳은 자들’을 의미합니다.  곧, 우리 성도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멸망하는 짐승 같은 자들처럼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서 이 세상의 재물과 풍부함을 의지하면서 자긍하는 불의의 길을 걸어서는 아니 됩니다.  도리어 우리는 내세를 바라보면서 주님이 걸어가신 옳은 길을 신실하게 걸어가야 합니다.

 

(3)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죽음 후에 영원한 나라로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 시편 49편 1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구속하시리로다(셀라).”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48:14).  지금도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해 주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일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23:6)라고 고백할 수가 있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장을수 할머님을 이번 주 화요일에 양로원에 가서 뵈었을 때 더 육신적으로 약해져 계셨지만 죽음조차도 두려워하지 않으시면서 더욱더 예수님을 뵙기를 간절히 기원하시는 모습을 뵈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자신의 모든 죄를 씻겨주신 것을 최고로 감사히 여기시는 장 할머님은 의롭다하심을 받으신 하나님의 보배로운 따님으로써 저 천성을 향하여 오늘도 나아가고 계십니다.  제가 찬송가 495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 1절과 후렴인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후렴)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을 불렀을 때 함께 따라 부르셨던 장 할머님, 하나님께서 영접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장 할머님의 인생의 마지막 여정에 함께하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있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 옳은 길을 걷기를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