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시편 46]

 

 

“기대 속에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이야말로 영성 생활의 토대이다”(시몬 와일).  헨리 나우웬은 그의 책 “고독의 영성”에서 “기대의 어머니는 인내”라고 말하면서 참고 기다리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인내롭게 기다린 다는 것은 우리의 울움과 애통이 정화를 위한 준비물이 되게 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에 따라 우리는 마침내 우리에게 약속된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  인내가 우리 기대들을 자라게 할 수 있다고 우리가 믿을 때, 그때 비로소 숙명은 소명으로, 상처는 더 깊은 이해를 위한 부르심으로, 슬픔은 기쁨의 발상지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성경 욥기 23장 10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우리 삶 속에 힘들고 어렵고 두려운 환경이나 상황들은 우리를 단련시킴에 있어도 용광로와 같은 도구입니다.  그 용광로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빚어지는 우리의 모습 중에 하나는 바로 “인내”입니다.  마이클  몰리노스란 사람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고난을 통한 영혼의 정화는 인내를 낳습니다.  고난의 한 복판에서 우리는 사랑과 자비 같은 최고의 성품들을 훈련할 수 있습니다.  고난은 자아를 전멸시키고 정화시킵니다.  세상의 것을 가져다가 천상의 것으로 변화시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난 중에 내버려두실 때만큼,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는 때는 없습니다.”

 

우리는 고난 중에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기치 않는 일들이 마치 바다에 폭풍처럼 내 자신과 우리 가정과 사업, 교회에 몰아닥칠 때에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는 오늘 본문 시편 46편 말씀 중심으로 한 두 가지로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우리 각자의 삶 속에 풍랑에서도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이 있길 기원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 시편 46편 2-3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셀라).” 이것은, 세계의 기초까지 흔들리는 가장 두려운 현상을 가리킵니다(박윤선).  이렇게까지 흔들리게 하는 두려운 현상이 우리 삶에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과연 우리의 신앙의 기초까지 흔들리게 하는 가장 두려운 일들은 무엇일까요?  심리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인간은 외부에서 강력한 도전이 닥쳐 올 때 굉장한 두려움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자기보다 힘센 도전이 엄습할 때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이보다 훨씬 더 큰 두려움이 있는데, 그 두려움이란 밖으로부터 오는 도전이 아니라 자기 내부에서부터 일어나는 도전입니다.  그 도전이란 다름 아닌 외로움입니다.  혼자 된 느낌입니다.  모두로부터 끊어진 나, 이야기할 상대도 없고 하늘도 없고 땅도 없는, 내버려진 홀로의 존재입니다.  외로움, 혼자 버려진 채로 있다는 사실, 이 사실이 사람에게는 가장 두려운 일, 두려움의 최고봉이라고, 심리학자들이 말합니다(인터넷).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 홀로 되었다는 느낌…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 안에 잠재된 무의식적인 두려움은 크게 네 가지로 우리의 삶을 황폐화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인터넷): (1) 두려움은 우리의 잠재력을 마비시킵니다.  우리의 재능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묶어버리고 주저하게 만들어 결국 기회를 놓치게 합니다.  (2) 두려움은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를 파괴시킵니다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정직하게 대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거절당하기를 두려워해서 가면을 쓰고 원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가장하고 실제 감정을 부정합니다.  (3) 두려움은 우리가 누리는 행복을 방해합니다.  행복한 동시에 두려울 수는 없습니다.  (4) 두려움은 우리의 성공을 방해합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가 바라는 일이 일어날 것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두려워하는 일이 발생할 것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실패를 준비합니다.  두려움은 두려워하는 일이 생기게 합니다.

 

성경 신명기 1장 29절을 보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까?  성경 신명기 1장 30-31절은 한 두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신 싸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신명기 1장30절을 보십시오: “너희 앞서 행하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2) 하나님께서 우리를 앉으사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신명기 1장 31절을 보십시오: “광야에 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앉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시편 기자 다윗이 시편 27편에서 1-6절에서 두려운 상황 가운데서 한 3가지로 이겨 나아간 것을 우리는 이미 묵상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삶 속에서도 두려운 상황에 우리가 처할 때에 한 3가지로 적용하고자 도전했습니다:

(1) 우리는 오히려 안연(담대)해야 합니다

 

현재 우리는 우리의 두려운 상황에서 우리의 빛, 구원, 생명의 능력이신 주님을 바라보므로 말미암아 담대해야 합니다.  과거의 구원(승리)의 은총을 묵상하면서 담대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므로 미래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2) 우리는 두려운 상황에서 주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한 가지만 구하십시다. 하나님의 집에 거하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앙망하십시다.  그의 얼굴을 바라보므로 마음의 평안, 그의 보호하심, 승리의 소망을 가지십시다. 

 

(3) 우리는 두려운 상황에서 오히려 우리 하나님께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는 승리자로서 감사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바울과 실라처럼 감옥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하며 찬미를 올려 드려야 합니다.

 

마지막 둘째로, 우리는 가만히 있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 시편 46편 10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 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열방과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 기초까지 흔들리는 가장 두려운 상황을 만날지라도 오늘 시편 기자 말씀처럼 가만히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산이 흔들리고 요동할지언정 우리는 하나님 앞에 좀 잠잠히 머물러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침묵해야 합니다. 우리는 침묵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도록 우리는 마음을 분주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결국 마음의 침묵은 입의 침묵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압바 포에멘(Abba Poemen)은 다음과 같이 말을 했습니다: “한 사람이 말없이 있을 때 그가 침묵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만일 그의 마음이 다른 사람을 단죄하고 있으면 그는 끊임없이 지껄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야기 하는 또 하나의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그는 참으로 침묵하고 있다”(인터넷).

 

우리가 침묵 속에서 들어야 할 주님의 음성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시편 46편 10절 말씀에서 들려주시는 음성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알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해 주고 있는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십니까?  한 4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십니다.

 

오늘 본문 시편 46편 1절, 7절, 1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1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7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리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11절).  시편 기자는 세상이 다 요동하고 흔들리는 상황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께 피하였습니다.  왜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피하였습니까?  그 이유는 구원의 은혜를 사모하였기 때문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장막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여기서 “한 시내”란 “구원의 원천이신 하나님의 계시”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장막 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라는 말씀은 구원의 은혜가 있는 곳은 기쁨의 장소가 됩니다(박윤선).  곧, 시편 기자는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의 성소로 피한 이유는 그곳이 바로 구원의 은혜가 있는 기쁨의 장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 시편 46편 7절과 11절을 보십시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7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리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11절).  성경 신명기 1장42절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싸우지도 말라 내가 너희 중에 있지 아니하니 너희가 대적에게 패할까 하노라 하셨다 하라 하시기로."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하시면 전쟁에서 승리,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패한다는 진리입니다.  승리의 비결은 바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입니다.

 

(3) 하나님은 우리의 힘이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 시편 46편 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 우리가 이미 묵상한 시편 18편1절 말씀이 기억나지 않습니까?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박윤선 박사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물맷돌 한 개를 가지고도 골리앗을 이길 수 있게 하신 이는 과연 힘이시다.  죄의 힘이 강하나, 그것보다 강한 힘은 하나님이시다.”  골리앗과 같은 큰 문제나 어려움이 우리 앞에 놓여 있을 때에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 또는 무능력함을 느낍니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바라보며 의지하게 됩니다.

 

(4) 하나님은 우리가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십니다.

오늘 본문 시편 46편 1절과 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1절),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그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5절).  하나님께서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는 말씀의 히브리어 원어는 “환난 중에 도움으로 철저히 증험된 분이시다”라고 변역됩니다(박윤선).  우리는 역경과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참으로 하나님은 환난 중에 도우시는 하나님이심을 실지로 경험하셨습니까?  검증되신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환난 중에 도와주시는 …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신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환난이 아무리 크다고 할지라도 우리 하나님은 “큰 도움” 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은 “새벽에”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5절).  어두운 밤과 반대되는 새벽에 하나님께서 도우신다는 말씀은 구원과 기쁨을 상징하는 것으로써(박윤선) 하나님께서는 환난 중에 있는 우리를 도우시사 구원하여 주시고 구원의 기쁨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벽에 도와주신다는 말씀은 “급속히 도와주심을 의미”합니다(박윤선).  그 예로 열왕기하 19장 35절에 나와 있는 앗수르 군대가 하나님의 기적으로 인하여 파멸된 사실이, 이른 아침에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십니다.  그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그 일에 착수하기도 전에(비유컨대 이른 아침에) 그 해결된 것을 발견하게 하십니다(박윤선).

 

아비 독수리는 높은 곳에 만들어진 안전한 보금자리에서 때가 되면 새끼들을 훈련시키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독수리는 먼저 가시를 물어와 보금자리에 넣고 그 위에서 날개를 너풀거린다고 합니다.  가시에 찔린 새끼 독수리들은 자리를 어지럽히고 튀어나옵니다.  그리고 아비 독수리를 따라 날개를 펄럭 거리며 날아봅니다.  그러나 날개에 힘이 없기 때문에 여지없이 높은 곳에서 아래로 떨어집니다.  그러면 아비 독수리가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아 날개 위에 얹는다고 합니다(인터넷). 새끼 독수리가 날개에 힘이 없어 높은 곳에서 아래로 떨어질 때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그러나 아비 독수리라 날개를 펴서 자기를 받아 자신의 날개 위에 얹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오히려 안연(담대)하지 않겠습니까?  명심하십시다.  새끼 독수리는 보금자리에서 나아와 높은 곳에서 아래로 떨어질 때에야 아비 독수리의 구원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하지 마십시다.  하물며 아비 독수리가 이렇다면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어떠하시겠습니까?  그는 우리의 피난처시요, 항상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 우리의 힘, 그리고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잠잠히 머물러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알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제임스 목사 나눔

(고통 중에 지체들을 위하여 기도한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