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임하였으나

 

 

[시편 449-26]

 

 

새로운 출발의 의미를 부여하여 새로운 목표를 정한 후 그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고자 힘쓰고 있을 때 예기치 않는 어려운 일들로 힘든 가운데 있는 사람들도 우리 주위에는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쩌면 우리는 인디언들에게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인디언들은 1월을 ‘마음 깊은 곳에 머무는 달’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인디언들은 1월을 새로운 출발의 의미보다,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는 달로 여긴다고 합니다.  우리는 예기치 않은 어렵고 힘든 일 가운데서 하나님 앞에 잠잠히 머물러 있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다뉴브 강을 헤엄쳐 건너는 경기가 있다고 합니다.  이 경기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 강 중심의 소용돌이 지역인데 수많은 선수들이 바로 이 지점에서 경기를 포기한다고 합니다.  소용돌이 지점에서는 아무리 수영을 잘 하는 사람도 소용이 없다고 합니다.  몸을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빨려든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기진맥진하여 경기를 포기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노련한 선수들은 소용돌이를 잘 극복해낸다고 합니다.    그 비결은 간단합니다.  즉, 프로들은 소용돌이에 잠시 몸을 그대로 맡겨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센 물결이 사람의 몸을 한껏 빨아들였다가 수면 위로 되돌려놓는다고 합니다.  잠시 가만히 있는 것이 소용돌이를 극복하는 비결입니다.  우리는 올해도 인생의 소용돌이를 만날 것입니다. 이미 만나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께 온전히 우리 자신을 맡기십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삶의 제 자리로 옮겨놓으실 것입니다.

 

       성경 구약 다니엘서를 보면 인생의 소용돌이를 만난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나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명령에도 굴복하지 않고 금신상에 절하지 않으므로 말미암아 극력히 타는 풀무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이들은 비록 풀무에 들어갈지라도 하나님께서 능히 건져 주실 것이라는 확신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라고 담대히 느부갓네살 왕에게 말했습니다(단3:18).  이 얼마나 아름다운 신앙입니까?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온전히 자신의 생명을 다 맡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자신들의 인생의 소용돌이 가운데서도 건짐을 받았습니다.

 

       오늘 성경 시편 44편 9-26절을 보면 우리는 시편 기자 또한 다니엘의 세 친구들처럼 인생의 소용돌이를 만나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시편 기자는 다니엘의 세 친구들처럼 귀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우리는 볼 수가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임하였으나 우리가 주를 잊지 아니하며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아니 하였나이다”(시44:17).  저는 오늘 이 말씀 중심으로 우리 각자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므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임하는 인생의 소용돌이 가운데서도 주님을 잊지 않고 그분의 언약을 지키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첫째로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이 모든 일입니다

 

성경 시편 44편 17절을 보십시오: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임하였으나 우리가 주를 잊지 아니하며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아니하였나이다.” 시편 기자와 그의 민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한 모든 일이란 무엇 이였습니까?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한다면 환난”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환난의 원인은 주님께서 시편 기자와 자기 민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셨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주께서 우리를 버려 욕을 당케 하시고 …”(9절).  여기서 “버려”라는 말은 미워하여 내버림을 가리킵니다(칼빈).  즉, 시편 기자는 주님께서 자기와 이스라엘 민족을 미워하여 내어버리셨기 때문에 자기와 이스라엘 민족이 고난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사실입니까?  과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워하시는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께서는 과거 출애굽 당시에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복하는 과정에서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셨던 이유는 “주께서 저희를 기뻐하신 연고”였습니다(3절).  그 하나님께서 왜 지금 시편 기자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워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들을 거절하시고 버리시겠습니까?  이것은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 시편 기자 자신의 느낌을 적은 것뿐입니다.

 

시편 기자는 오늘 본문 시편 44편 9절서부터 현실에 당면한 개인적 고난과 민족적 환난을 탄식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는 그 환난의 원인이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워하여 내버림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버리신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식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박윤선).  과거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뻐하셔서 그의 권능으로 구원하셨었는데 어찌하여 지금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버려두시는지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시편기자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버리셨다고 생각한 이유가 한 2가지 있습니다. 

 

(1) 전쟁에서의 패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44편 10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우리를 대적에게서 돌아서게 하시니 우리를 미워하는 자가 자기를 위하여 탈취하였나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수로 더불어 싸우다가 패배하여 돌아섰고 따라서 그들은 탈취를 당하였습니다.  그 원인이 무엇 이였습니까?  9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즉, 전쟁의 승리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에 있는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시지 않으셨으니 패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 정복당한 이스라엘 민족이 받은 압박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44편 11-16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은 압박을 한 세 가지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a)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힐 양처럼 어떤 사람들은 살륙 당했다는 것(11절)(박윤선), (b)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에서 패하여 원수들의 무가치하게 포로가 되어 외국으로 이끌려간 것(11절 하반 절-12절)(박윤선), 그리고 (c) 포로생활을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수들에게 비방을 받고 능욕을 당하였다는 것. 오늘 본문 시편 44편 13-16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우리로 이웃에게 욕을 당케 하시니 둘러 있는 자가 조소하고 조롱하나이다  주께서 우리로 열방 중에 말거리가 되게 하시며 민족 중에서 머리 흔듦을 당케 하셨나이다  나의 능욕이 종일 내 앞에 있으며 수치가 내 얼굴을 덮었으니  나를 비방하고 후욕하는 소리를 인함이요 나의 원수와 보수자의 연고니이다.”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패전 국가는 승전 국가 앞에서 천대와 멸시를 받는 법입니다(박윤선).  이스라엘 백성들을 전쟁에서 패하여 포로가 되어 외국으로 끌려가서 온갖 비방과 능욕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둘째로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이 모든 일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했지만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했는가 입니다. 

 

성경 시편 44편 17절 말씀을 보면 시편 기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님을 잊지 아니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자기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님의 언약 또한 어기지 않았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귀한 신앙입니까?  온갖 비방과 능욕, 고난 가운데 있는 시편 기자와 이스라엘 백성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그들은 주님을 잊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님과 맺은 약속 (언약) 또한 어기지 않았습니다.  박윤선 박사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모든 고난이 와도 변하지 않는 신앙은 귀하다.  약한 신자들은 핍박이 올 때에 불의와 타협하고 죄를 범할지언정 고난은 면하려 한다.  그러나 충성된 자들은 그런 때에도 굳게 서서 동요치 않는다”(박윤선).

 

구체적으로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시편 기자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님을 잊지 아니하고 또한 주님의 언약을 어기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한 3가지로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1) 시편 기자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님의 진리에서 탈선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44편 18절을 보십시오: “우리 마음이 퇴축지 아니하고 우리 걸음도 주의 길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나.”  시편 기자는 자기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든 고난과 환난 가운데서도 주님의 길을 떠나지 않았던 것은 그들의 마음이 주님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환난 가운데서 유복한 영적 생활을 하였습니다.  박윤선 박사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혹 평안한 환경에 처한 자들이 행복된 것 같으나, 그들의 영적 생활은 해이해지는 법이다”(박윤선).  그러나 시편 기자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난 가운데서 오히려 풍요로운 영적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순결이 얼마나 경건한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신앙 절개가 깨끗하였음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버렸거나 우리 손을 이방 신에게 향하여 폈다면  하나님이 이를 더듬어 내지 아니하셨으리이까 대저 주는 마음의 비밀을 아시나이다”(20-21절).  그는 마음속을 다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경건이 순결하였다고 고백하였습니다. 

 

(2) 시편 기자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44편22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시편 기자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님을 위하여’ 애매하게 핍박 자들의 수중에서 고난당하고 있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렸다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겨서 주님의 진리에서 탈선했을 것이고 또한 주님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지도 않고 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을 위하여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도 빌립보서 3장10절을 보면 ‘주님의 고난에 참예함’을 알고자 예수님의 죽으심을 본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1:29).  오늘 본문 시편 44편의 시편 기자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고난이 자기들에게 임하였지만 주님을 잊지 않고 오히려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였습니다.

 

(3) 시편 기자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님을 잊지 않고 주님께 간구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44편 23-24절을 보십시오: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영히 버리지 마소서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고 우리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  이 기도 내용을 보면 꼭 주님이 주무시는 것 같은 느낌과 더불어 시편 기자가 하나님께 불평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이 기도는 고난 중에서 인내하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시편 기자는 이 모든 고난 중에서도 주님을 잊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어떻게 주님께서 자기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난과 압제를 잊으셨는지, 잊지 말아 달라고 간절히 간구하였습니다.  그는 자기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면한 고난 상태를 “우리 영혼은 진토에 구푸리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25절)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그는 하나님께 이렇게 간구하였습니다: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우리를 구속하소서”(26절).

 

우리 주위에 예기치 않는 인생의 소용돌이에서 고생하며 힘들어 하는 형제, 자매들이 있습니다. 바라기는 그들이 오늘 주시는 말씀처럼 우리에게 이 모든 고난과 역경이 임하였을 찌라도 시편 기자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주님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의 언약을 어겨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진리(말씀)에서 탈선해서는 아니 될 것이며 오히려 우리는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주님의 인자하심을 의지하여 그의 구원을 간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으시사 온갖 고난과 능욕을 당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면서,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인생의 소용돌이에서 주님의 십자가의 고통을 묵상하는 지체들을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