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시편 4011-17]

 

 

1975년 63세를 일기로 아름다운 낙엽이 되어 세상을 떠난 독실한 기독교 신자 시인 김현승 선생의 시 중에 <가을의 기도>가 있는데 그 마지막 부분을 소개합니다: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이 시 부분에 대하여 이재철 목사님은 “자신의 생이 낙엽처럼 떨어져 내리는 순간 자신이 철저하게 단독자임을 깨닫는 자만이 절대자이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말하였습니다(인터넷).  물론 가을이 지나 겨울을 맞이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 시인의 시와 그 시에 대한 이재철 목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나 자신이 (또한 우리가) 세상과 철저하게 절연된 존재임을 재확인 할 필요가 있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철저하게 단독자로 절대자이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간구해야 합니다.

 

오늘 성경 시편 40편 11-17절을 보면 우리는 절대자이신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엎드려 간구하는 시편 기자 다윗의 모습을 봅니다.  그의 간구 내용 중에 특히 13절 하반 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저는 이 제목 아래 다윗은 과연 어떠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라고 간구하였는지 한 3가지로 묵상하면서 주시는 은혜를 받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다윗은 하나님께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라고 기도한 상황은 절망될 지경 이였습니다.

성경 시편 40편 12절을 보십시오: “무수한 재앙이 나를 둘러싸고 나의 죄악이 내게 미치므로 우러러 볼 수도 없으며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으므로 내 마음이 사라졌음이니 이다.”  여기서 “내 마음이 사라졌음이니 이다”라는 말씀은 다윗이 절망될 지경에 쳐해 있음을 말씀해 가리켜 줍니다.  왜 다윗은 절망될 지경에 쳐했었습니까?  그 첫째 이유는 다윗을 둘러 싼 “무수한 재앙” 때문이었고 또 다른 이유는 무수한 죄악 때문 이였습니다.  다윗은 “무수한 재앙”, 즉 수많은 악인들이 자기를 둘러싸여서 환난과 고통 중에서 자기의 수많은 죄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수많은 죄를 다윗은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다고 고백하였습니다(12절).  흥미롭습니다.  다윗은 많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그의 많은 죄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무수한 재앙 가운데서 “여호와여 주의 긍휼을 내게 그치지 마시고 주의 인자와 진리로 나를 항상 보호하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11절).  그치지 아니하는 무수한 재앙 가운데서도 자기의 무수한 죄를 깨달은 다윗은 하나님께 “여호와여 주의 긍휼을 내게 그치지 마시고”라고 간구하였습니다. 그는 자기가 구원 받을 만한 아무 공로가 없음을 알고 하나님의 인자와 진리를 바라본 것입니다.  그는 성도를 돌아보시는 하나님의 불변의 덕, 곧 진실하심을 의지하였습니다(박윤선). 

 

우리는 좀 철저히 절망을 경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절망 가운데서 우리는 우리의 무수한 죄악을 깨닫는 축복을 누리며 더 나아가서는 우리의 공로가 하나도 없음을 철저히 깨닫기 때문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오직 예수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마음이 사라질 정도로 절망될 지경에서 우리는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여호와여 은총을 베푸사 나를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13절).  그러한 가운데 우리는 우리 마음에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게 됩니다.  어떠한 희망입니까?  바로 구원의 희망입니다.

 

둘째로, 다윗은 하나님께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라고 기도한 상황은 해를 당할 지경 이였습니다.

 

성경 시편 40편 14절을 보십시오: “나의 영혼을 찾아 멸하려 하는 자로 다 수치와 낭패를 당케 하시며 나의 해를 기뻐하는 자로다 물러가 욕을 당케 하소서.” 이 세상에서는 우리가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또한 우리가 잘 못되길 은근히 바라는 사람들도 없지 않아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다윗의 해(hurt)을 기뻐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다윗의 영혼을 찾아 멸하려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무수한 재앙으로 다윗을 둘러싸서(12절) 다윗으로 하여금 “수치와 낭패를 당케”하려고 하였습니다(14절).  이들은 다윗을 향하여 “하하 하는 자”들이었습니다(15절).  그 때에 다윗이 하나님께 올렸던 기도는 ‘자기를 해하려는 자들로 하여금 다 수치와 낭패를 당케 하시고 다 물러가 욕을 당케 하소서’라고 였습니다(14절).  다윗은 그를 멸하려는 자들, 자기를 향하여 하하 하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수치를 인하여 놀라게” 해주시길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15절).  흥미로운 대조는 다윗의 원수들은 다윗의 영혼을 찾았지만(14절) 다윗은 주님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찾는 자는 “다 주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시길 다윗은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16절).  다윗은 원수들이 자기의 영혼을 찾아 멸하려고 했을 때에 주님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님을 찾는 자들은 다 주님으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시길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다윗과 같은 상황에서 그가 기뻐하고 즐거워할 이유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무수한 재앙”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고 그 재앙들로 하여금 우리 죄악이 얼마나 많은지를 진정으로 깨닫게 되었다면 그 상황에서 우리에게 어떠한 즐거움과 기쁨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영혼을 찾아 멸하려는 자들, 우리를 향하여 “하하”하면 놀려대며 우리로 하여금 수치와 낭패를 당케 하려는 자들이 우리 주위에 있을 때에 우리가 무엇으로 혹은 누구로 인하여 기쁨과 즐거움을 삼을 수가 있겠습니까?  오직 주님 밖에 없습니다.  주님만이 환난 날에 우리의 기쁨이 되시며 우리의 즐거움이 되십니다. 그러면 왜 주님만이 환난 날에 우리의 기쁨이 되시며 우리의 즐거움이 되십니까?  그 이유는 주님만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어서 우리에게 그 구원의 즐거움과 기쁨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주님을 찾는 자’를 가리켜 또한 ‘주님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는 항상 말하기를 여호와는 광대하시다 하게 하소서”(16절).  여기서 “여호와는 광대하시다”라는 말씀은 우리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을  후대하여 구원하심을 의미합니다(박윤선).  무수한 재앙들 가운데서, 우리 영혼을 찾아 멸하려는 환난 가운데서 오히려 우리의 기쁨이요 즐거움이 되시는 주님의 구원을 사랑하므로 그 주님을 찾는 자는 하나님께서 후대하여 구원해 주십니다. 그 구원의 하나님께 다윗은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라고 간구하였습니다(13절).

 

우리는 우리를 해하려고 찾는 자들로 말미암아 고통을 당할 때에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주님의 구원을 사모하며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우리를 찾으시는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구원의 즐거움과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마지막 셋째로, 다윗은 하나님께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라고 기도한 상황은 가난하고 궁핍할 때였습니다.

 

성경 시편 40편 17절을 보십시오: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건지시는 자시라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  다윗은 “무수한 재앙”(12절)과 무수한 자기의 죄(12절), 그리고 자기의 영혼을 찾아 멸하려는 자들(14절)과 자기의 해를 기뻐하는 자들(14절)로 말미암아 고통 중에 있었고 또한 궁핍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때에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을 찾았던 다윗은 주님께서 자기를 생각해 주실 줄 믿었습니다.  이러한 믿음 또한 확신의 근거는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아는 지식과 그 지식을 삶 속에서 경험한 결과입니다.  다시 말하면, 다윗은 하나님이 자기의 “도움”이시며 “건시지는 자”를 알았고 또한 그 하나님을 그의 과거의 삶 속에서도 경험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건지심을 신앙의 여정에서 수 없이 많이 경험하였던 다윗은 현재 시편 40편을 쓰면서도 그 하나님께서 자기를 도와 건져주실 줄을 믿고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17절)하면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13절) 간구하였습니다.

 

우리는 고통 중에 있을 때 또한 궁핍한 가운데 있을 때에 우리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나의 도움”이시요 또한 나를 “건지시는 자”이십니다(17절).  이 하나님을 묵상하는 가운데 우리 과거의 삶 속에 그 하나님을 경험한 것을 되새기면서 그의 도우심과 건지심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고통과 궁핍한 가운데서도 우리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고 건져주실 것을 믿고 확신해야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 하지 마”시고 “속히 나를 도우소서”하고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절망 가운데서 절대자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 엎드려 간구해야 합니다.  그 때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절망을 구원의 희망으로 바꾸실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해를 당할 지경에 놓일 때 다윗처럼 하나님을 찾으므로 말미암아 구원의 즐거움과 기쁨을 맛봐야 합니다. 우리가 고통 중에 있을 때 또한 궁핍할 때 하나님께 간구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도우심과 건져주심을 경험해야 합니다.  구원의 희망과 구원의 기쁨, 그리고 구원의 확신을 절망과 해를 당하는 지경에서 그리고 고난과 궁핍한 가운데서 받는 축복이 우리의 기도의 삶 가운데 있길 기원합니다.

 

  

 

절망과 아픔과 고통과 궁핍한 가운데 있는 사랑하는 지체 분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도움을 청한 후,

 

 

제임스 김 목사 나눔

(구원의 희망과 구원의 기쁨과 구원의 확신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