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9편: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시편 39편]
“제임스 김씨에 삼가 애도를 표합니다”라는 글을 동역자 목사님께서 제 싸이월드 홈피 방명록에다가 적어 놓았습니다. 그 이유는 제 이름도 제임스 김이고 또 사망한 사람도 제임스 김이였기 때문입니다. “폭설 속에서 제임스 김씨, 숨진 채 발견”이라는 기사 제목을 동역자 목사님을 통하여 읽게 되면서 참으로 안타까왔습니다. 가족과 여행하다가 길을 잘못 찾아들면서 폭설에 묻혀 실종했던 한인 제임스 김씨가 사고발생 12일 만에 끝내 시신으로 발견된 것입니다. 그의 아내와 두 자녀(4살과 7개월)를 살리려고 구조 요청하러 자기 가정 식구들을 차 안에 두고 떠났던 남편이자 아버지인 제임스 김씨의 사망 소식은 세계의 많은 사람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저는 이 소식을 접한 후 제 자신의 사망소식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제 자신의 종말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과연 제 자신의 종말을 알고 얼마나 더 살 수 있는지를 안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남은 인생을 살아드릴 것인가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시편 39편 4절 말씀을 보면 다윗은 고통 중에 있었습니다. 그의 고통의 원인을 오늘 본문에서 한 2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첫째 고통의 원인은 “악인” 또는 “우매한 자”(1, 8절)였고 (2) 둘째 고통의 원인은 ‘질병’ 때문 이였습니다(10, 11, 13절). 이러한 고통 중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라고 간구하였습니다(4절). 즉, 다윗은 고통 중에서 자기 자신의 종말과 남은 기간(“연한”)을 알므로 자기 자신의 연약함을 알기를 기원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악인과 질병 때문에 고통 중에 있을 때에 자기 생명의 연한이 짧은 것을 실감하게 해 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박윤선). 얼마나 인생이 덧없이 신속하게 흘러가는지를 다윗은 고통 중에서 실감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시편39편4절 말씀 중심으로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라는 제목 아래 고통 중에 있는 성도들은 인생이 덧없이 신속하게 흘러간다는 사실, 즉 우리 각자의 생명의 연한(기간)이 짧은 것을 실감하는 가운데 과연 우리는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드려야 할 것인지 한 3가지로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고통 중에서 인생이 덧없이 신속하게 흘러간다는 사실, 즉 우리 각자의 생명의 연한(기간)이 짧은 것을 실감하는 가운데 우리는 언행을 조심해야 합니다.
성경 시편 39편 1절을 보십시오: “내가 말하기를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죄를 범치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자갈을 먹이리라 하였도다.” 우리 사람은 나중에서 ‘내 왜가 이렇게 행동했지, 왜 이런 말을 했지’ 하면서 후회할 때가 많습니다. 즉, 주어 담을 수 없는 이미 우리 입으로 쏟아낸 말은 아무리 나중에 후회해 보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행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조급하게 행하므로 일을 더 크게 만들고 나서는 후회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한 번도 생각하고 말하고 한 번도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기도록 힘써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언행에 있어서 신중해야 합니다. 인터넷을 살펴보다 보니까 “전도인의 자세”라는 기사 제목 아래 이런 글이 실려 있는 것을 읽게 되었습니다: “전도인은 전도 현장에 개인 자격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대표'하고 '주님을 대신'하여 전도하는 것이므로 대리자(代理者)로서의 책임감을 갖고 전도하여야 한다. … 전도인은 교회와 주님을 대표한 대사(大使)로서 불신자를 만난다는 사명감을 갖고 태도와 언행이 신중하고 칭찬 받을 만하여야 한다”(인터넷). 우리는 이 기사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전도자로서 태도와 언행이 신중하고 칭찬 받을 만하여야 합니다. 그럼 왜 다윗은 고통 중에서 언행을 조심했습니까? 그 이유는 다윗은 “견디기 어려운 역경에서 하나님을 원망하는 죄를 범치 않으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박윤선). 성경 시편 38편12-22절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는 좀 귀머거리와 벙어리가 될 필요가 있다는 교훈을 받았습니다(13절). 즉, 악인들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고 있을 때에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그들에게 이런저런 말로 변호 같은 것 하기보다 하나님께 귀를 열어 그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께 입을 열어 간구하자는 도전을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다윗은 악인들 앞에서 침묵하였습니다. 왜 그는 악인들 앞에서 침묵하였습니까? 그 이유는 입술로 하나님께 죄를 범치 않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고통 중에 있으면서 입술로 하나님을 원망하는 죄를 범치 않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 얼마나 지혜로운 처사입니까. 고통 중에서 마음의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나 불평이 있을 때에 우리는 좀 침묵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주님의 몸 된 교회와 지도자를 향한 불평과 원망이 있을 때에도 우리는 좀 침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의 신중하지 못한 언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범죄 할 확률이 많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우리 인간의 입은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말하고 있지 않으면 입이 근질근질하는 것 같고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경향도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혀에 대해서 야고보서 3장 8-1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혀 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 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그래서 다윗은 오늘 본문 시편 39편 1절 하반절 말씀을 보면 “내 입에 재갈을 먹이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징벌을 받으면서(8, 9절) 또한 악인들의 비방을 들으면서도 침묵한 이유는, “그가 비록 그 악인들의 조롱을 받으나, 어느 정도 그가 받아 마땅한 줄로” 알았기 때문입니다(박윤선). 지금 다윗은 물론 악인들 때문에도 고통을 당하고 있었지만 그 보다 자기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징벌로 받은 질병으로 인해 고통 중에 있었습니다(박윤선). 그러므로 다윗은 자기가 범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징벌임을 알았기에 입을 열어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는 죄를 범하지 않고자 하나님 앞에서 침묵하였던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알고 고통 중에 있을 때에 우리의 언행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함부로 행동하지 말고 함부로 입을 열어 하나님과 사람들을 원망하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좀 더 신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덧없이 신속하게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아가야 합니다.
둘째로, 고통 중에서 인생이 덧없이 신속하게 흘러간다는 사실, 즉 우리 각자의 생명의 연한(기간)이 짧은 것을 실감하는 가운데 우리는 묵상해야 합니다.
성경 시편 39편 3절을 보십시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묵상할 때에 화가 발하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 우리는 세월이 신속히 흘러가는 것을 실감한다면 좀 더 분주한 생활 가운데서 좀 멈추고 묵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빨리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덩달아 ‘빨리 빨리’ 살아가서는 아니 됩니다. 좀 세상 사람들 보이게 느린 것 같다는 말을 들을지라도 우리는 좀 멈추어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번 주 저희 교회가 후원하고 있는 한 중앙아시아 선교사님의 선교 편지를 읽어 보니까 이러한 기도 제목이 있었습니다: 아내와 자녀들과 하나님께서 만나게 해주시는 사람들을 감속하여(slow down) 사랑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이러한 기도 제목을 부탁한 계기는 그 선교사님이 읽고 있는 John Ortberg란 저자의 책에 적혀 있는 이 글에 도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서두름이란 병의 제일 심각한 사인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감소입니다. … 사랑과 서두름은 근본적으로 모순됩니다. 사랑은 항상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나 서두르는 사람에게는 시간이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빨리 흘러가는 이 세상의 흐름 속에서 좀 스피드를 늦출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좀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걸어가야 합니다. 유수같이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우리는 좀 서두르지 말고 멈추어 서서 하나님 앞에서 인생을 좀 뒤돌아보면서 묵상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다윗은 고통 중에서 언행을 조심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인생을 묵상하였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그는 묵상의 결론을 4 가지로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1) 첫째 묵상 결론은, 인생은 짧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다윗은 오늘 본문 5절 상반 절에서 시적으로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 사람이 보기에는 인생이 “손 넓이만큼” 같고 하나님 보시기에는 우리의 일생이 “없는 것 같”다는 이 표현은 우리 인간의 일생이 짧다는 사실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박윤선).
(2) 둘째 묵상 결론은, 인생은 무상(nothing)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잠간 왔다가 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39편 5절 하반절 보십시오: “…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뿐이니 이다.” 여기서 “허사”라는 단어는 히브리 원어 의미는 “입김”입니다(박윤선). 오늘 본문 11절에서도 다윗은 “각 사람은 허사 뿐이니이다”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사도 야고보는 야고보서 4장14절에서 이러한 결론을 내립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다윗은 우리 인생을 그림자 같이 다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시39:6).
(3) 셋째 묵상 결론은, 사람은 헛된 일에 분주하게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39편 6절 하반 절을 보십시오: “…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야고보서를 보면 그 편지의 수신자들 중에서도 이러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약4:13).
(4) 마지막 넷째로 다윗의 묵상 결론은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39편 7절을 보십시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고통 중에서 잠잠히 묵상하던 다윗은 인생의 헛됨을 깊이 깨닫고 탄식하다가 결국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모습을 우리는 봅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묵상하는 가운데 이 세상의 헛되고 헛됨을 깊이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이 짧은 인생, 잠깐 이 세상에 왔다 가는 우리 인생들은 헛된 일에 분주하게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 우리 인생의 헛됨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다윗처럼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고 진심으로 고백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 셋째로, 고통 중에서 인생이 덧없이 신속하게 흘러간다는 사실, 즉 우리 각자의 생명의 연한(기간)이 짧은 것을 실감하는 가운데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 시편 39편 1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나의 모든 열조 같으니이다.” 다윗은 자기의 죄로 말미암아 고통 중에 있었음을 알았기에 악인들로 말미암은 고통이던 질병으로 인하 고통이던 그는 겸허히 그 고통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언행을 조심하여 하나님께 더 큰 죄를 범하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고통 중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 범죄 한 우리 자신의 죄를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왜 이러한 고통을 우리가 당하고 있는지 생각할 때에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께 불평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기의 “입에 재갈을 먹이리라”(1절)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입을 열지 않고 침묵하고 있었을 때 근심이 더 심했습니다(2절). 왜 다윗의 근심은 더 심하였습니까? 왜 침묵하였을 때 그는 더 마음이 괴로웠습니까? 그 이유는 고통스러운 억울한 심정(“근심”)을 하나님께 아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박윤선).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도 입을 열어 기도하지도 않으면 더 고통스럽기에 다윗은 마음이 괴로웠던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드는 생각은 다윗이 침묵하고 있었을 때 마음이 괴로웠던 이유는 자기의 억울한 심정을 하나님께 간구하지 못하여 자기의 마음이 그의 속에서 뜨거워졌을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이유는 아마도 자기의 죄를 하나님께 토설하지 않으므로 마음이 다윗의 속에서 뜨거워졌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오늘 본문 시편 39편 8-9절 말씀을 보십시오: “나를 모든 죄과에서 건지시며 우매한 자에게 욕을 보지 않게 하소서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하옴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연고니이다.” 여기서 다윗은 자기 고생의 원인이 전적으로 자기 죄 값인 줄 알고, 하나님 앞에 사죄 받는 것이 문제 해결의 열쇠임을 확신하였습니다(박윤선). 그래서 그는 자기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13절). 죄 용서 기도를 드렸던 다윗은 더 이상 하나님께 잠잠하지 않고 자기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간구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자기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말아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대저 나는 주께 객이 되고 거류자가 됨이 나의 모든 열조 같으니이다”(12절).
세월은 흘러가는 물처럼 쉬지 않고 빨리 흘러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그리 길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에서는 우리의 인생이 짧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잠시 왔다가 떠나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헛된 일에 분주해서는 아니 됩니다. 오직 소망을 주님께 두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힘써야 합니다. 오늘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고통 중에 있을 때에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는 말씀과 묵상해야 한다는 말씀 그리고 기도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셨습니다. 참으로 연약한 인생임을 알고 인정하는 가운데 주님께서 부르시는 그 날, 그 순간까지 우리는 언행 조심, 묵상 그리고 기도의 삶을 살아드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기원합니다: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4절).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나아가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제임스 김”씨의 사망 소식을 나의 사망 소식이라고 생각해 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