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우리의 길을 견고케 하시는 하나님

 

 

[시편 3723-40]

 

 

여러분은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가 있습니까? 이 감사 계절에 감사 편지를 쓰면서 접한 소식입니다.  제가 신학교에서 함께 공부했었던 목사님의 사모님이 위암 말기라는 소식을 접해 들었습니다.  저는 함께 아파하고자, 그리고 아픈 마음으로 기도하고자 의도적으로 천국에 이미 간 저의 첫째 아기 주영이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주영이도 감사의 달인 11월에 문제가 있는 것을 병원에서 발견하여서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감사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은데 지금 이 김 목사님 부부도 어떻게 감사의 달에 이러한 어려운 상황을 접하게 되었는지 조금 그 아픔을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듣기로는 김 목사님이 섬기는 교회가 이번 주일 각자가 감사의 제목을 가지고 와서 간증을 하는 것 같은데 김 목사님은 월요일 병원에 가시면서 적어도 하나님께서 수술케 하시겠지라고 감사 제목을 생각했었다고 합니다.  근데 지금은 목사님은 장례 준비도 생각하시면서 오늘부터 금식기도 들어가셨다고 합니다.

 

이럴 때에 우리가 자주 생각하고 나누는 성경구절 중 하나는 성경 욥기 23장10절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주로 하반절인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를 많이 묵상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거의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라는 말씀은 깊이 묵상한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전지하신 하나님이 우리 각자의 가는 길을 아신다는 말씀을 묵상할 때에 오늘 성경 시편 37편 23절에서도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이미 정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미 정하신 그 길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신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23절).  우리의 가는 길을 아시는 하나님, 우리의 걸음(길)을 미리 정하시고 그 길을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견고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길을 견고케 하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걷는 그 길을 기뻐하십니다.  저는 오늘 본문 시편 37편 23-40절 말씀 중심으로 우리의 길을 견고케 하시는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신지 한 3가지로 묵상하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의 길을 견고케 하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넘어질 때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 시편 37편 24절을 보십시오: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여기서 “저는 넘어지나”라는 말씀은 다윗이나 우리나 참으로 넘어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들임을 가르쳐 줍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 우리는 넘어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한 3가지 연관된 이유를 찾아봅니다: 

 

(1) 첫째 이유는, 사탄은 우리의 연약함을 알고 엿보아 쓰러트리고자 공격하기 때문에 우리는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악인이 의인을 엿보아 살해할 기회를 찾으나”(32절).  언젠가 동물의 왕국에서 사자가 먹이를 보고 잡아먹으려고 자세를 낮추고 먹이를 향하여 아주 조용히 살금살금 가다가 어느 순간에 확 일어나서 달려가 먹이를 잡아먹는 것을 본 기억이 납니다.  사탄도 그리하는 것 같습니다.  우는 사자처럼 믿는 자를 어떻게 해서든 잡아먹으려고 엿보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를 “살해할 기회”를 찾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 차리고 근신하여 깨어 있지 않으면 우리의 연약함 가운데서 “틈”만 보여주면 사탄은 우리를 쉴 세 없이 공격해 옵니다. 그러니 다윗이나 우리가 넘어지지 않고 베기겠습니까? 

 

(2) 두 번째 이유는, 우리를 공격하는 사탄의 종들인 악인의 세력이 크기 때문에 우리는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37편 35절을 보십시오: “내가 악인의 큰 세력을 본즉 그 본토에 선 푸른 나무의 무성함 같으나.”  여기서 다윗은 악인의 큰 세력을 “본토에 선 푸른 나무의 무성함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70인 역에서는 “레바논의 백향목”이라고 번역하였는데,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왕성한 나무를 생각게 합니다.  방대한 나무와 왕성한 가지들처럼 악인의 세력은 크다는 말입니다(박윤선). 

 

(3) 세 번째 이유는, 우리는 환난 때문에 자주 넘어집니다.

 

오늘 본문 시편 37편 39절을 보십시오: “의인의 구원은 여호와께 있으니 그는 환난 때에 저희 산성이시로다.” 결국 사탄의 종들인 악인들은 큰 세력을 가지고 우리 성도들을 엿보아 공격하여 쓰러트리려고 하기에 우리는 환난 가운데서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잠시 넘어져도 우리가 걸어가는 진로에서는 아주 떨어지지 않고 다시 일어나서 그 길을 걸어갑니다(24절).  우리는 사탄의 공격과 유혹, 그리고 악인들의 핍박으로 말미암아 잠시 넘어지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손으로 우리를 붙드시기에 우리는 다시 일어나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그 길을 걸어감에 있어서 우리 성도들의 책임은 무엇입니까?  그 책임은 바로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27절). 주위가 온통 악인들인데, 그들의 큰 세력으로 무리들이 엿보고 있다고 한꺼번에 공격하는 것 같은데 그 와중에서 우리는 둘 중의 하나 선택을 해야 합니다: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던지 선에서 떠나 악을 행하던지.  우리가 선에서 떠나 악을 행하면 처음에 양심에 찔림도 있고 마음에 죄책감도 들고 하지만 악을 조금씩 행하다보면 그런 것이 다 없어지기에 세상 적으로 보기에는 평안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소유가 풍부해 질수도 있습니다(16절).  그러나 이것도 잠시 뿐, 우리가 악인과 타협하여 선을 버리고 악을 행하면 우리는 멸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그 축복은 우리의 자손이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26절). 오늘 본문 시편 37편 25-26절 말씀은 다윗의 경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경험이란 다름 아닌 다윗이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함(25절)과 의인은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26절).  그러기에 그 의인의 자손은 분명히 복을 받는다는 것이 다윗의 확신 이였습니다.  박윤선 박사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장래 자기 자손의 생계를 위하여 많이 염려한다.  그것은 헛된 염려이다.  그들은 그런 염려를 하지 말고 의롭게 살기를 힘쓸 뿐이다.  곧, 물질 관계에 있어서 그들은 의로운 사람이 되기를 힘써야 된다.”

 

       둘째로, 우리의 길을 견고케 하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환난 때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 시편 37편 28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공의를 사랑하시고 그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저희는 영영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는 성도는 어떠한 자입니까?  바로 공의를 사랑하는 자와 신실한 자입니다(28절).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공의를 사랑하시기에 공의를 사랑하여 행하는 자를 보호해 주시길 기뻐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신실한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은 공의를 신실하게 행하는 성도를 보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공의를 신실하게 행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법이 우리 마음에 있어야 합니다(31절). 이것이 바로 공의를 신실하게 행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의 입은 지혜와 공의를 말할 수 있습니다(30절).

 

그러면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공의를 신실하게 행할 때에 우리를 어떻게 보호하십니까? 

 

(1) 하나님은 우리의 걸음을 실족치 않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 시편 37편 31절 하반 절을 보십시오: “… 그 걸음에는 실족함이 없으리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발로 하여금 미끄러지지 않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견고히 서서 가던 길을 계속 갈 수가 있습니다. 

 

(2) 하나님은 우리를 악인들의 손에 버려두지 아니하십니다

 

오늘 본문 시편 37편 3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는 저를 그 손에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재판 때에도 정죄치 아니하시리로다.”  악인들은 의인을 죽이려고 재판까지 끌고 갈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악인들로 하여금 의인을 정죄하도록 보고만 계시지 않으십니다. 아무리 악인의 손이 힘이 있고 세력이 클지라도 하나님께의 손을 전능하시기에 악인들의 손에 그냥 버려두시지 않으십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우리의 길을 견고케 하시는 하나님은 결국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 시편 37편 37절을 보십시오: “완전한 사람을 살피고 정직한 자를 볼지어다 화평한 자의 결국은 평안이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떻게 평안을 주십니까? 

 

(1) 우리를 구원해 주시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십니다(39). 

 

우리 하나님은 의인을 도와 악인에게서 건져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40절). 

 

(2) 하나님은 환난 때에 우리의 산성이 되어주시므로 우리에게 평안을 주십니다(39).

 

우리 하나님은 환난 때에 우리의 은신처가 되어주십니다.  우리가 그에게 피할 때에 그는 우리를 보호하시사 우리에게 평안을 주십니다.  우리가 환난 때에 주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지 어디서 평안을 얻겠습니까?

 

그러면 평안을 얻기 위해서 우리 성도의 책임은 무엇입니까?  한 2가지로 오늘 본문에서 교훈을 받을 수 있습니다:

 

(1) 우리는 완전한 사람그리고 정직한 사람이 되야 합니다.

 

오늘 본문 시편 37편 37절을 보십시오: “완전한 사람을 살피고 정직한 자를 볼찌어다 화평한 자의 결국은 평안이로다.” 여기서 “완전한 사람”은 “순전하여 간사하지 않”은 사람을 가리키고, “정직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가리움이 없이 바르게” 사는 사람을 가리킵니다(박윤선).  우리가 환난 때에도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기 위해서는 순전하여 간사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가리움이 없이 바르게 살아가야 합니다. 

(2)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시편 37편 40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저희를 도와 건지시되 악인에게서 건져 구원하심은 그를 의지한 연고로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보는데로 걷는 게 아니라 믿음으로 걸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걸어가는 길을 이미 다 정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인도해 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넘어질 때에 우리를 붙들어 주시사 다시 일으켜 주시어 그 길을 걷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 길을 기뻐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의 길을 이미 다 정하시고 과연 그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기뻐하셨는가 묵상해 봅니다.  어느 부모님이 주님께서 정하신 사랑하는 자식의 걸어가는 길이 만일 순교의 길이라면 기뻐하겠습니까?  주님의 종의 길을 걷는다고 해도 기뻐하지 못하는 부모님들이 있는데 예수님의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걷다가 만일 주님께서 정하신 길이 순교라면 그 순교의 길을 걸은 사랑하는 자식을 보면서 어떻게 그 길을 기뻐할 수가 있겠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러나 분명히 하나님 아버지는 독생자 예수님의 길을 정하시사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갈보리 산 십자가까지의 길을 기뻐하셨다면 과연 우리 예수님의 제자들은 마음은 어때야 하는가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의 발자취를 좇아 이미 하나님께 정하신 우리 각자의 십자가의 길을 걸을 때에 우리는 그 길을 걸으면서 기뻐해야 합니다.  비록 사탄과 세력이 큰 악인들의 유혹과 공격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환난 가운데 넘어질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능력의 손으로 우리를 붙잡아 주시사 다시 일으켜 주시사 이미 정해진 우리 각자의 십자가의 길을 걷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길을 신실하게 걷게 하시고자 환난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보호해 주시되 영영히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결국,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이 이해할 수 없고 줄 수 없는 평안을 주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더욱더 견고케 하실 것입니다.

 

 

 

주님 가신 길 십자가의 길을 본받아 나에게 주어진 나의 십자가의 길을 걸으면서 믿음으로 기뻐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제임스 목사 나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찌라도 목자 되신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기에 감사할 수 있다는 확신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