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

 

 

[시편 37]

 

 

죤 멕스웰 목사님이 쓴 “함께 승리하는 신뢰의 법칙”이란 책을 보면 존스빌 식품 회사 (Johnsonville Foods)의 소유주이자 최고경영자인 랠프 스테이어(Ralph Stayer)의 인상적인 말이 적혀 있습니다: “내가 일찍이 깨달아서 종종 되새겨 보는 사실이 있는데, 바로 대부분의 문제는 나 자신에게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성공의 가장 큰 걸림돌은 다름 아닌 바로 나 자신의 정신상태, 나의 기대라는 것을 알았다”(인터넷).  “나의 기대”가 오히려 성공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말이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누구나 자신에게 거는 기대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기대가 크면 클수록 우리는 자신에게 더 실망할 위험이 많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인정하기 싫은 자신의 무능력함을 부딪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누가 자기 자신의 무능력함을 인정하고 싶겠습니까?  우리는 좀 자신에게 철저하게 실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자신의 무능력함을 좀 철저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그리할 때 우리는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여 그에게 도움을 청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우리의 전적 무능력함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에 사로잡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능력에 이끌림을 받아 그의 능력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성경 시편 37편에 나오는 시편 기자 다윗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9절).  여기서, “여호와를 기대”한다 함은, 하나님의 도우심만이 진정한 축복인줄 알고 대망하는 신앙을 말합니다(박윤선). 하나님의 도우심만이 진정한 축복임을 알았던 다윗은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원조 보다는 하나님 자신을 만나는 것을 더 큰 축복(행복)으로 생각하였습니다(박윤선).  저는 이러한 생각을 가졌던 다윗을 묵상하면서 과연 하나님을 기대하는 자는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는지 한 네 가지로 생각하면서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불평하지 않습니다.

 

성경 시편 37편 1절과 7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1절),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7절하).  이것은, 악을 행하면서도 잘되는 듯이 보이는 자들로 인하여 성도는 마음에 불평을 품지 말라는 의미입니다(박윤선).  1절 하반절에 “투기하지 말지어다”라는 말씀도 비슷한 말씀입니다.  즉, “투기”란 남의 왕성함을 보고 불쾌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우리 성도에게 합당치 않습니다(박윤선).  불평하는 것은 나쁜 습관입니다.  죤 멕스웰의 “함께 승리하는 신뢰의 법칙”이란 책을 보면 이러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할아버지가 낮잠을 잘 때에 장난꾸러기 손자들이 썩은 치즈를 짤라다가 할아버지 코 밑에 수염같이 붙여 놓았습니다.  할아버지가 잠에서 깰 때에 냄새가 썩은 냄새가 났습니다.  그래서 혹시 부엌에서 나는가 하고 가 보았더니 진짜 썩은 냄새가 났습니다.  그래서 창문을 열고 신선한 공기를 쑥 들어 마셔보니 또 썩은 냄새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온 세상에 썩은 냄새로 진동…  그것이 아니라 코 밑에 썩은 치즈 때문이었습니다(인터넷).  이 한 예를 통하여 얻는 교훈은 마음이 썩었으면 모든 것이 썩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 예로, 우리 마음에 불평이 있으면 모든 것이 불평스럽게 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평할 꺼리 없나 찾고 다닙니다.  왜 이러한 성도에게 합당치 않은 불평과 투기를 하게 됩니까?  그 원인은 “분노”입니다.  다윗은 오늘 본문 8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그래서 성경 잠언 24장1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는 행악자의 득의함을 인하여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을 부러 워하지 말라.”  왜 다윗은 오늘 본문 시편 37편 8절에서 행악 자를 인하여 불평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왜 그는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1) 그 첫 번째 이유를 다윗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2절).  행악 자를 인하여 불평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풀”이나 “채소”가 얼른 없어지고 마는 것처럼, 악인의 번영은 수명이 길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박윤선)(참고: 사40:6-8).  (2) 그 두 번째 이유는 시편 37편 8절 하반절에 나와있습니다: “…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박윤선 박사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분노는 혈기에 속한 것인 만큼, 그것은 외계의 불공정한 사태를 귀정시키지 못하고, 도리어 자신의 심령 속에 무질서를 발생시킨다.  그것은 악을 증가시킨다.  성도는 언제나 화평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남이 잘되기를 기원할지언정 시기와 질투를 품지 않는다”(박윤선).  그러면 우리가 악인의 형통을 보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지혜자의 권면을 들어야 합니다.  (1) 항상 여호와를 경외해야 합니다: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잠23:17).  (2) 악인과 함께 있기도 원하지 말아야 합니다: “너는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기도 원하지 말지어다”(24:1).

 

둘째로,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하나님을 의뢰합니다.

 

성경 시편 37편 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우리 신자들은 육체적 번영은 얻지 못했을지라도 불평할 것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육체적 번영보다도 여호와 하나님을 의뢰함이 더 큰 축복이기 때문입니다(박윤선).  과연 우리는 육체적 번영보다 하나님을 의뢰함이 더 큰 축복인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악인의 형통은 결국 그 자신에게 저주가 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자신의 형통으로 말미암아 더욱더 자기 자신을 의지하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잘 나서 형통한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악인은 결국 자기만을 위하여 살아가므로 이웃에게 선을 행할 줄을 모릅니다.  그리고 이웃에게 선을 행할 줄을 모르는 인생은 결코 축복받은 삶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박윤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누가 진정한 선을 행할 수 있으랴.  신자가 선을 행하는 소망이 하나님의 보상에 있고, 또 선을 행하는 능력도 하나님을 의뢰함에서 받는다”(박윤선).  그러면 하나님을 기대하는 우리는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의뢰해야 합니까? 

 

(1)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뢰해야 합니다

 

즉, 우리가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여 그들을 불평하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의뢰하는 가운데 그의 “성실된 보상”을 기대해야 합니다.

 

(2) 우리는 우리 자신의 길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오늘 본문 시편 37편 5절을 보십시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여기서 “길”이란 신자의 모든 염려되는 일들과 알 수 없는 전정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맡기라”는 히브리어 원어로 “꼴”이란 말로 “굴리라”란 말입니다(박윤선).  “큰 돌을 들고 등산하기는 어려우나, 그것을 산꼭대기에서 밑으로 굴리기는 쉽고 또 유쾌하다.  근심의 짐과 죄 짐을 가지고 승천하기는 불가능하되, 내 짐을 지시기 위하여 하늘에서 땅 위에 내려오신 예수님에게 내 모든 짐을 맡기기는 쉽고 유쾌하다.  이것이 곧, 신앙으로 얻어지는 안식이다”(박윤선). 

 

우리의 길을 하나님께 맡긴 결과는 어떠합니까?  오늘 본문 6절 보십시오: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즉,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이 악인들로 말미암아 억울한 일을 당할 때에 우리가 그 억울한 일을 주님께 맡길 때에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하여 기이하게 신원하여 주시고 더 나아가서 우리를 빛 같이 높여 주십니다.

 

셋째로,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하나님을 기뻐합니다.

 

성경 시편 37편 4절을 보십시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신앙은, 하나님을 의뢰하는 신앙(3절)보다 한층 더 자라난 믿음입니다(박윤선).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자기의 뜻과 같이 여기는 생활 단계에 나아간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기도와 소원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신앙입니까? 하나님을 의뢰하는 신앙에서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기뻐하는 신앙…  하나님을 기뻐하는 신앙이란 무엇입니까? 

 

(1)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신앙입니다.

 

성경 시편 1편 2절을 보십시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2) 하나님을 찬양하는 신앙입니다.

 

성경 시편 43편 4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단에 나아가 나의 극락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3)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기뻐하시는지를 알고 있는 신앙입니다.

성경 스바냐 3장 17절을 보십시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마지막 넷째로,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립니다.

    

성경 시편 37편 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행악 자와 불의를 행하는 자들의 형통함을 보고 시기하며 질투하고 분노하게 되면 내적 마음(심령) 속의 무질서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잠잠할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주님 안에서 안식을 누릴 수 없습니다. 결국 우리는 요동하게 됩니다.  시편 기자 아삽이 그랬습니다.  성경 시편 73편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는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습니다(3절).  그래서 그는 거의 실족할 뻔하였고 그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2절).  그러하던 아삽이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17절) 악인의 결국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즉, 악인의 결국은 졸지에 파멸입니다(18-20절).  그 깨달음이 있었을 때에 아삽은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심장이 찔렀나이다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하니 주의 앞에 짐승이로나”(21-22절).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좀 잠잠히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악인의 형통과 의인의 고통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동요가 있어서는 아니 됩니다.  악인들을 부러워하고 시기, 질투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잠잠히 머물러 그의 구원과 심판을 기다려야 합니다.  분명히 우리 주님은 악인을 심판하시며 우리를 (우리의 고통에서) 구원해 주십니다.  이 주님을 믿음으로 우리는 잠잠히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오늘 성경 시편 37편 9-10절 말씀을 보십시오: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분명히 악인은 없어질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형통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형통의 시간은 잠시입니다.  또한 그들의 형통은 자신들에게 저주가 될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형통으로 말미암아 더욱더 하나님께 범죄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에게 임할 것입니다.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온유한 자”입니다(11절).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기대하는 자는 겸손한 자입니다.  겸손한 자는 악인의 형통을 보고 불평하지 않습니다.  겸손한 자는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자기의 길을 다 하나님께 맡기는 자입니다.  그리고 겸손한 자는 하나님을 기뻐하며 하나님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릴 줄 아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그는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11절).  그리고 그는 내세의 기업을 얻게 됩니다(박윤선).  더 나아가서 겸손한 자는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게 됩니다.  온윤한 자, 겸손한 자는 하나님만 소망하고 하나님으로만 만족하기에, 그의 심령은 늘 즐겁고 평화롭습니다(박윤선). 이러한 축복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길 기원합니다. 

  

 

 

하나님을 기대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나를 향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