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바람 앞에 겨와 같게 하소서!

 

 

[시편 351-8]

 

 

어제 저희 교회가 소속해 있는 노회 모임 때 강도사 인허를 받고자 하는 두 전도사님 중 한분의 설교 내용에 대해서 저를 포함하여 여러 목사님들의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 전도사님의 설교 내용 중 영적 싸움에 대하여 말씀을 하셨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그 전도사님이 인용한 성경 구절인 에베소서 6장12절 말씀이 저로 하여금 생각게 만들었습니다.  그 생각은 다름 아닌 나의 싸움(“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인가 아니면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인가 입니다. 다시 말하면, 저는 저의 싸움은 육에 대한 싸움인가 아니면 영적 싸움인가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근데 왠지 저는 영적 싸움보다는 육에 대한 싸움에 더 신경을 쓰고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제 자신이 영적으로 깨어있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김남준 목사님 “그리스도인의 삶 영적 전투”란 제목 아래 쓴 글 중에 우리 그리스도인들 중에 영적으로 야맹증에 걸린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야맹증은 다른 말로 밤소경이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캄캄한 곳에서 사물을 볼 수 없는 병입니다.  … 영적 싸움에 참전한 그리스도의 용사들 중에서도 야맹증 증세를 보이는 자가 있다는 것이 제 마음을 씁쓸하게 합니다.  우리의 대적은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입니다.  만일 우리가 어둠의 포로가 되어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는 야맹증 환자와 같이 그저 어둠 안에 갇혀, 세상 풍조와 더불어 살고 있다면 싸움의 승산은 없습니다. 적군이 누구이고, 아군이 누구인지 분별조차 할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시대를 분별하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인터넷).  얼마나 많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승산 없는 싸움을 무모하게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은 우리는 쓰러지고 자빠지며 패배의식 속에서 소극적이 되며 낙심 속에서 포기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임마누엘 되시는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우리의 영적 싸움에서 역사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성경 시편 35편 1-8절 말씀 중심으로 우리 영적 싸움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신지 한 2가지로 묵상하면서 주시는 은혜 가운데 우리의 영안이 열려서 우리 모두가 우리의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는 승리자들이 되길 기원합니다.

 

첫째로, 우리 영적 싸움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우리 대신 싸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 시편 35편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 시편 기자 다윗은 극악한 원수들로 말미암아 고난을 받는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대신 싸워 주시길 간구하였습니다(박윤선).  그럼 다윗의 원수들은 누구입니까?  오늘 본문에서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내 생명을 찾는 자”(4절), “노략하는 자”(10절), “불의한 증인”(11절), “조롱하는 자”(16절), “나의 원수”(19절), “나를 미워하는 자”(19절), “나의 해를 기뻐하는 자들”(26절).  다윗 자신이 이러한 극악한 원수들과 스스로 싸운다는 것은 무모한 짓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는 하나님께 의존하여 하나님께서 대신 자기의 원수들과 싸워주시길 간구하였습니다.  사도 바울도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고 명령하였습니다(롬12:19).  그 이유는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여 하나님께서 대신 싸워달라고 간구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두 가지로 본문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이 다윗에게 확실한 방패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35편 2절을 보십시오: “방패와 손 방패를 잡으시고 일어나 나를 도우소서.”  여기서 “방패”란 전신을 보호하기 위한 큰 방패를 가리키고 “손 방패”란 머리를 보호하기 위한 작은 방패를 가리킵니다(박윤선).  하나님께서는 무적의 장수로서 그의 사랑하는 종 다윗을 보호하심에 있어서 확실하게 방어하시고 보호하시기에 다윗은 안전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다윗처럼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여 대신 우리의 원수들과 싸워달라고 간구할 때에 우리는 안전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2) 다윗이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여 하나님께서 대신 싸워달라고 간구한 이유는 하나님은 다윗에게 확실하게 승리를 가져다주실 수 있는 공격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35편 3절을 보십시오: “창을 빼사 나를 쫓는 자의 길을 막으시고 또 내 영혼에게 나는 네 구원이라 이르소서.”  다윗은 2절에서는 방어 때 사용하는 “방패”와 “손 방패”를 다윗은 말한 후 3절에 와서는 전쟁터에서 싸울 때 쓰는 공격형 무기인 “창”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대신 싸우심에 있어서 이 공격형 무기인 창을 빼사 다윗을 쫓는 자들의 길을 막으신 것입니다.  여기서 묘사된 다윗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은 마치 완전 무장한 군사처럼 방패와 창 다 준비하고 계신 모습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하여 대신 싸우심에 있어서 확실하게 무장하고 싸우시기에 실수가 전혀 없다는 사실입니다(박윤선).  결국 하나님은 다윗을 구원하시므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다윗이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심을 고백하길 원하셨습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우리에게 확실한 방패가 되시며 또한 우리에게 확실한 승리를 가져다주시는 하나님을 의뢰하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1절)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 영적 싸움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우리 원수를 멸망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 시편 35편 8절을 보십시오: “멸망으로 졸지에 저에게 임하게 하시며 그 숨긴 그물에 스스로 잡히게 하시며 멸망 중에 떨어지게 하소서.”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면서 우리를 우리의 원수의 손에서 건져(구원해)주십니다. 그 때 우리가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를 구원하심에 있어서 우리 원수들의 멸망시키신다는 사실입니다.  즉,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푸실 때에 동시에 그는 그의 공의로우심(거룩하심)도 들어내십니다.  우리 구원, 원수 멸망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공의로우심(거룩하심)은 어떻게 우리 원수들에게 나타납니까?  한 4가지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1) 우리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우리의 원수들로 하여금 실패케 하십니다.  

 

오늘 본문 시편 35편 4절을 보십시오: “내 생명을 찾는 자로 부끄러워 수치를 당케 하시며 나를 상해하려 하는 자로 물러가 낭패케 하소서.”  이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은 우리의 원수들은 우리의 생명을 찾는 자요 또한 우리를 상해하려는 자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시고 지켜주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 원수들과 싸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명을 찾는 자들, 우리를 상해하려는 자들로 하여금 부끄러워 수치를 당케하시며 또한 물러가 낭패케 하십니다. 

(2) 우리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우리의 원수들로 하여금 바람 앞에 겨와 같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 시편 35편 5절을 보십시오: “저희로 바람 앞에 겨와 같게 하시고 여호와의 사자로 몰아내소서.”  바람 앞에 겨는 어떠합니까? 가볍기에 날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시편 1편4절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악인은 심판과 환난에 견디지 못합니다(5절)(박윤선). 

 

(3) 우리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우리 원수들로 하여금 미끄럽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 시편 35편 6절을 보십시오: “저희 길을 어둡고 미끄럽게 하시고 여호와의 사자로 저희를 따르게 하소서.”  시편73편을 보면 시편 기자 아삽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3절).  그래서 그는 실족할 뻔하였고 거의 미끄러질 뻔했습니다(2절).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야(17절) 깨달은 진리를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18절). 

 

(4) 결국 우리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우리 원수들을 멸망시키십니다.

 

오늘 본문 시편 35편 8절을 보십시오: “멸망으로 졸지에 저에게 임하게 하시며 그 숨긴 그물에 스스로 잡히게 하시며 멸망 중에 떨어지게 하소서.”  결국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원수들로 하여금 미끄러지게 하시사 졸지에 그들을 전멸시키십니다(73:19).

 

영적으로 야맹증 중세를 보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윗처럼 하나님의 전적으로 의지하여 대신 싸워주시길 간구하기보다 자신의 혈기로 혹은 자신의 감정과 힘으로 너무나 무모하게 영적 싸움에 임합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이 악인의 멸망이라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바라지 못합니다.  그 결과 그들은 어두움의 포로가 되어 승산 없는 싸움에 메달립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영안이 열려 있는 다윗과 같은 신앙인은 하나님의 전적으로 의지하기에 주님께 대신 싸워달라고 간구합니다.  방패가 되어주시사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 그들은 그분을 의지하므로 안전감을 누립니다.  우리는 이러한 신앙이이 돼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원수들을 멸망시키시므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해야 합니다. 

 

 

 

 

나의 원수들을 바람에 나는 겨와 같게 하시는 나를 대신하여 싸우시는 구원의 하나님께 기도하며 기대하며 기다리는 훈련을 받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영적 싸움에서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의 세워 나아가시는 구원의 은총에 감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