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복 있는 사람

 

 

[시편 32]

 

 

성경 예레미야 17장 7-8절을 보면 시편 1편 말씀과 유사한 점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유사한 점이란 복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려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복 있는 사람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렘17:8).  시편 1편 말씀과 예레미야 17장 7-8절 말씀을 함께 묵상해 볼 때에 이러한 결론에 도달할 수가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의지하는 자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  어느 면으로 보면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 시편 32편 1-2절을 보면 “복이 있도다”란 말씀이 두 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 다윗은 복이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오늘 본문에서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 중심으로 “복 있는 사람”은 누구인지 한 3가지로 묵상해 보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겸손히 받길 원합니다.

 

첫째로, 복 있는 사람은 사죄 받은 자입니다(1-5).

 

성경 시편 32편 1절을 보십시오: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여기서 “사함을 얻고”란 말씀은 ‘치워버린 바 되다’는 의미고 ‘가리움을 받음’이란 말씀은 ‘하나님의 눈에도 보이지 않도록 되다’는 의미입니다(박윤선).  즉,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 보시기에 죄가 다 치워버린바 된 사람이란 말입니다.  저희 집에 아이들이 셋이나 있다 보니 지저분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지난주에 장모님과 처제가 와서 집을 깨끗이 치워주셨는데 얼마나 깨끗해 졌는지 제가 보고 놀랐습니다.  그런데 하나 치워지지 않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집 밖에 있는 쓰레기통 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주 월요일 오전에 쓰레기차가 와서 쓰레기를 가지고 간 후 물로 다 깨끗이 씻고 업어놓고 좀 말렸습니다.  그랬더니 냄새도 안 나는 것 같고 그 정도면 참 깨끗해 졌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쓰레기통 냄새처럼 썩어져 가는 것들, 참으로 냄새나는 죄악들이 우리 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들어내야 하는 것도 알지만 회개치 아니한 죄들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들어내지 못하므로 고민하는 각자의 죄 문제들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울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해야 하는 것도 알면서 회개가 안 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답답해 할 때도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회개조차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안 되는 것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과연 우리는 우리의 죄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한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우리는 우리의 죄악을 하나님께 고백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죄를 죄로 거룩하신 하나님께 인정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만일 그렇지 아니할 때 우리는 다윗처럼 종일 신음 할 필요가 있습니다(3절). 죄를 고백하지 아니했을 때에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다윗은 종일 신음하므로 뼈까지 쇠하였겠습니까?  우리는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박윤선 박사님의 회개하지 않은 죄에 대해서 이러한 말하였습니다: “죄는 이렇게 독한 것이다.  그것을 우리의 속에 가두어 두면, 그것은, 거기서 우리 속에 생명을 소멸시킨다.” 

(2) 우리는 나를 누르시는 주님의 손을 사모해야 합니다. 

 

오늘 성경 시편 32편 4절을 보십시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셀라).”  여기서 ‘누른다’는 말의 히브리어 직역은 ‘무겁다’는 뜻입니다(박윤선).  이것은 우리가 죄를 고백하고 있지 아니할 때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하심을 말합니다.  우리는 죄를 범한 후 마음이 무거울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제 자신을 볼 때에 너무나 죄를 가볍게 여기다 보니 마음에 무거움도 별로 없고 심리적 고통도 덜한 것 같습니다. 이러한 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도 다윗처럼 죄를 고백하지 아니할 때 저는 주님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는 은혜를 사모할 필요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결국 다윗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지 않고 있다가 주님의 손이 그를 눌렀을 때 자기의 죄를 더 이상 숨기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셀라)”(5절).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죄를 결국은 들춰내셔서 자복하며 회개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보게 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입니까? 

 

그러면 죄를 자복함이란 무엇입니까?  한 2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박윤선):

 

(1)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비행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 앞에 체면이나 세우려고 사람의 눈가림이니 하는 정도의 것이 아닙니다.  죄인이 그만큼 자기 죄를 진실히 인정할 때, 하나님께서 그 태도를 기뻐하십니다. 

 

(2) 그 자복 행위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실패케 하지 않으시며 헛되지 않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죄를 거룩하신 하나님께 자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에 간사가 없어야 합니다(2절). 마음에 간사가 없는 자는 죄를 가리우지 않고 회개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정죄를 당치 않는 자입니다.  즉, 죄를 죄로 간주되지 않음을 받는 자입니다(박윤선).  그리고 죄를 죄로 간주되지 않는 사죄함을 받은 자는 복 있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행복한 자입니다(롬4:6).  

 

둘째로, 복 있는 사람은 경건한 자입니다(32:6-9).

성경 시편 32편 6절을 보십시오: “이로 인하여 무릇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 할지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복 있는 사람은 경건한 자입니다. 경건한 자는 누구입니까?  경건한 자는 죄를 한 번도 짖지 않는 사람을 가리키나요?  그것은 아닙니다.  경건한 자란 자기의 죄를 하나님께 자복하므로 사죄함을 받는 자입니다.  좀 더 신학적으로 말한다면, 경건한 자는 하나님께서 의롭다 칭함을 받은 자, 곧 “의인”을 가리킵니다.  이 경건한 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기도의 기회를 포착하여 주님께 기도합니다(6절).  주님을 만날 기도의 기회란 다윗에게 있어서는 회개치 아니하고 있을 때를 가리킵니다(3-4절).  즉, 회개치 아니하고 있는 그에게 주님의 손이 그를 누르고 있었을 때가 바로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도 다윗처럼 우리의 죄를 자복하며 하나님께 회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다윗이 자기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했을 때 어떠한 결과가 있었습니까?  다시 말하면, 다윗의 기도의 응답은 무엇이었습니까? 

(1) 첫째 기도 응답은 죄 사함을 받은 것입니다(1-2). 

(2) 둘째로, 다윗이 받은 기도 응답은 환난 중에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6절하).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환난 중에도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박윤선). 

 

(3) 셋째로, 다윗은 기도응답으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았습니다(7).

 

더 이상 다윗은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라(4절) 이젠 하나님께서 그의 은신처가 되셔서 환난 날에 도움을 받을 것이기에 하나님께 찬양할 것을 확신하였습니다(7절, 박윤선).  그러므로 우리도 다윗처럼 주님을 만날 기회를 타서 주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죄를 토설치 아니하므로 주님의 손이 나를 누르실 바로 그 때가 주님을 만날 기회입니다.  이때에 우리는 주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께 기도 응답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죄를 사함 받고 우리가 처한 환난 가운데서도 구원을 받으므로 은신처가 되시는 주님의 보호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입니다(10-11).

 

성경 시편 32편 10절을 보십시오: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 즉, 회개치 아니하는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는 자기의 죄를 회개하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함께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경험한 다윗은 다른 이들을 가르치기로 결심합니다(8절). 그는 무엇을 가르치겠다고 결심하고 있습니까?  그것을 바로 회개입니다. 다윗은 친히 자기의 회개를 통하여 사죄의 행복을 체험한 후로 남에게 회개를 권면할 용기를 가진 것입니다(51:13)(박윤선).  다윗이 회개를 권면한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오늘 성경 시편 32편 9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자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오지 아니하리로다.”  여기서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이 되지 말”라는 말씀은 강제로 지배하지 않으면 복종하지 않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권면입니다(박윤선).  우리는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회개할 죄가 있을 때에 주님께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이” 강제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으시며 회개하지 않는 자가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자기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한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11절). 여기서 “의인들”과 “정직한 너희”는 회개 자들을 가리킵니다(박윤선). 다윗은 회개 자들은 하나님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들에게 즐거움 속에서 하나님께 찬양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께 회개하므로 죄 사함을 받고 또한 의롭다 칭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자로서 하나님을 기뻐하여 즐거워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복 있는 사람이신 장모님을 생각하면서,

 

 

 

제임스 목사 나눔

(죄에서 자유를 누리시는 장모님을 하나님께 의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