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편: 하나님을 의지하라!
[시편 31편 1-8절]
우리 각자 자신에게 이 질문을 던져 보십시오: “나는 과연 항상 주님을 의지하고 있는가 아니면 헛된 신이나 헛된 것들을 혹시나 의지하고는 있지 않는가?” 이 질문을 대답하려면 우리는 먼저 우리가 의지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의지하는 것이 믿음이다”라는 글을 보면 영국 교회의 복음적인 교역자인 케논 배터스비(Canon Battersby) 목사님이 한 번은 가버나움에서 가나까지 예수님을 찾아와서 아들의 병을 고쳐달라고 청한 왕의 신하 이야기를 본문으로 한 설교를 들으면서 깨닫게 된 교훈이 나옵니다. 그 교훈은 다름 아닌 왕의 신하는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고(요4:50), 그 아들은 완쾌된 말씀을 들으면서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나를 보호하시겠다고 약속하실 때 비록 내가 세상에서는 의지할 것이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주님의 말씀이면 충분합니다”라고 고백하는 신앙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요 의지함입니다(인터넷). 저는 제 자신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과연 나는 주님께서 우리 교회에게 주신 약속인 마태복음 16장18절 “… 내가 … 내 교회를 세우리니 …”라는 말씀만으로도 충분한가?’ 아니면 ‘나는 이 약속의 말씀 외에 혹시나 자주 내 자신이나 그리고/혹은 다른 사람들을 의지하고 있지는 않는가?’ 만일 제가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음으로 목회를 감당케 하심을 경험한다면 분명히 저는 아무도 또한 어떠한 상황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아무 무엇으로 인해 불안해하며 낙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약속의 말씀으로만 충분하다고 믿고 확신하는 영혼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합니다. 찬송가 342장(“어려운 일 당할 때”) 가사에 쓰여 있듯이 우리는 세월 지나 갈수록 아무 일을 만나도 의지할 것 주님 밖에 없음을 고백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오늘 성경 시편 31편 6절을 보면 시편 기자 다윗은 “내가 허탄한 거짓을 숭상하는 자를 미워하고 여호와를 의지하나이다”라고 결심하는 모습을 우리는 봅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 중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제목 아래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무엇을 하는지 한 2가지로 묵상하면서 우리 또한 다윗처럼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신앙인들이 되길 기원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주님께 피합니다.
성경 시편 31편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로 영원히 부끄럽게 마시고 ….” 다윗은 환난을 당하여 하나님께 피하였습니다. 하나님께 피하였다는 말씀은 다윗은 하나님을 자기의 피난처로 삼고 그에게 간구하였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피하였던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럼 주님께 피한 영혼인 다윗의 간구는 무엇이었습니까? 한 3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다윗의 첫 번째 간구는 “나를 건지소서”였습니다.
성경 시편 31편 1절 하반 절을 다시 보십시오: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 다윗은 그가 처한 위기 가운데서 하나님께 구원해 달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위기는 힘이 강하고 간교한 다윗의 원수들이 그물을 쳐서 동물을 잡듯이 다윗을 잡으려는 것이었습니다(4절).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므로 피난처 되시는 주님께 원수들이 비밀히 친 그물에서 빼어내 주시므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주시길 간구하였습니다(4절). 흥미로운 것은 다윗은 자기의 의를 근거하여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였던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의”를 근거로 하여 구원해 달라고 간구하였다는 것입니다(1절). 다윗은 주님께서 택한 자를 신실히 보호하시는 의의 행위로써 구원하여 주심을 바랬던 것입니다(칼빈).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귀한 교훈은 우리는 우리의 의를 근거로 하여 하나님께 건져(구원해) 달라는 기도를 드려서는 아니 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의지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건져달라고 간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다윗의 두 번째 간구는 “내게 견고한 바위와 구원하는 보장이 되소서”였습니다.
성경 시편 31편 2절을 보십시오: “내게 귀를 기울여 속히 건지시고 내게 견고한 바위와 구원하는 보장이 되소서.” 이것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바라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이 기도는 하나님의 전능하심, 그의 견고하심을 의지하여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여기 본문 2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견고한 바위”는 “은신할 수 있는 반석 위의 간성을 의미하고, “보장”은 산꼭대기에 세운 피신 건물을 가리킵니다. 이 명칭들은 보호하시는데 능하신 하나님을 비유한 것입니다(박윤선). 다윗은 극심한 고난 중에서 하나님께 피하여 예수님의 의를 근거로 하나님께 건져달라는 기도를 드린 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청하였습니다. 우리의 피할 바위는 오직 주님이십니다. 그 만이 우리를 어떠한 고난과 역경 속에서 보호해 주실 수가 있습니다.
(3) 다윗의 세 번째 간구는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였습니다.
성경 시편 31편 3절을 보십시오: “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인하여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 다윗은 반석이 되시며 산성이 되시는 주님께서 자기를 인도하시고 지도해 주시길 간구하였습니다. 누구를 위하여서 다윗은 그렇게 기도한 것입니까? 그는 “주의 이름을 인하여” 주님의 인도하심과 지도하심을 간구하였습니다. 주님의 의를 의지하여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달라고 간구하는 다윗은 언약의 하나님께서 그의 약속을 성취하시사 그의 신실하심을 나타내셔야 하기에 그는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인도해 주시고 지도해 주시길 간구하였습니다(3절). 우리도 다윗처럼 주님의 인도하심과 지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주님의 인도하심과 지도하심이 없으면 우리는 갈 길을 잃은 양들처럼 헤매므로 말미암아 결국 원수의 조롱거리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찬송가8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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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의지하였던 다윗은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아 그에게 위에 세 가지 기도 제목을 가지고 간구하면서 자기로 영원히 부끄럽게 마시길 하나님께 함께 간구하였습니다(1절). 즉, 다윗은 실패로 인하여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해 주시기를 간구하였습니다(박윤선). 이것은 다윗이 하나님께 피할 때에 주님께서 도와주실 줄을 확신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는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를 주목하던 자들이 비웃을 것입니다(박윤선). 그러므로 다윗은 이런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던 것입니다.
마지막 둘째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주님께 자신의 영을 맡깁니다.
성경 시편 31편 5절을 보십시오: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구속하셨나이다.” 이 말씀은 다윗이 자기의 생사 문제를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겼다는 의미입니다. 왜 다윗은 주님께 자신의 영을 맡겼습니까?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1) 주님은 진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현재 극심한 고난 중에서 과거의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자신의 영혼(생사 문제)을 맡긴 이유는 주님은 진리의 하나님이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다윗은 생사의 문제를 전적으로 주님께 맡길 수 있었던 것은 주님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참 하나님은 자기를 계시하시며, 그의 언약하신 바를 언제든지 신실하게 이루시는 하나님을 알고 경험하였던 다윗은 그의 현재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 이 진리의 하나님께 자기의 생사 문제를 맡겼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과거의 진리의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경험하였던 그는 현재의 극심한 고난 중에서도 이러한 결심을 하였습니다: “내가 허탄한 거짓을 숭상하는 자를 미워하고 여호와를 의지하나이다”(6절). 다윗은 우상숭배 자들의 죄악 행위를 미워하였습니다.
(2) 다윗이 주님께 자신의 영혼을 맡긴 이유는 그가 주님의 인자하심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였기 때문입니다.
성경 시편 31편 7절을 보십시오: “내가 주의 인자하심을 기뻐하며 즐거워할 것은 주께서 나의 곤란을 감찰하사 환난 중에 있는 내 영혼을 아셨고.” 다윗은 현재 고난 중에서 과거의 진리의 하나님의 신실하신 구원의 은택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가운데 주님의 인자하심을 다시 한 번 느끼면서 기뻐하며 즐거워하였습니다. 참 놀랍지 않습니까? 현재 극심한 고난 중에서 주님의 인자하심을 기뻐하고 즐거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것이 바로 신앙(믿음)입니다. 특히 그가 주님의 인자하심을 기뻐하고 즐거워하였던 이유는 주님께서 다윗의 곤난을 감찰하사 환난 중에 있는 자신을 아시고(7절하) 그를 그의 대적의 수중에 놓아두지 않으시고 그를 넓은 땅, 즉 자유로운 환경으로 인도하였기 때문입니다(8절).
성경 시편 31편 5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 이 말씀은 저로 하여금 성경 누가복음 23장46절에 나와 있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상의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이 두 구절 말씀을 비교하여 생각해 볼 때에 놀라운 사실은 독생자 예수님께서 생사 문제를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셨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십자가의 죽음에서 건지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다윗은 생사문제를 하나님께 맡겼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시사 구원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그를 건져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저와 여러분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이 구속의 은총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자는 참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과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이러한 축복이 우리에게도 있길 기원합니다.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제임스 김 목사 나눔
(나의 피난처가 되시는 주님을 의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