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내가 선택해야 할 길

 

 

[시편 258-15]

 

 

여러분은 지나온 길을 되돌아 볼 때 아쉬움을 느낍니까?  “만약 다른 길로 걸어왔더라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랬더라면, 내 인생은 더 낫지 않았을까? 혹시 내가 잘못된 길을 걸어온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저는 제 자신을 뒤돌아 볼 때 ‘만일 사춘기 때 방황의 생활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과연 지금 어떠한 목회자가 되어 있을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러나 과거의 걸어왔던 길을 뒤돌아보면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무 소용이 없지만 그래도 과거의 걸어왔던 길을 뒤돌아보면서 그 과거에서 교훈을 받아 현재와 앞으로 어떠한 길을 걸어가야 할지 생각해 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성경 시편 25편 12절을 보면 시편 기자 다윗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뇨 그 택한 길을 저에게 가르치시리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택한 길은 무슨 길이였을까 생각해 볼 때에 시편 1편 말씀에서 나오는 ‘의인의 길’이라 생각합니다(1:1).  다윗은 시편 1편에서 인생의 길에는 오직 두 갈래 길만이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는 의인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악인의 길.  여기서 의인의 길이란 ‘말씀의 길’입니다.  그 길을 걷고 있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살아갑니다(2절).  의인의 길을 걸었던 다윗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뿌리를 내리므로 말미암아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늘 생명수를 공급받았습니다(3절).  그러면 악인의 길은 어떠한 길입니까?  악인의 길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면서 악인의 꾀를 좇는 길입니다.  악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양심을 판단하고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지 않고, 제 멋대로, 세상의 법칙대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는 죄인의 길에 들어섭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내리지 않기 때문에 알찬 과실을 맺지 못합니다.  그가 맺는 것이라고는 오직 바람에 나는 쭉정이 밖에 없습니다.  쭉정이는 결국 땅으로 곤두박질 칠 수밖에 없습니다.  땅에 떨어져도, 알맹이가 없기 때문에 땅에 뿌리를 전혀 내릴 수 없습니다. 바람에 또 날립니다.  이처럼 악인의 인생은 언제나 가볍고, 변덕스럽고, 흥망성쇠를 반복합니다.

 

 우리는 발이 두 개가 있지만 아무리 발이 두 개가 있는 사람이라도 동시에 두 길을 걸어 갈 수는 없습니다.  의인의 길을 선택하든지 아니면 악인의 길을 선택해서 걸어야 합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항상 한 가지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인생에는 이렇게 두 갈래 길이 선명하게 갈립니다.  과연 저와 여러분은 어떤 길을 선택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저는 오늘 성경 시편 25편 8-15절 말씀 중심으로 우리는 어떠한 길을 선택해야 하는지 한 3가지로 묵상해 보면서 우리 또한 다윗처럼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잘 선택하여 신실하게 걸어가길 원합니다. 

 

첫째로, 우리 죄인이 선택해야 할 길은 선한 길이요 정직한 길입니다.

 

성경 시편 25편 8절을 보십시오: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 도로 죄인을 교훈하시리로다.” 여기서 우리 죄인들이 선택해서 걸어가야 할 길을 두 가지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첫 번째 길은 바로 선한 길입니다

 

선한 길이란 ‘도덕적으로 선한 길’(moral goodness)을 가리킵니다.  즉, 우리 죄인들이 걸어야 할 선한 길이란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는 길입니다(34:14).  다시 말하면, 선한 길을 걷는다는 말씀은 죄를 버리고 선을 행하는 삶을 말합니다.  토미 테니 목사님은 그의 책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러한 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비워짐을 사용하셔서 그분의 채우심을 숨김없니 드러내기 원하신다.”  우리는 우리의 죄악 된 생각들을 마음에서 비워야 합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도 비워야 하며 미워하는 마음도 비워야 하며 악한 생각 등 다 비워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그의 말씀으로, 그의 사랑으로 채워주십니다.  또한 선한 길이란 자비의 길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하시다’(25:8)라는 말씀 속에서 “선하시고”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죄인을 돌아보시는 자비를 가리킵니다(칼빈).  우리가 자비의 길을 선택하여 걷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선하셔서(자비로우셔서) 나 같은 죄인을 버리지 않으시는 것처럼 우리 또한 같은 죄인들을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마음으로 버리지 않고 돌아봐야 함을 말합니다.  결국 선한 길이란 죄를 버리되 죄인은 버리지 않고 용서하며 사랑으로 돌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에게는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처럼 죄인들을 향하여 긍휼이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우리는 함부로 우리 자신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며 정죄하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신 것처럼 우리는 다른 이들의 죄를 용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여호와여 나의 죄악이 중대하오니 주의 이름을 인하여 사하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11절). 놀랍지 않습니까?  다윗의 주위엔 그의 원수들이 속임수를 써 가면서(3-4절) 핍박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그들의 죄를 들춰내고 있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죄가 얼마나 큰지 고백하면서 오히려 자기의 큰 죄를 용서해 주시길 기도 하고 있습니다.

 

(2) 두 번째 길은 바로 정직한 길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25편 8절에서 다윗이 정직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교훈하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교훈은 우리 또한 하나님처럼 정직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하나님(대상29:17)이심을 알고 있었기에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면 정직한 길을 걷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성경 누가복음 1장6절 말씀을 보면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직한 자는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며 삽니다.  또한 정직한 자는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을 옳은 길로 인도하시는 것처럼 죄인들을 옳은 길로 인도합니다.  즉, 그는 죄인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보혈로만이 죄인들이 용서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우리 온유한 자가 선택해야 할 길은 공의로운 길입니다.

 

성경 시편 25편 9절을 보십시오: “온유한 자를 공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 도를 가르치시리로다.” 여기서 “온유한 자”란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심령이 겸손해진 자들을 의미합니다(칼빈).  하나님께서는, 그 자녀들이 범죄 할 때에는 공의로 그들을 징계하여 온유 겸비하게 만드십니다(박윤선).  결국, 하나님 앞에서 큰 죄를 범한 죄인임을 인정하며 죄를 사하여주십사 하나님께 회개 기도한 다윗의 마음은 온유해진 것입니다.  회개할 때 우리의 마음이 온유(겸손)해 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공의 가운데 우리 죄인들이 범죄 한 후 회개치 아니할 때에 사랑의 매로 우리를 징계하시므로 말미암아 우리를 온유(겸손)하게 만드십니다. 그러신 후 하나님께서는 겸손해진 마음 밭에 공의의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의의 길을 걷을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는 에스겔 선지자가 살았던 시대처럼 불법으로 가득 찬 세상입니다(겔9:9). 이러한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과연 어떠한 길을 선택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선하심과 정직하심 가운데 그의 말씀으로 교훈을 받아 겸손해지는 가운데 우리는 온유해져서 그의 공의로우신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선택해야 할 길은 언약의 길입니다.

 

성경 시편 25편 14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친밀함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여 그 언약을 저희에게 보이시리로다.” 다윗은 그의 원수들의 속임수들이 난무한 불법 시대에 살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았습니다(2, 3절).  그랬기에 그는 바른 길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12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많지 못한 상황에서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따르기보다 “실상은 자기 육체의 연약에 싸여 잠자는” 가운데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택해야 할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칼빈, 박윤선).  그 길은 선하신 길, 자비로운 길과 정직한 길 또한 공의로운 길이였습니다.  이 길들을 신실하게 걸었던 다윗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눴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자만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선택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선택해야 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은 언약의 길입니다.  즉,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길은 하나님의 약속의 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그가 우리에게 열어주시는 약속의 길을 믿음으로 걸어야 합니다.  그 길은 주님의 길이요 인자와 진리의 길입니다(10절). 박윤선 박사님은 이러한 말을 하였습니다: “성도의 구원과 축복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언약)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밖에는 알자가 없다.  그것이, 외식 자들과 불택자들에게는 이해되지 못한다.”  맞습니다.  외식 자들과 불택 자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에 하나님의 약속(언약)의 축복을 알 수도 없고 누릴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약속의 길을 알고 그 길을 믿음으로 인내하며 걷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윗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언약의 길을 신실하게 걸어가야 합니다(14절).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은 의인의 길이요, 선한 길이요, 정직한 길이요, 공의로운 길이요, 그리고 언약의 길입니다. 한 마디로,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은 주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 십자가의 길은 결코 넓은 길이 아닙니다.  성경은 좁은 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걷는 것이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길입니다.  우리가 이 길을 선택하여 신실하게 걸어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항상 하나님을 앙망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15절).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의 길을 걷을 수 있는 특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앞으로 걸어가야 할 십자가의 좁은 길을 끝까지 걷기를 소망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