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는 자

 

 

[시편 24]

 

 

헤어지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헤어지는 법도 배워야 합니다.  물론 헤어짐이란 이 세상을 떠나는 죽음도 말할 수 있지만 고향을 떠나는 헤어짐도 있고 연애하다가 헤어짐도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헤어짐 속에서 우리는 슬퍼할 수도 있고 마음도 아파하면서 낙심할 수도 있고 또한 자포자기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헤어짐 속에서 우리는 또 다른 만남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저는 미국에 모든 식구들과 교회 식구들, 친구들 등등과 헤어지면서 한국에 약 3년간 있으면서 또 다른 만남의 축복을 누렸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과의 만남이요 둘째는 제 자신과의 만남이요 셋 번째로 동역 자와의 만남과 형제, 자매들과의 귀한 만남의 축복을 누렸습니다.  헨리 나우웬의 말처럼 우리는 헤어짐 속에서 또 다른 만남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시편 24편 3절에서 시편 기자 다윗은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천지 만물의 창조자이신 위대하신 하나님(1-2절)과 누가 교제할 수 있는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중심으로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할 수 있는 자격에 대해 한 4가지로 묵상하는 가운데 우리 또한 그러한 자격을 가출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원합니다.

 

첫째로,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는 자는 정결해야 합니다.


성경 시편 24편 4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 이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으로 더불어 교제하는 자는 외부적으로나 내부적으로 정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손이 깨끗하며”라는 말씀은 외부적으로 행실이 정결해야 할 것을 가리키고 “마음이 청결하며”라는 말씀은 내부적으로 정결해야 할 것을 가리킵니다.  한 마디로, 행실과 마음이 깨끗한 자는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고 있는 깨끗하다 함은 전연 무죄함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신자가 하나님 제일주의에 속하여 두 주인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만 섬기기 위하여 그를 ‘찾으며’, 또한 그를 ‘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6절, 박윤선).

 

우리는 깨끗케 함에 있어서 외부적 청결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내부적 청결에 힘을 써야 합니다.  그 이유는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면서 우리는 행실의 깨끗함을 추구한다는 것은 온전하지 못한 깨끗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깨끗이 씻듯이 우리 마음도 깨끗이 씻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영적 샤워를 해야 합니다.  그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므로 가능합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벧전1:22).  그러나 이 죄악 된 세상에 살면서 우리는 우리의 행실과 깨끗함을 잘 지켜 나아가기가 참 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 아삽은 시편 73편 13절에서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왜 아삽은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까?  그 이유는 악인의 형통을 보고 질투하였기 때문입니다(3절). 아삽은 “거의 실족할 뻔하였고 내(그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습니다(2절).  많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고난 중에 아삽처럼 악인의 형통을 보면서 실족하는 가운데 자신의 정결함(깨끗함)을 포기하는 유혹에 넘어가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 제일주의에 속하여 두 주인을 섬기지 말아야 하는데 우리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재물을 겸하여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  우리는 마음에 두 주인을 섬겨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만 섬겨야 합니다.  그렇게 하므로 우리는 우리 마음을 잘 지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에 주님만을 섬기는 정결한 마음과 정결한 행실로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는 자는 뜻을 허탄하데 두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 시편 24편 4절 중반절을 보십시오: “…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 여기서 “허탄”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진리에 속하지 않는 모든 이 세상 영광과 재리에 대한 허욕”을 가리킵니다(박윤선).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는 행실과 마음이 정결한 자는 자기의 뜻을 오직 하나님에게만 두고 다른 허탄한 데 두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는 마음에 진리를 사랑하며 행실로 또한 그 진리의 말씀을 순종하므로 자기를 정결케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벧전1:22).  “영혼을 깨끗하게”하는 자는 거짓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거짓된 것에 속임을 당하여 이 세상에 헛된 영광과 재리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것이 헛된 욕심인 줄 알고 있습니다.  영혼을 깨끗하게 하는 자는 진리 안에 거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하나님의 진리에 말씀에 순종합니다(벧전1:22).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을 뒤돌아 볼 때 씨 뿌리는 비유에서 말씀하고 있는 “가시떨기”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성경 누가복음8장에 나오는 씨뿌리는 비유를 보면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앗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요”(14절).  여기서 우리는 “나의 신앙 성숙(maturity)을 막는 것들은 3가지를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1) 이생의 염려(life's worries), (2) 재리(riches) 그리고 (3) 일락(pleasures).  걱정, 근심하며 돈(물질)을 하나님과 같은 위치에 놓을 정도로 우상화 하여 좇고 또한 섬기며 세상 쾌락으로 자기 자신을 만족하게 하려고 할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신앙의 성숙을 가지고 올 수 없습니다. 이러한 신앙생활을 가리켜 "가시떨기" 신앙생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2장 3절에서 이렇게 권면하였습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낮게 여기고.”  우리는 뜻을 허탄한 데 두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의 것들은 다 헛되고 헛된 것들 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허탄한 욕심만 만족하게 하는 것에 마음을 빼앗겨서 우리 신앙의 성장을 방해하도록 그냥 방치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어 드리는데 전심전력해야 합니다.

 

셋째로,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는 자는 거짓 맹세치 말아야 합니다.

 

성경 시편 24편 4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행실과 마음이 깨끗하지 못한 자는 뜻을 허탄한데 두므로 거짓된 삶을 삽니다. 그러한 삶을 사는 자는 거짓 맹세를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는 자는 거짓 맹세치 아니한다는 말씀은 한 2가지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1)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려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뜻을 허탄한데 두는 자는 그 뜻을 이루기 위하여 거짓말을 합니다.  그러나 뜻을 하나님에게 둔 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즉, 그는 거짓증거를 하지 않습니다(박윤선). 

 

(2) 하나님 앞에서 결심을 헛되이 하지 않고 실행해야 합니다(박윤선).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는 자는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을 실행한다는 말입니다.  서원을 것을 실행하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15:4).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미 깨끗하여진 자들로서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고 있습니다. 성경 요한복음 15장 3-4절 상반절과 7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화되어가고 있는 자는 포도나무이신 주님 안에 거하고 있는 가지와 같은 자로서 그 안에 거짓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짓 증거 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진리를 말해야 합니다.  또한 진리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행실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는 삶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마지막 넷째로,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는 자는 하나님을 성의껏 영접해야 합니다.

 

성경 시편 24편 7-10절을 보십시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찌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찌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 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뉘시뇨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찌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찌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 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뉘시뇨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셀라).” 이 말씀을 보면 다윗은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들어가시기 위하여 성전 문을 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는 7절에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박윤선 박사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정성껏 하나님을 모시지 않으면, 하나님을 영광의 왕으로 모시지 않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전 문을 활짝 열듯이 우리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거하시사 마음 것 역사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는 위대하신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가 이뤄져야 합니다.

 

        우리는 더럽고 허탄한 것과 거짓이 가득 찬 세상과 헤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과의 헤어짐 가운데 하나님과의 친밀한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더불어 친밀한 교제를 하기 위해서 마음과 행실이 깨끗해야 합니다.  우리는 뜻을 허탄한데 두지 말고 또한 거짓 맹세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하나님을 성의껏 영접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 교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정결한 그리스도의 신부로 세워지는 교회를 꿈꾸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