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주님께서 행하셨습니다.’

 

 

 

[시편 2222-31]

 

 

어제 화요일 집에서 아이들하고 시간을 보내면서 저희 딸 막내 예은이하고의 흥미로운 대화를 했습니다.  예은이가 먹고 싶은 것이 있다고 좀 도와달라고 하여서 도와주었더니 그 아이가 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무반응 가운데서 저에게 등을 돌리고 가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예은이에게 ‘welcome’(천만예요)라고 말하였습니다. 제가 그리 말한 이유는 예은이에게 “Thank you”(감사합니다)라는 대답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은이는 오히려 저에게 “welcome”이라고 말한 후 다시 가던 길을 가더군요.  저는 그 모습 속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와의 관계를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무언가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한 후 하나님께서 기도 응답을 해 주시면 우리는 하나님께 무반응 하든지 아니면 그에게 등을 돌리고 아마 감사 표현 없이 그저 우리의 갈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볼 때에 저는 그 원인을 찰스 스윈돌 목사님께서 그의 책 “은혜의 각성”(The Grace Awakening)에서 하신 말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이 지구상에서 제일 위험한 이단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하시는가에 강조를 두기보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하느냐에 강조를 두는 것입니다’(The one I consider the most dangerous heresy on earth is the emphasis on what we do for  God, instead of what God does for us)(스윈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행하셨는가 또는 무엇을 행하시는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가 또는 하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할 때 그분에게 간구하며 또한 기도의 응답을 받은 후에도 하나님께 감사하기보다 하나님께 등을 돌리며 그저 우리 각자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무엇을 행하셨고 또한 지금도 무엇을 하시는지 잘 묵상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또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무엇을 행했는지에 너무나 많은 관심을 갖고 강조를 하고 있는 것 같아 염려됩니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머물기보다 율법주의 ‘신앙’(종교 생활?)에 빠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 우리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므로 교회 안에도 계급주의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 시편22편 31절 하반절을 보면 시편 기자 다윗은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주께서 구원을 이루셨다는 뜻입니다(박윤선).  다윗은 주님의 구원의 은총을 경험하였기에 주님께서 구원을 이루셨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주님의 구원의 은총을 경험한 사람은 어떻게 하는지 한 3가지로 묵상해 보면서 우리 삶 속에 적용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주님의 구원의 은총을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성경 시편 22편 22-23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지어다 ....” 왜 다윗은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간절한 기도를 응답하셨기 때문입니다.  24절을 보십시오: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 얼굴을 저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부르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이 구절 초두에, “왜 그런고 하면”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앞 절 23절에 말씀한 모든 성도들이 찬송할 이유를 말씀한 것입니다(박윤선).  그 찬송할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곤고한 자”, 즉 원수들에게 핍박을 받는 다윗의 부르짖는 기도를 들어주셨기 때문입니다(24절).  그 기도 내용은 한 마디로 말한다면 “구원”(deliverance)이였습니다.  우리가 이미 20-21절에서 묵상했던 것처럼 다윗은 그의 원수들인 “소”, “개”, “사자”와 같은 자들에게서 건져 주시길 간구하였었는데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 응답하시사 다윗을 그의 원수들에게서 건져 주셨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다윗이 기도하면서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지 않고 계신다는 느낌을 가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는 1절에서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 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라고 간구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가운데 결국은 하나님에게 기도 응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우리는 포기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기도의 비유에서 배우는 것처럼 우리는 기도하되 낙망하지 말아야 합니다(1절).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 응답 받을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마치 야곱이 압복 강에서 천사와 씨름하면서 복주시기 전까지는 놓지 않겠다는 결심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께 기도 응답 받을 때까지 기도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록 처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느낌일 들지라도 우리는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꼭 들어 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믿음으로 기도응답 받을 때까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럼 누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까?  오늘 성경 시편 22편 26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 즉, 겸손한 자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찾는 자가 하나님으로부터 만족함을 누리게 되므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러한 만족함을 누리는 자의 마음은 영원히 살 것입니다(26절).  다시 말하면, 영원히 복된 영적 생명의 풍족을 누리는 자는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수 있습니다(박윤선).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풍비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29절).  다윗은 궁핍한 가운데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더니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므로 그의 마음을 만족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대회 중에 나의 찬송은 주께로서 온 것이니…”라고 고백하였습니다(25절).  우리의 찬송이 하나님께로 온 것이라는 고백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환난 중에서 받은 구원이 순전히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그는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면서 자기의 찬송이 주님께로 온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우리 하나님은 찬양을 받으시기를 원하셔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구원자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의 이름은 ‘구원자’란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신격은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에게 부르짖을 때에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사 우리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 구원의 은총을 맛본 심령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둘째로, 주님의 구원의 은총을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립니다

다윗은 오늘 본문 23절에서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구원의 은총을 경험한 성도는 마땅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까? 

 

(1) 우리는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돌리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27, 29). 

 

다윗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데 회중에서 주님을 찬송하였고(22절) 또한 하나님의 공의(31절)를 찬양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하였던 것입니다(박윤선). 

 

(2)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 시편 22편 30절을 보십시오: “후손이 그를 봉사할 것이요 ….”  여기서 “후손”이란 앞 절에서 언급된 신자들의 후손들을 가리킵니다(박윤선).  즉, 우리들만 주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후손들도 주님을 섬기므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3) 우리는 주님을 전하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 시편 22편 22, 30, 31절을 보십시오: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22절), “… 대대에 주를 전할 것이며”(30절), “와서 그 공의를 장차 날 백성에게 전함이여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 할 것이로다”(31절).  우리는 주님의 이름을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가 우리에게 행하신 구원의 역사를 대대에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고 전해야 합니다(31절). 그러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주님의 구원의 은총을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성경 시편 22편 23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지어다.”  하나님께 기도 응답을 받아 구원의 은총을 경험한 후 우리는 교만해 지기가 싶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 자기의 영광을 구합니다. 또한 우리는 주님을 전하기보다 자기 자신을 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경험한 후에 하나님을 더욱더 경외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까? 

 

(1) 우리는 하나님을 먼저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 시편 22편 27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땅에 구원자는 오직 주님 밖에 없음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사사기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으므로 하나님께 죄를 범하였습니다(삿8:34-35).  시편 기자 아삽은 시편 77편11-12절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곧 여호와의 옛적 기사를 기억하여 그 행하신 일을 진술하리이다 또 주의 모든 일을 묵상하며 주의 행사를 깊이 생각하리이다.” 

 

(2) 우리는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성경 시편 22편 27절을 보십시오: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을 기억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돌아옵니다.  돌아오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신30:10).  오직 구원은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믿는 자는 구원자 하나님께 돌아옵니다.  다른데 구원의 손길을 구하는게 시간을 허비하지 않습니다.  오직 구원자 하나님께 돌아와 그에게 구원의 은총을 사모합니다. 

 

(3) 우리는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갚아야 합니다.

 

성경 시편 22편 25절 하반 절을 보십시오: “… 주를 경외하는 자 앞에서 나의 서원을 갚으리이다.”  다윗은 환난 가운데 있었을 때 하나님께 서원하였던 것을 이제 구원받은 후 이행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이행하는 자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경험한 후 우리는 다윗처럼 ‘주님께서 이 구원을 행하셨습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이 구원의 은총을 경험한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를 더욱더 경외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제임스 김 목사 고백

(구원의 감격으로 충만해 지기를 기원하는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