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도울 자가 없을 때

 

 

 

[시편 221-11]

 

 

여러분의 삶 속에서 제일 극심한 고통을 느낀 때가 언제였습니까?  그 때에 여러분은 어떠한 생각을 하셨습니까?  아마도 드는 생각들 중에 하나는 ‘어느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일 것입니다.  아무도 우리를 이해못한다고 생각하기에 우리는 어느 누구도 우리를 도와줄 수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만일 그러한 생각이 우리에게 든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는 복음성가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를 새벽기도회 때 자주 부르곤 합니다: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다른 은혜 구하지 않으리 오직 주님만 내 삶에 도움이시니 주의 얼굴 보기 원합니다.  주님 사랑해요 온 맘과 정성 다해 하나님의 신실한 친구 되길 원합니다.”  마음이 힘들고 아플 때에 저는 이 복음성가를 부르면서 “다른 은혜 구하지 않으리 오직 주님만 내 삶에 도움이시니 주의 얼굴 보기 원합니다”라는 가사 부분에서 마음이 뭉클해질 때가 있습니다.  마치 고통과 아픔 속에 있는 자녀가 부모님의 얼굴을 볼 때에 마음에 위로를 받고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극심한 고통 중에 있을 때 오직 우리를 도우실 주님의 얼굴을 구하면서 그 주님의 얼굴을 본다는 소망과 그리움으로 우리 마음이 가득찰 때 우리는 위로를 얻고 힘을 얻게 됩니다. 

 

오늘 성경 시편 22편 11절을 보면 시편 기자 다윗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깝고 도울 자 없나이다.”  환난에 처해있는 다윗은 아무도 자신을 도와 줄 수 없음을 고백하면서 주님을 의지하였습니다.  저는 오늘 성경 시편 22편1-11절 말씀 중심으로 “도울 자가 없을 때”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오늘 성경 시편 22편 4절을 보십시오: “우리 열조가 주께 의뢰하였고 의뢰하였으므로 저희를 건지셨나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까?  한 3가지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주님을 의지하는 자는 포기하지 않고 주님께 부르짖습니다

 

성경 시편 22편 1-2절을 보십시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나 응답지 아니하시나이다.”  다윗의 기도의 환경은 어떠했었습니까?  그는 극심한 고통 중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진노를 느끼는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박윤선).  그리고 그의 기도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낮에도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밤에도 잠잠치 않고 주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다윗은, 오랫동안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그 어려운 환난 가운데서도 기도 생활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박윤선).  하나님께서 다윗의 기도를 외면하시는 듯 하게 보이는데도 불구하고(1절) 다윗은 계속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신 것 같고 자신을 멀리하셔서 돕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을지라도 다윗은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기도 응답이 되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 기도 자에게 멀리 떠나신 듯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하나님께서 진정한 성도를 멀리 떠나시지 않습니다.  성도의 기도를 더욱 간절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얼른 응답하시지 않는 것뿐입니다(박윤선). 

 

우리는 포기하지 말고 주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우리의 느낌이 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멀리하시고 우리를 버리신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심한 고통이 우리의 삶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너무나 견디기가 힘들 정도로 우리가 지쳐있을지라도 우리는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도 응답이 더디다고 해서 우리는 기도하기를 포기하면 안 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의 신음하는 소리까지도 외면하시는 듯한 느낌이 들지라도 우리는 기도하기를 포기해서는 아니 됩니다.  왜 우리는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야 합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꼭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 시편 22편 3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왜 다윗은 1-2절 말씀 후 이러한 3절의 말씀을 적었을까요?  즉, 그는 1-2절에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멀리하시고 버리셨다는 느낌 속에서 아무리 부르짖어도 응답이 없었다고 말한 후 3절에 와서는 갑자기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가 거룩하시다고 고백하였을까요? 그 이유는 다윗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응답해 주실 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찬양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행하신 일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기도 응답해 주실 것을 확신하였기에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님이 거룩하시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다윗이 어려운 시절에도 낙심치 않고 용기 있게 기도한 이유 중 하나는 하나님은 거룩하시어 필경은 성도의 기도를 들어 주시는 줄 믿었기 때문입니다(박윤선). 찬송 중에 거하시는 거룩하신 우리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사 우리로 하여금 그의 성호를 찬양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둘째로, 주님을 의지하는 자는 과거의 구원의 은총을 되새깁니다

 

성경 시편 22편 4-5절을 보십시오: “우리 열조가 주께 의뢰하였고 의뢰하였으므로 저희를 건지셨나이다  저희가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치 아니하였나이다.” 우리는 너무나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목표를 향하여 열심히 분주하게 산다고 하면서 잠시 멈추어 과거를 뒤돌아 볼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럴만한 여유가 없다고 핑계를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의지하는 자는 잠시 멈추어 과거를 뒤돌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다윗은 과거를 뒤돌아 볼 줄 아는 지혜로운 자였습니다. 그는 아무 유익도 없는 과거의 상처와 아픔들을 기억하면서 낙심과 원망 가운데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과거 이스라엘의 열조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기억(회고)하면서 ‘하나님의 의지하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는 확신을 갖았습니다.  특히 다윗은 이스라엘 열조가 주님께 부르짖었을 때 구원을 얻었다는 사실을 회고하였습니다(5절).  그러므로 다윗 또한 하나님께 기도 응답의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고통 중에 부르짖었습니다.  또한 그는 자기의 열조가 주님을 의지하므로 구원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수치를 당치 아니하”였음을 기억하였습니다(5절).  하나님의 의지하는 자는 실망치 않습니다.

 

우리는 과거를 지혜롭게 뒤돌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출애굽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고통과 역경, 위기를 당면했을 때 과거 애굽에서의 노예 생활을 뒤돌아보면서 하나님과 누군가를 원망하는 죄를 범해서는 아니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고통과 역경, 위기 가운데 있을 때에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과거에도 이러한 위기와 역경 가운데서 우리를 건져내어 주신 구원의 하나님을 묵상해야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우리는 위기의 환경에 지배를 받기보다 구원자이신 하나님에게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박윤선 박사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앞서 간 성도들의 신앙 행적을 생각하므로 신앙에 용기를 얻는 것은 확실하다.”  다윗은 극심한 고통 중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그에게 부르짖었을 뿐만 아니라 과거 이스라엘 열조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을 기억(회고)하면서 구원의 확신과 신앙의 용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또한 다윗은 과거 자기의 열조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으므로 실망치 않았음을 상기시키면서 지금 자기가 당면한 심한 고통 중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간구하는 가운데 자기 또한 실망치 않고 오히려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셋째로, 주님을 의지하는 자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참된 신앙을 지킵니다

 

성경 시편 22편 6절을 보십시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다윗이 당면하고 있었던 상황은 자기를 “벌레”같이 천하게 여기는 악인들에게 핍박 받고 있었습니다(박윤선).  곧 다윗은 그의 신앙이 원수들에게서 조롱을 받고 있었고 또한 그는 그들에게 훼방거리가 되었기에 그는 원통히 여기고 있었습니다(6-8절)(박윤선). 원수들이 다 다윗을 비웃었으며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저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저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하면서 조롱하였습니다(7-8절).  왠지 다윗이 받았던 이 조롱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다른 사람을 구원하고 자기를 구원하지 못한다는 사람들의 조롱을 기억케 만듭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다윗은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22편 9-10절을 보시길 바랍니다: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모친의 젖을 먹 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바 되었고 모태에 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내 하나님이 되셨사오니.”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의지하게 하셨나이다”란 말과 “맡긴바 되었고”란 말에서 우리는 참된 신앙이 무엇임을 배워야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신앙은 의지하는 것이며, 또 겸하여 헌신함(맡긴바 됨)이다”라는 것입니다(박윤선).  “헌신이 없는 신앙은 아직 확실한 신앙이 아니다”(박윤선).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말하면서 그에게 헌신하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확실한 신앙이 아닙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가 어릴 때부터 주님을 믿게 되었고 또한 그를 의지하면서 그 주님께 헌신하면 살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10절)  이 얼마나 아름다운 신앙입니까?  출생 시부터 하나님께 바침이 되었던 다윗은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면서 살아왔었기에 지금 자기가 당면한 고통이 심할지라도 오히려 더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그에게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박윤선 박사님은 이러한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자신이 주님께 헌신한 것이 확실한 줄 알진대,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를 받을 줄 확신하고 기도할 만하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그의 도우심을 받고자 하는 자는, 의사에게 몸을 맡기지 않고 수술 받아 병을 고치려는 자와 같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에게 헌신하는 가운데 전적으로 그를 신뢰하고 간구해야 합니다.

 

      오늘 성경 시편 22편 1절 상반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묵상해 봅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우리는 이 다윗의 부르짖음을 예수님의 십자가상에서도 들을 수가 있습니다: “… 엘리 엘리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막 15:34).  하나님 아버지께 크게 부르짖으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기도를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외면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그의 아들 예수님을 ‘구원’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를 의지하며 그 분의 뜻을 이루시고자 죽기까지 헌신하셨던 아들 예수님을 버리셨습니다.  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리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버림받아 마땅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아무도 우리는 도울 수가 없어 영원히 죽어 마땅한 우리들을 구원해 주시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에 우리의 간구를 들어주시길 원하셔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우리에게 참된 신앙을 주시길 원하셔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버리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오늘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고 살아가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수요기도회 때 이 말씀을 선포 한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