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내 마음의 소원 기도를 거절하지 못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도모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시편 204), “그 마음의 소원을 주셨으며 그 입술의 구함을 거절치 아니하셨나이다” (212).

 

 

어제 목요일 오랫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 4명을 다 함께 만났습니다. 그 중 3명은 제가 12살 때 미국에 이민 와서 중학교 때부터 안 친구들입니다. 또 한 친구도 이미 안지 오래된 친구로서 저 보다 한살 많은데도 제가 처음으로 주례를 섰던 친구입니다. 우리는 오랜만에 만나서 점심 식사도 같이 하고 사구 당구도 치고 저녁도 함께 먹고 그리고 볼링 같이 쳤습니다. 아마 이렇게 함께 다섯 명이 볼링까지 친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제 이렇게 함께 만나게 된 이유는 이 네 친구들 중 한명이 어려움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한 친구에게 우리 친구들이 좀 서로 이 어려움 을 당하는 친구를 돕자고 전화 통화 했었는데 그 전화 통화했던 친구가 어제 그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비록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가 싶지 않는 상황이였지만 어제 저녁 식사 할 때 하나님께서 저에게 담대한 마음을 주셔서 용기를 내어 제 친구들에게 제 마음을 나눴습니다. 친구들도 제가 너무 진지하게 말을 하니까 그리 술을 많이 못 마시고 제 이야기를 귀 담아 들어 주었습니다. 저는 그 사랑하는 4명의 친구들에게 제 마음의 간절한 소원을 나눴습니다. 그 소원은 그 친구들의 영혼 구원입니다. 제 아내도 이러한 친구들을 향한 제 마음의 소원을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아내와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이 친구들을 만난 후 새벽 3시에 집에 들어가 보니 아내가 잠을 안자고 있길래 새벽 6시까지 3시간 동안 제 마음의 소원인 친구들의 영혼 구원에 대하여 이야기했던 것까지 친구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을 위하여 습관적으로 기도할 때가 많으므로 마음이 부서지고자 친구들을 의도적으로 만났던 이야기까지 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그렇게 친구들을 만나고 헤어진 후 차 타고 집에 가면서 혼자 많이 울었다는 이야기까지 친구들에게 했습니다. 어느 면으로 보면 식사하면서 술 먹는 자리에게 이러한 저의 이야기는 충분히 분위기를 깨는 이야기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은 저의 마음의 이야기들을 계속 들어주었습니다. 전 같으면 이런 저런 말과 행동들이 있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어제는 진지하게 친구들은 저희 마음의 소원 이야기를 들어 주었습니다. 저는 그 친구들에게 예수님 안에서 영원한 친구가 될 수 있음을 말했고 또한 그러한 영원한 친구가 되고 싶다는 제 마음을 그들에게 나눴습니다. 그리고 저는 죽음의 관점으로 볼 때 그리 시간은 많은 것 같지 않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그저 저는 속히 친구들이 예수님을 믿고 주님의 교회를 함께 섬기길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제 마음의 소원임을 그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런 후 저는 이 친구들에게 이번 주 토요일, 오후 6시에 저희 교회에서 있는 전도 집회 “새 생명 축제”에 초청을 했습니다. 꼭 와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또 부탁할 것입니다.

 

어제 저는 친구들을 다 한 친구의 집 앞에 데려다 주고(그 친구 집 안에 차들을 다 세워놓고 제 차로 다녔기에) 저는 집으로 왔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밤10시 쯤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잠이 들었고 아내는 저를 반겨주었습니다. 친구들과 늦게까지 있으면서 저는 아내에게 한 번도 전화를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친구들을 향한 제 마음의 소원을 알기에 그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것을 알고 있었던 아내는 저를 위해서 일부러 전화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저는 아내에게 그 날 있었던 일들을 나누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사 응답하고 계심을 느낀 부분들을 나눴습니다. 한 친구는 예수님을 믿는 후배를 하나님께서 붙여 주셔서 당면한 큰 문제가 해결되면 교회를 나아가기로 약속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친구는 새로운 직장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그 직장에 사장님이 교회 집사님이신데 그렇게 자기에게 계속 전도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친구는 3살짜리 딸아이를 교회 유치원에 보내는데 동요를 배워오지 않고 찬송인지 복음성가를 계속 배워온다고 하면서 교회를 보내야겠다고 합니다. 또 다른 친구는 가족 식구가 성당에 열심이 다니고 있다는 소식을 어제 들었습니다. 이것을 볼 때 하나님께 20년 넘도록 친구들의 영혼 구원을 위하여 기도해오면서 ‘어느 때까지리이까’(How long?)(시13:1-2)라는 생각이 들 때가 여러 번 있었는데 이렇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제 마음의 소원기도를 들어주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오늘 아침 새벽기도회 때 성경 시편 20편 4절과 21편 2절 말씀을 묵상하면서 좀 더 분명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나의 하나님은 내 마음의 소원 기도를 거절하지 못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나를 너무나도 사랑하시되 독생자 예수님까지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 아버지는 내 마음의 소원기도를 거절하지 못하시는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이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아버지의 마음을 말씀 묵상과 기도 가운데 느낄 때에 제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내 마음의 소원기도를 거절하지 못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느낄 때 제 마음에 감사와 위로가 있었습니다. 사람인 제가 무엇이 관대 하나님께서는 이렇게도 저를 사랑하시는지 저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저는 하나님 아버지께 기대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저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원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이룰 수 없는, 오직 하나님만이 이루실 수 있는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꿈이 제 마음의 소원기도가 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꿈은 칼빈이 제네바를 기독교화 했던 것처럼 저는 하나님께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대학교 때 룸메이트들이나 또한 앞으로 예수님을 믿을 친구들이나 또한 허락해 주신 귀한 만남들을 통하여 주님이 인도해 주시는 도시를 기독교화 하는 꿈입니다. 교회 중심으로 기독교 학교들, 기독교 병원, 기독교 변호사 사무실, 등등 주님 중심된 커뮤니티를 세워 나아가는 가운데 그리스도 중심된 꿈을 가진 일꾼들을 주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세워주시사 세상 곳곳에 파송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꿈을 1995년 한국에 처음 나아갔었을 때 갖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저는 미국으로 다시 돌아와 대학교 때 룸메이트들을 저희 교회 초청해서 함께 모여서 그 꿈을 그들에게 나눴었습니다. 그런데 수년이 지나도록 우리들 마음에는 한 꿈을 꾸지 못하고 있기에 저는 포기한 듯 아니면 체념한 듯 기도도 잘하지 않고 지내왔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시 새벽기도회 시간에 꿈을 꾸기 시작한 것입니다. 요즘 저는 이 꿈을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제 마음이 뜨거워지고 흥분됨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제 자신을 볼 때 소극적인 자세의 기도에서 좀 더 적극적인 자세의 기도로 변화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 이유는 이젠 제 자신과 대학교 때 룸메이트들이나 상황을 바라보기보다 하나님 아버지를 바라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로 하여금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 더 알아가게 해주시고 계시기에 저는 좀 더 적극적으로 기도하면서 꿈을 꾸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 큰 꿈을 이루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으시기에 저는 다만 기도할 뿐입니다. 기도하되 내 마음의 소원기도를 거절하지 못하시는 하나님이신 줄 알고 믿기에 저는 하나님께만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이 들어나길 기도합니다.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예수를 닮기 원함이라 예수의 형상 나 입기 위해

세상의 보와 아끼잖네. 예수를 닮기 내가 원하네 날 구속하신 예수님을

내 마음 속에 지금 곧 오사 주님의 형상 인치소서” (찬송가 505장 1절과 후렴).

 

 

 

 

하나님의 아버지의 마음을 배워가길 간절히 소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한 영혼 영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새 생명 축제에 임하기를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