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하나님의 말씀

 

 

 

[시편 19]

 

 

하나님의 백성들인 우리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세상을 멀리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세상과 짝지어 살아서는 아니 됩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세상과 짝지어 살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쳐 하나님께 죄를 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무서운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있을 때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고범 죄를 더욱더 범하게 됩니다.  우리는 습관적인 죄 가운데서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에 이끌림을 받기보다 죄에 이끌림을 받게 됩니다.  무서운 것은 이러한 신앙의 퇴보가 너무나도 급속히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빨리 추락하는 신앙, 결국 그 원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속히 떠남에 있습니다.  성경 신명기 17장 19절을 보면 이스라엘 왕이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평생에 옆에 두고 읽어서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배우며 그 말씀을 다 지켜 행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평생에 옆에 두고 읽으면서 그 말씀을 다 지켜 행해야 합니다.

 

오늘 성경 시편 19편 말씀 중 특히 7절부터 보면 시편 기자 다윗은 “여호와의 율법”에 관하여 말합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란 제목아래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이고 그 말씀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란 무엇입니까?   4가지로 다윗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합니다.

 

성경 시편 19편 7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  여기서 ‘완전하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완전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초자연 성을 가리킵니다(박윤선).  즉, 하나님의 말씀은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죽어가는 영혼을 거듭나게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리의 목적입니다.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을 떠난 상태에 있는 죽은 영혼을 소성케 하는 능력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우리 불완전한 신자들의 낙심된 영혼을 일으키고 세우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낙망한 영혼이 소성케 되는 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합니다.

 

성경 시편 19편 7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하나님을 알도록 하는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이 ‘확실하다’함은 ‘참되다’는 의미로서(박윤선) 이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합니다.  여기서 “우둔한 자”라는 말은 히브리어 원어로 “열어 놓은 자”를 가리킵니다.  즉, 참된 하나님의 말씀은 마음을 열어 놓은 자 안에 역사하여 그를 지혜롭게 한다는 말입니다. 말씀의 씨앗이 옥토의 밭과 같이 열린 마음에 뿌려질 때에 지혜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 문을 열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야 하며 또한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성경 시편 19편 8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  하나님의 말씀이 ‘정직하다’라는 말은 ‘바르다’ 혹은 ‘곧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곧은 말씀은 죄인의 마음을 찔러 회개시킵니다.  사람은 회개해야 마음이 기쁩니다(박윤선).  바르지 못한 마음, 구부러진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찔림 속에서 회개케 되므로 바르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직합니다.  우리 마음도 정직해 질 때 마음이 진정으로 기쁠 수 있습니다.  참된 기쁨은 바른 마음에 있습니다.  삐뚤어진 마음에는 참된 기쁨이 있을 리가 만무합니다.

 

마지막 넷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합니다.

 

성경 시편 19편 8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여기서 ‘순결하다’는 말은 ‘깨끗하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깨끗합니다.  그 순결한 말씀으로 우리의 영혼이 씻겨 질 때에 우리의 영안이 밝아집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마5:8).  우리는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그 좋은 예가 바로 욥입니다.  욥은 고난의 통로를 다 걸은 후 이러한 고백을 하였습니다: “내가 주게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42:5).  이 고백을 통해서 얻는 교훈은 우리가 고난의 통로를 순결한 하나님의 말씀을 꼭 붙잡고 견뎌 나아가므로 결국 영혼의 순결함 속에서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이제는 하나님을 밝은 영안으로 뵙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므로 영혼을 깨끗케 해야 합니다(벧전1:22).  그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 고통의 삶 속에서도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어떠해야 합니까4가지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성경 시편 19편 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아가게 하되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확실하고 의로운 심판을 말씀하고 있음)을 알게 합니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케 되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케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마음이 정결케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정결한 마음속에서 죄악이 있을 수 없습니다.  결국 순결한 자(8절)는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영안으로 보는 가운데서 그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죄악을 멀리하는 삶을 삽니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성경 시편 19편 10절을 보십시오: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 꿀보다 더 달도다.”  금은 세상의 부를 가져올 수 있으나 영혼의 부유는 가져 올 수 없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부요하게 합니다(박윤선).  금은 세상의 부를 가져올 수 있을지 모르지만 너무나 많은 때에 우리 영혼을 가난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영혼의 부를 가져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더 사모해야 합니다.  영혼의 부를 가져오는 하나님의 말씀의 단 맛을 맛보면 볼수록 우리는 더욱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정직한 자(8절)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정직한 자는 마음의 기쁨을 맛보며 그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성경 시편 19편 11절을 보십시오: “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경계를 받았습니다. 그는 죄를 범치 않고자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그 이유는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 이유는 말씀을 지키는 자의 그 뒤가 크기[“상이 크니이다”의 히브리어 원문 뜻은 “그 뒤가 크다”(박윤선)] 때문입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의 경계를 무시하면 아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지키므로 그 상급인 영혼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결국 마음을 열어 놓은 자(7절 – “우둔한 자”)는 지혜로운 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킵니다. 

 

마지막 넷째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 시편 19편 12-13절을 보십시오: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또 주의 종으로 고범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허물”을 깨닫기를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특히 그는 “고범죄”(presumptuous sins)를 깨달아 더 이상 그 고범죄를 짖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그러기에 그의 기도 제목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12절)와 “큰 죄가 에서 벗어나겠나이다”였습니다(13절).  우리가 고범죄를 거듭 거듭 지으면, 그 죄과 지배력을 갖게 됩니다(박윤선).  곧 죄가 나를 주장케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한 것입니다(13절).  성경은 완전한 자, 성숙한 자는 기도하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의 영혼이 소생케 되길 원합니다(7절). 

 

       하나님을 가까이 했던 다윗은 반석이시며 구속자이신 하나님께 자기의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했습니다(14절).  그는 기도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였고 또한 그 말씀을 지키는 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습니다.  말씀 중심된 삶을 살아가는 성도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말씀을 사모하며 또한 그 말씀을 지키며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는 자입니다.  그는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 확실한 말씀, 정직하고 순결한 하나님의 말씀, 그 말씀으로 영혼을 소성케 되며 지혜롭게 되며 마음에 기쁨을 누리며 영안이 밝아지는 체험을 합니다.  이러한 말씀의 축복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기원합니다.

 

 

 

 

오직 말씀!(Sola de Scriptura!)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약속의 말씀에 이끌림을 받는 축복을 누림에 감사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