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시편 181-19]

 

  

       왜 우리는 낙망합니까?  왜 우리는 좌절하며 절망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인생 여정에 힘이 빠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자포자기할 위험도 있는 것 같습니다. 다 일을 내려놓고 싶고 다 포기하고 싶은 충동도 있을 수 있습니다.  왜 이럴 수 있을까 생각해 볼 때에 한 세 가지 단어가 생각이 났습니다: “현실”, “생각” 그리고 “감정”.  즉, 우리의 삶의 여정에 어려움과 역경이 몰아칠 때에 부인하고 싶은 이 현실을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의 반응은 생각입니다

 

예기치 않은 힘든 일이나 역경이란 현실이 닥칠 때에 우리 생각에서 한 네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첫째 질문은, “왜?”(Why?)라는 질문입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닥쳤는가?’, ‘왜 나인가?’ 등등의 질문을 던지는 것이 우리의 본능이며 습관입니다.  결국 이 왜 라는 질문은 당면한 현실을 우리가 부인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부인은 결국 불만과 불평으로 나의 피해의식을 표출하게 됩니다.  “왜?”라는 질문 외에 우리가 자주 던지는 질문은 “어떻게?”(How?)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나에게 닥쳤는가?’라고 문제 해결을 찾아보려고 노력을 해보겠지만 결국 해답을 찾기보다 못 찾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은 게 우리 삶 속에 어려운 현실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자주 던지는 질문은 “무엇?”(What?)입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가?’라는 질문을 수 없이 던지면서 우리는 어려운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자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 또한 우리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대답이 훨씬 더 많은 것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접한 현실 속에서 우리 생각 속에서 던져야 할 질문은 바로 “누구?”(Who?)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은 누구이신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한 예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인정하므로 우리의 현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러한 생각 반응은 우리로 하여금 건강한 감정을 표출할 수 있게 합니다.  우리가 감정에 굴곡이 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관적인 생각 속에서 일관적인 감정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 시편 18편에 나오는 시편 기자 다윗의 현실은 4-5절에 이렇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음부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다윗은 과거에 그의 “모든 원수와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날”(표제)을 회상하면서 하나님께 마음 깊은 속에서 진심으로 고백을 한 것입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1절).  여기서 다윗이 사용한 “사랑”이란 단어는 히브리어로 “라함”으로써 어느 목사님은 이렇게 해석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쏟으시는 긍휼과 자비와 사랑,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너무 아파서 속이 다 녹아내릴 만큼 아픈 사랑.”  박윤선 박사님도 이 사랑을 “사람의 심령 속에 깊이 뿌리박은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야말로 녹아진 사랑”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러한 사랑을 고백하게 된 이유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힘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숱한 위기 때마다 그는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체험하였기에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러한 과거 구원의 체험 회상 속에서 다윗은 현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서 오히려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습니다(3절). 

 

       왜 하나님께서 다윗을 그 모든 원수들과 사울에게서 구원해 주셨습니까그 이유를 오늘 성경 시편 181-19절에서 한 2가지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 이유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즉 하나님의 신격 때문입니다. 

 

성경 시편 18편 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하나님의 성품상 구원자이시기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구원하셨습니다(박윤선).  그 하나님의 성품상이 오늘 본문 2절에 여러 명칭들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나의 반석”(험한 암벽으로 둘러싸인 땅들 의미함), “나의 요새”(높은 언덕 혹은 산꼭대기를 의미함), “나를 건지시는 자”(위급에 직면했을 때의 구원자), “나의 하나님”, “나의 피할 바위”(석산의 험봉을 가리킴), “나의 방패”(원수의 화살을 막는 것), “나의 구원의 뿔”(승리의 능력을 비유), “나의 산성”(험하고 높은 산꼭대기에 시설도니 피란처).  한 마디로, 하나님은 다윗의 보호자이시기에 다윗을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을 자기를 보호하시는 구원자이심을 선포하며 기도하였습니다. 

 

둘째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다윗을 그 모든 원수와 사울의 손에서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성경 시편 18편 6절을 보십시오: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은 나의 기도 소리를 들으시는 주님이십니다.  특히 내가 극도의 위험한 환난에서 (4-5절: “사망,” “창수,” 음부”) 부르짖을 때에 또한 그 환난에 급히 임함 가운데 간구할 때에 그 기도를 들으사 응답하시는 주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과연 하나님은 어떠한 방식으로 다윗을 구원해 주셨습니까? 오늘 성경 시편 18편 7-15절을 보면 좀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7-15절에 묘사되고 있는 하나님의 구원 방식은 하나님의 위엄이 들어나기 때문입니다: “땅이 진동하고 산의 터도 요동하였”고(7절), “그 코에서 연기가 오르고 입에서 불이 나”왔고(8절), 또 “하늘을 드리우시고 강림하”였고(9절), “그룹을 타고 날으”셨으며(10절), “흑암으로 그 숨는 곳을 심으”셨으며(11절), “그 앞에 광채로 인하여 빽빽한 구름이 지나며 우박과 숯불이 내”렸으며(12절), “뇌성”과 “번개”를 발하셨으며(13, 14절), 그리할 때에 “물 밑이 드러나고 세상의 터가 나타났”다(15절). 이 모든 표현들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찾아오실 때에 천지를 진동할 듯이 위엄차게 임하신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박윤선).  천지를 뒤흔드는 하나님의 위엄, 그 위엄 가운데 다윗을 구원하시고자 찾아 오셨던 하나님이십니다. 박윤선 박사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이상스럽게 생각된다.  하나님의 나타내신 위엄은 저렇게 큰데, 그 구원하시려는 목적물은 극히 무의미한 듯한 한 개인이다.  이 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천지를 진동시키셨는가!” 이렇게 한 개인의 기도가 위대한 것인가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한 개인의 기도가 천지가 진동하는 가운데 위대한 구원의 역사를 가져오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여기서 한 개인의 기도에 대하여 한 4가지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첫째로, 기도는 하늘 문을 연다는 사실입니다

 

성경 시편 18편 16절을 보십시오: “저가 위에서 보내사 나를 취하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 내셨도다.” 여기서 다윗은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 내셨도다”고 말하였는데 그 말은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재앙과 환난으로 말미암아 동서남북 사방의 문이 막혀 살 수 없게 된 때에 다윗이 기도하였더니 사람이 막을 수 없는 문이 열렸으니 그 문은 바로 하늘 문 이였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이뤄진 것입니다. 동서남북 갇혔을 때 땅을 바라보면서 “왜?”라는 질문 속에서 불평과 불만을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달리 하늘을 바라보면서 기도했던 모세,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시사 하늘 문을 여시어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신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늘 문을 여는 것입니다.

 

      둘째로, 기도는 강하다는 사실입니다

 

성경 시편 18편 17절을 보십시오: “나를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셨음이여 저희는 나보다 힘센 연고로다.” 여기서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보다 강하신 구원자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체엄케 하는 게 기도입니다.  다윗보다 힘센 이 강한 원수들, 그러나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권능을 경험케 합니다.

 

        셋째로, 기도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성경 시편 18편 18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나의 재앙의 날에 내게 이르렀으나 여호와께서 나의 의지가 되셨도다.” 비록 다윗에게 “재앙의 날”(18절)이 이르렀지만 기도할 때 그 재앙의 날이 의지하는 하나님의 ‘구원의 날’로 바뀌었습니다.

 

      넷째로, 기도는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깨닫게 해줍니다.

 

성경 시편 18편 19절을 보십시오: “나를 또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심으로 구원하셨도다.”  다윗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하심 또한 경험하였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에서 부를 수 있는 찬양은 “나 주님의 기쁨되기 원하네…”입니다.

 

       결국 우리는 어떠한 어려운 현실을 접할지라도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믿음으로 그 현실을 받아들이되 기도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를 보호하시는 구원자 하나님께서 천지를 진동할 듯이 위엄차게 임하시사 큰 구원의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체험하므로 결국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할렐루야!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은총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제임스 목사 나눔

(‘나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마음으로 찬양하면서)